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비가 창밖으로 내립니다.

빗줄기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 창문을 여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빗방울입니다. 겨울비네요...

지난 주말에 찾은 대구 부인사 화장실에는 수세식으로 화장실을 지었는데 수원이 가뭄으로

말라 붙었는지 가뭄으로 화장실 사용을 못한다는 안내가 붙어있었습니다.

비를 보니 그렇게 먼저 가뭄이 생각납니다.

비로 인해 햇빛도 없는 어두운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날입니다.

'농심신라면배세계바둑최강전'이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걸 제가 구경하러 가는 날입니다.

몇년 전부터 세계바둑대회를 한번 구경가겠다는 작심을 하고 있었는데 거의 실행에

옮기는데 3-4년이 흘러버렸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냥 한번 직접 가서 보고 싶었습니다.

반겨주는 이 한명도 없을테지만 그리고 무슨 이유때문인지 이슬람교도들이 순례를 가듯이

한번은 가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습니다.

농심신라면배는 부산에 2년간 살면서도 못가봤는데 다른 도시로 옮기고서야 이렇게 기회가

되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삼성화재배와 신라면배를 저울질 하다가 신라면배가 걸린 것이지요.

회사에는 꼬불쳐 둔 휴가를 하루내었습니다. 아마 바둑대회 구경하기 위해서 휴가를 낸 것을

알면 사무실이 뒤집어지겠지요. 요즘 같이 불황에 구조조정을 하는 세월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라 하겠지요. 그렇게 보지는 않더라도 바둑을 엄청 잘 두는 줄 알겠지요.

거의 프로수준으로 말입니다. 프로는 고사하고 1급을 보면 할배요~하는 실력인데...

일정을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날짜만 있고 몇시부터 한다는 내용은 없네요. 그래도

대충 오전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알기에 네비게이션에 농심호텔을 찍어서 출발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어제부터 사실 소풍가는 학생때처럼 약간 기분이 좋더군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목적을 위해서 빗길을 헤치며 달려나갑니다. 농심호텔은 생각과 달리

골목길 안에 있었습니다. 호텔이라 큰 길에 있을 줄 알았는데...

호텔정면이 늘 대회 사진에 보이는 그 모습그대로 이더군요. 물론 뒷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어디 호텔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어야지요. 주차 하다보니 호텔 뒷쪽이고 그냥

뒷문을 편하게 이용했습니다. 로비에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세워져 있더군요.

대국은 2층, 검토실은 지하. 구경꾼이 무슨 부담이 있겠습니까? 구경이 목적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당당히 2층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조용하더군요. 진행요원 한명이 대국실 앞에

의자와 테이블을 두고 앉아서 지키고 있더군요. 대국자가 안에서 둔답니다. 그리고 검토실은

지하에 있다고 알려주네요. 당당히 진행요원 앞에 있는 붉은색의 안내지를 떳떳하게 챙겨서

내려옵니다. 야메로라도 대국실 안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경찰서에서

사용하는 단방향의 유리창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지나가면서라도 보고

검토실에 갈 수 있었다면 먼길을 온 보람이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잠시 호텔 화장실에 들러서 소변을 보고.... 제가 호텔에서 오줌 눈 것도 처음입니다.

너무 촌놈인가요? 그리고 검토실에 내려갔습니다. 두리번 두리번... 약간은 어두운

복도를 따라가다보니 검토실이 있네요. 모니터랑 TV가 설치되어 있고 4명의 중국기사가

검토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바둑관련 기자분들은 열심히 인터넷으로 자료를

보내고 있고 말입니다.

오늘 다른 예선전과 겹쳐서 프로기사들이 없고 일반인은 요즘 원래 구경오는 사람이

없어서 공개해설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8개의 검토 테이블이 있었는데 6개는 비어있고... 횡~ 서부시대의 사막에 마른 바람이

부는 듯하고... 빈공간이 을사년의 바람처럼 몸과 마음을 움추리게 합입니다.

그공간에 5분정도 서있었을까? 괜히 바둑팬인 것이 부끄러워서 도망치듯이 빠져나와서

다시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정신이 없어 고속도로에서는 새로

생긴 빠른 길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구길인 경부고속도로로 해서 경주를 둘러서 오는

실수까지 저질렀습니다.

몇 년 동안의 긴 꿈을 이렇게 5분만에 마무리했습니다. 역시 보고 알게 되는 것은 말로만

듣는 것과는 다르더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낀 것은 많았습니다.

 카메라를 못가지고 가서 휴대폰으로 기념촬영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건물 벽에 걸린 홍보 현수막(중앙)을 찍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