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담은 메시지가 발표된 다음날, 일본 특사가 비밀리에 미국을 방문했다. 일본이 더 이상 한국에 대한 응징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이 일본과 한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이는 미국에게 고통스러운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미국의 선택은 당연히 일본이었다. 일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번 한국의 발표를 보고 우리도 결심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미국이 드디어 일본을 선택했다. 이 소식은 즉시 일본으로 전해졌다.

“드디어 미국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국은 이번 사태에 더 이상의 개입을 중단한다고 곧 발표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 대한 징계에 착수합니다.”

총리가 말을 마치자 방위상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우리는 강력한 해군력을 통해, 한국의 해군을 제압한 후, 3면의 바다를 봉쇄할 계획입니다. 한국은 바다를 통하지 않으면 육로를 찾아야 하는데 그곳은 북한에게 이미 차단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어, 우리가 포위망을 풀어주지 않으면 한반도 안에서 굶어 죽게 됩니다.”

방위상은 기고만장했다. 여기저기에서 박수소리가 나왔다.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한국의 목줄을 죌 수 있는 방안이군요. 다른 의견이 있으면 발언해주십시오.”

회의는 짧게 끝났다. 공군과 해군이 우수한 일본이 지상군이 뛰어난 한국의 육지에 상륙해서 싸우며 자국의 피해를 키울 필요가 없다는 전략은 모두를 만족스럽게 했다. 주변국 중 어느 나라도 상황이 여기에 이르면 아무도 한국을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다. 국제관계는 온정을 나누지 않는다.

미국이 양국 간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한 것이 한국 정부에도 전달되었다.

“미국이 사실상 일본의 입장에 섰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군사력은 공군력은 일본의 80% 수준이고, 해군력은 30% 수준입니다. 물론 일본의 바다면적이 세계에서 8번째로 넓은 국토의 12배 면적으로, 상대적으로 좁은 우리나라의 바다면적과 비교하면 10배에 달합니다. 일본해군이 넓은 지역에 걸쳐 작전을 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유사시에 해군력을 한곳으로 집중한다면 우리나라의 해안이 봉쇄되는 데는 채 1주일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말씀하십시오.”

“일본이 우월한 해군력을 이용해 기선을 제압하려 들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전략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점은 저들의 전략을 예상하면서도 회피할 만한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국방부는 현재의 시점에서 일본과의 전력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참모총장의 발언으로 장내가 술렁였다. 미국이 이 상황을 중재해주지 않으면 한국은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이라는 군 최고지휘자의 공언은 예상 밖이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전 국민의 사기를 떨어트려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플랜-B나 플랜-C조차도 우리에게는 없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이 자리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회의지만, 국방부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대비책까지 공개해드릴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군은 최선을 다해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은 가능성만 가지고 있는 전략을 발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일본이 도발해올 경우 물리칠 수 없다는 말이군요.”

“해안선이 봉쇄되는 기간이 문제일 것입니다. 일본도 다른 지역의 경계임무를 일정기간 포기하고 그 전력을 우리에게 집중하는 것이므로 국제 정세나 주변국 상황은 가변성이 큽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아프지만 냉정하게 우리의 현실을 밝히는 것이, 정확한 대책을 수립하고, 최악을 대비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참모총장이 야무지게 말을 맺었다. 그의 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이제 관건은 봉쇄된 상태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 얼마나 짜임새 있게 대비를 하느냐의 문제였다. 대한민국은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7%에 이른다. 봉쇄가 한국에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을 일본도 잘 알고 있다.

대통령과 통일부장관, 국방부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에 모였다.

“우리 해군이 해방 후 1945년에 창설되고 ‘함정건조기금거출위원회’의 활동으로 ‘백두산’함을 미국에서 산 뒤, 6.25사변 다음날 새벽 북한 함정을 진해앞바다에서 격침시켜 전쟁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지요. 우리가 자랑스러운 해군사에 부끄러운 오점을 남기겠군요.”

대통령의 말에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만약 일본이 한국의 해안선을 봉쇄하더라도 우리가 해군의 전력을 유지한 채 버텨준다면, 반격의 기회가 있습니다. 북한과 통일부가 조율중인 건이 있습니다.”

통일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말없이 서류를 읽던 대통령의 얼굴이 차츰 밝아졌다.

“북한이 매우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군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해도 북한이 해안을 열어준다면 우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말을 마치고 서류를 국방부장관에게 건넸다.

“이렇게만 돼주면 우리 군은 일본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해군력은 우리 해안선 가까이에서 전력 손실 없이 대피가 가능합니다.”

“저와 대통령님, 그리고 국방부장관이 은밀하게 북한 수뇌부와 만나도록 주선중입니다.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공조를 공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일본은 이제 거칠 것이 없어졌다.

‘한국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낸다. 우리가 요구한 사항들을 이행하라. 5일의 말미를 주겠다. 이 기간 안에 요구 사항을 모두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각 자위대를 출동시킬 것이다. 우리의 영토에 침입하여 일본 국민의 재산을 파괴한 일당을 처단함은 우리 자위대의 존재 이유임을 천명한다. 이는 일본이 한국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이자 자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최후통첩을 보냄과 동시에 작전을 개시했다. 전 자위대에 전투 출정명령이 하달되었다.

‘1. 육상자위대는 즉시 출정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며 명령을 기다린다.

2. 해상자위대는 각 소속부대의 최소한의 기능유지가 가능한 병력과 장비만 남기고, 나머지 병력과 함정, 장비를 즉시 쿠레지방대에 집결시킨다.

3. 항공자위대는 해상자위대의 진격 속도에 맞춰 제공권 장악에 차질이 없도록 작전을 수립하고 즉각 응사 가능하도록 태세를 유지한다.’

일본의 전쟁돌입 태세는 세계의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소식을 접한 한영운은 안가에서 은신중인 대원들을 모았다.

“우리의 거사로 인해 나라가 전쟁의 위험에 빠졌다. 비록 반성하지 못하는 역사를 바로잡는 의거였으나, 그것을 빌미로 일본은 우리나라를 겁박하고, 침략의 구실로 삼고 있다. 우리를 넘기라는 것이 저들이 표면적으로 요구하는 조건이다. 어차피 나라에 목숨을 바친 우리다. 우리의 희생으로 조국에 닥치는 불행이 거두어진다면 값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군들의 생각은 어떤가.”

그들 중 연장자인 요시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라면서 수없는 차별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한 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긍지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거사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탰습니다. 제 목숨은 조국의 것입니다. 이제 제게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총사령관님께서 명령하시면 저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강대한과 홍설민 두 사람은 그의 말에 동조하며 같은 마음으로 결심을 나타냈다.

“동지들의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일본이 우리의 신병을 확보하게 되면 우리는 살아날 길이 없다. 이제 나를 포함한 우리 4명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내일 내가 정보국에 출두하여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겠다.”

다음날 아침 안가를 나선 그는 이재길을 찾았다.

“변호사님! 저는 안가에 은신중인 동지들의 뜻을 받들어 정보 당국에 자진 출두하여, 일본의 야욕으로부터 조국을 구하려고 합니다. 제가 변호사님을 찾은 이유는 ‘대한독립의군부’를 임시로 맡아 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함입니다. 이미 변호사님의 신변이 세상에 노출되어 있어서 수장의 역할을 지속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조직의 다른 수장이 정해질 때까지 만이라도 조직을 추슬러 주십시오.”

“염려놓으십시오. 부족하나마 총사령관님께서 복귀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사히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그가 믿음직스러워 한영운은 마음이 평화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