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영화를 보자고 하였다.  

몽블랑에 관한 영화라고 하였다. 

좋다고 승낙하였다. 그런데 영화의 끝 부분이 미스터리로 끝난다고 하여 아, 그렇다면 공연히 마음만 혼란할 터이니 보지 않겠다고 하였다.

연휴가 끝난 다음에 (백수에게 무슨 연휴가) 딸애가 주섬주섬 표를 챙기더니 영화를 같이 보러가자고 하였다. 

전에 말했던 영화였다. 

그래? 까짓 거 속는 셈치고 한번 보러가지 뭐.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으니. 

아무리 이상한 영화라고 하더라도 몽블랑의 경치는 남겠지.

아내와 딸애와 함께 전철에 탔다. 

아내는 여러 번 어디에서 내려야하는지 물었다. 

그 때마다 친절히 신당에서 갈아타야한다고 말해주었다. 

전에 팔공선달님이 택시를 몰았을 때 치매 아내를 둔 할아버지가 아내의 수 없는 질문에도 짜증을 내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는 글을 읽고는 감동한 탓이었다.

을지로 입구에서 내려서 명동의 극장까지 걸어갔다. 

역시 명동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아, 나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가 ‘비 내리는 명동거리’인데. 역시 사람 사는 동네는 사람들로 넘쳐나서 북적 북적거리는 것이 최고이다. 

예전에 나의 고향 시골이 그러했다. 

마을에 애들이 넘쳐나서 구석구석 안 가 본데가 없고, 논두렁의 풀까지 모두 소 먹이로 깎아서 온 동네가 반질반질하였었다. 

그런 세월이 어느새 ‘하나만 낳고 어쩌고’ 하더니 이제는 인구가 모자란다고 난리이다.

영화는 열두시 반에 시작되었다. 

배가 고플 것 같아서 팝콘 한 봉지와 콜라를 한 병 샀다. 

팝콘을 입에 넣고는 그냥 와그작하고 씹었다가는 주위 사람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서 입안 가득 넣었다가는 큰 소리가 나는 대목에서야 씹어 먹었다. 

이곳은 예술극장이었다. 

극장 앞에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어떤 영화감독에 대한 감상 글을 적어놓았다. 

이동진이라? 어디선가 본 이름이었다. 

아내가 동네의 서점에서 천 원짜리 책을 샀는데 그 책 제목이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였고 그 작가가 이동진 영화 평론가였다. 

그 책에서 ‘폭풍의 언덕’에 관하여 접하고는 ‘폭풍의 언덕’과 ‘제인에어’를 꼭 빌려서 보기로 결심하였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로봇과학자였다. 

그는 파리에서 일하는데 브리핑장소는 파리가 아니고 프랑스에 있는 알프스의 산악지대 였다. 

기차를 타고 그 곳까지 온 것이었다. 

그가 로봇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바깥의 산 풍경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그 풍경을 넋을 잃고는 바라보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고객들은 “아니 , 저 사람 뭐하는 거야 참 이상하네?” 하고는 의아해한다. 

주인공은 산 풍경에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는 회사를 결근하고는 산으로 향한다. 

어느 스키장에서 스키 화를 벗어놓고는 스키장 바깥에서 야영을 하는 것으로 주인공과 산과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주인공은 샤모니로 가서 몽블랑에 오른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몽블랑의 경치가 정말 멋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빙하의 평원. 그랑드조라스, 

주인공은 빙하의 평원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을 한다. 

처음에는 아주 어설픈 산악 초보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인공은 암벽등반의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자가 된다. 

주인공은 어느 날 카페의 셰프에게 집으로 엽서를 부쳐달라고 부탁을 한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잘 나가는 로봇공학자가 회사도 팽개치고 졸지에 산에 미친 미치광이가 된 것이다. 

산으로 주인공의 어머니와 형과 동생이 찾아온다. 

형은 아주 솔직하다. 형은 동생을 미친놈이라고 말한다. 

나도 형의 의견에 동감이다. 당연히 미친놈이지.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데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그래도 어머니와 동생은 주인공의 처지를 이해해준다. 

동생이 말했다. “그래도 형의 얼굴에 행복한 빛이 보이네.”

결국 가족들은 주인공을 포기하고는 하산한다.

드디어 미스터리한 대목이 시작된다. 

산에서 낙석사고가 나고 주인공은 낙석장소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주인공은 완전 전문 산악인으로서 암벽타기도 하고 레펠도 한다. 

그리고 밤에 이상한 빛을 추적한다. 

아, 으스스 하였다.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나하고, 전에 이벤트 호라이즌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블랙홀의 경계에 관한 용어라서 과학적인 것을 기대했건만 완전히 영화는 개판으로 치달았다.(요즈음에는 ‘개’ 란 말이 아주 좋아져서 독자 분들께서 혼란스러울지 모르겠으나 좋은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흘러가면 절대로 안 된다. 

다행히 영화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 빛은 용암 비슷한 것에서 나온 거였다. 

결국 그 용암 비슷한 것이 미스터리의 정체였다. 

그 빛은 주인공의 몸에도 반응하여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에 그 빛이 들어가면서 주인공은 바위 속으로도 파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주인공도 바위와 일체가 된 것이었다. 

이것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발상이었다. 

바위는 SiO2 가 주 성분인데 그 것이 인체의 성분에도 통한다는 것인가? 

나는 도저히 상상도 못했던 것을 영화의 작가는 구현해낸 것이다.

산의 정령이 용암과 같은 모습을 띤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본다.

 본래 산의 원형은 용암이다. 

용암이 바로 지표면으로 솟아나오면 현무암이 되고, 바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다가 그대로 식으면 무거운 물질은 밑으로 가라않고 가벼운 물질만 남아서 화강암이 된다. 

그리고 바위가 세월에 닳아서 가루가 되었다가 다시 뭉친 것이 퇴적임이고, 바위들이 강한 압력과 높은 열에 변한 것이 변성암이므로 바위와 모든 흙들의 모태는 용암인 것이다.

주인공은 그대로 바위의 정령을 몸에 지닌 채 살아서 하산하게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지를 않고 걸어서 씩씩하게 내려온다. 

왼손에 밝은 빛이 감도는 것이 인상적이다.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마블영화의 후속을 기대해도 되겠다.

‘산이 부른다.’ 멋있는 영화 제목이다. 

친구 중에 ‘대명’ 이라는 호의 친구가 있다. 

잘 생긴 얼굴에 튼튼한 체격의 친구이다. 

늘 카톡에 등산 사진을 올려준다.

 전국의 산중에 그 친구가 안 가본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친구야말로 ‘산이 부른다.’의 주인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