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물을 끓입니다. 혼자 살다보니 맨날 생수만 먹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생수, 집에서도 생수, 게다가 주말에 집에 가서도 정수기 물을 먹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옥수수차가 먹고 싶어서 슈퍼에서 볶은 옥수수를 샀습니다. 그날 따라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옥수수차가 먹고싶었던 것입니다. 생수를 먹어서는 갈증이 풀릴 것 같지 않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끓이다보니 향긋한 옥수수 향이 납니다. 옥수수 차 끓이는 냄새가 향긋했던가 하는 의문과 함께 예전 기억을 떠올립니다. 한참 기억을 더듬어도 올라가도 기억 속에 있는 옥수수 차 끓이는 냄새는 향긋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이 들어서 손수 끓이는 옥수수 차에서 향긋함을 느끼고 그 향긋함에서 편안함을 느깁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어린 시절 언제나 끓여먹던 물은 보리차가 아니면 옥수수차였습니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옥수수차를 사오기도 했고 또 수돗물을 한주전자 받아 옥수수차를 넣고 끓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련하고 가물가물 하는 기억 속에 주전자가 거품을 내면서 끓던 기억이 납니다. 더운 여름에도 주전자는 그렇게 끓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옥수수차 향기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어린서절 느끼던 집에서의 편안함이 기억났기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끓이는 물에서도 편안함이 끓어올라 방한 가득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있었던 불편했던 마음이 가라 앉습니다.

가끔은 회의를 느낍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책을 읽고 마음을 보고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봐도, 나이가 먹으면서 마음은 점점 좁아지며 약해지고 머릿 속에는 쓸데없는 지식과 생각만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마음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예전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모두가 양반이라는 소리를 듣는 점잖은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양반인 사람이 몇 명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둑에서도 정석은 배우고 나면 잊어라는 말처럼, 세상사는 것도 책을 읽어도 익힌 지식을 잊고 작은 깨닭음에 자만하지 말고 잊고 모든 것을 잊어야 마음이 좁아지지 않고 마음편히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둑에서 가장 쉽게 듣는 말인데 현실에서는 오늘 처음으로 생각해봅니다. 옛날에 공부를 많이 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글자도 가르치지 않고 산에서 나무만 하면서 살게 했다는 것은 아마 입신양명해서 사화에나 휘말릴까하는 육신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는 것 같습니다. 배움에서 오는 마음의 편협함, 경솔함을 더 경계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이야기가 많이 길어집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바둑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오로에 올라온 거북이 바둑판 만큼 멋지지는 않지만 예전 기억이 나서 말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바둑판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