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지 말고 꿈을 지어라.

                                                                                                              저니

신문기사에서 엘빈토플러와 같이 미래학 분야에서 유명한 드림소사이어티의 저자 롤프

옌센이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 기업이 미래 사회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단순한 물건이 아닌

상품에 담긴 꿈과 감성을 팔아야 한다고 조언한 기사를 보면서 문득 빈 바둑판을 응시하게

되었다. 과거 수 많은 실험으로 얻어진 결과의 산출물을 토해내듯 습관처럼 두어지던 정형화된

정석 수순들이 떠오른다.

상념처럼 다가온 파도가 갯바위에 부딛혀 포말이 되어 지워지는 수많은 수읽기 속에 나는

집을 지었다 부수었다 하곤한다.  나는 집을 지었던 것일까?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집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실력이라고 믿고 싶지만, 상대의 실수나  로또 당첨의 환영과 같은 집을 허공에서

찾았을 뿐이다.

멍석말이 당하듯 두점 머리 세점 머리를 맞으면서 까지도 난 처절하게 나의 집을 품는다.

이곳만은 나의 것이야..그것은 나의 집이야 라고 외치면서..

그렇게 처절하게 지키려한 집이 유린되기라도 하는 시점이 되면 얼굴은 이미 붉어져 분노가

솟아오르고 깨문 입술에는  오기가 서리게 된다.

이쯤되면 난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니라 포수를 쫓아가는 굶주린 맹수가 되어 있다.

목수가 그림을 그리듯

잘 그려진 만화도 스토리가 없으면 쓴약을 삼킨 것 처럼 다음 페이지로 넘길 수가 없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전에 이야기의 줄거리, 즉 뼈대를 세운다. 켠켠이 천연조미료처럼

자연스럽게 맛이 베이도록 짜임새 있는 공간도 생각해둔다.

어릴 때, 집을 그리라고 하면 지붕부터 그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어느 실험에서

목수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했다. 실험 결과 목수들은 지붕부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집을 짓는 순서로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땅을 다지고 기초 주춧돌을 놓고 대들보를 세우고

그리고 석가래를 얹고 그리고 지붕을 올렸다. 목수의 머리속에 이미 집은 완성되어 있었다.

우린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목수가 미래의 꿈을 그리듯 나는 바둑으로 꿈을 표현했다면 적어도 포수 앞에 우매한 맹수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18급 같은 스토리 1급 같은 스토리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의 일상이 하루 하루 다르듯 같은 1급의 바둑이라고

해도 스토리가 담긴 재미있는 바둑을 선보이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게 뚝뚝 끊어지는 옥수수

수수깡 같은 바둑을 두기도 한다.

매번 옥수수 수수깡 부러지듯 무미 건조한 바둑을 두는 것에 익숙한 나에겐 적어도 바둑판에선

작가적 기질은 찾아 보기 힘들지만,  다케미야의 우주류, 고바야시의 지하철 바둑같이 나름대로

흥미로운 스토리는 나를 흥분하게 한다.

나를 흥분시키는스토리는 묘수가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묘수가 한판에 세번 나오면 진다는

말이 있다. 묘수는 하나의 반전인데 그 반전으로 유명한 아가사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도

반전은 한번이면 족하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그 반전이 너무 심해서 한번의 반전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지만, 

덕분에 스토리의 구성력을 잃고 있다.

 바둑판에서 세번의 반전을 본다는 것은 그저 유랑극단의 해프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바둑판에 두명의 작가가 미묘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스토리 결과가  패자에겐 큰

아픔을 주겠지만, 좋은 스토리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관객의 탄성과

감동을 선물한다.  마치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관객과 하나가 되는 희열처럼...

그러한 대국이 희열을 준 것은 단순히 멋진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서로가 멋진 꿈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품고 있는 꿈을 전개하는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일련의 정석

수순이 아니다. 그것은 꿈의 표현이고 아와 비아의 충돌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핼리

혜성의 긴꼬리가 지구를 스치듯 지나가는 짜릿함에 열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