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최선애는 남편과 같이 오랜만에 고국을 찾았다. 좋은 일로 다시 고향땅을 밟는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공항에는 동생과 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엄마, 좀 여유 있게 오지. 지금 서둘러서 호텔에 가야 겨우 시간을 맞추겠어.”

“그래, 서두르자. 내가 며칠 동안이나 집을 비워야 하잖아. 비행기도 겨우 탔다. 네 동생이 며칠 혼자 지내니 밑반찬을 만들어주느라.”

호텔 커피숍에는 한영운의 가족이 먼저 나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늦었네요.”

“아닙니다. 저희도 막 도착했는걸요.”

강민희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모가 보여준 사진으로 상대방 남자의 얼굴만 겨우 익힌 상태라 실물은 오늘 처음 보는 남자와 친한 척을 해야 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여서 묘한 긴장감마저 일었다. 최선미가 열일을 했다. 그녀는 분위기 띄우랴, 처음 보는 젊은 남녀가 어색해지는 눈치가 보이면 나서서 수습하랴, 예비 혼주 사이의 서먹함을 해소시키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젊은이들이 조금 시간이 흐르자 서로 친해졌다. 젊음이 역시 좋았다. 그녀는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러더니 곧 자리가 마치 정말 상견례를 하는듯한 분위기로 바뀌어버렸다. 한영운의 박식함과 세심한 배려가 큰 도움을 주었다.

최선애 부부는 매우 만족한 눈치였다.

“우리가 너무 오래 시간을 끌면 젊은이들이 흉볼 거 같아요. 저는 아드님이 볼수록 좋네요. 제 딸도 어르신들 마음에 찼으면 좋겠어요.”

“따님도 올곧고 예쁘게 잘 키우셨어요. 엄마를 닮은 듯 미모가 출중합니다.”

“과찬이십니다. 부족한 제 딸을 예쁘게 봐 주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저희가 먼 곳에 사는 관계로 앞으로의 일정은 제 동생과 상의해시면 고맙겠습니다.”

“염려마세요. 앞으로 정말 가족으로 자주 뵙게 되었으면 합니다.”

“어머! 제 마음도 똑 같아요. 훌륭하신 어른과 인연을 맺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두 가족은 정말 예비 사돈인 듯 만족하게 상견례를 마쳤다.

거사를 진행하기 위한 모든 사전 정지작업이 끝났다. 요시다는 퇴근시간 무렵에 내일 판매할 메뉴의 식자재와 함께 폭약을 신사 내의 영업장으로 반입했다. 늘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어서 누구의 이목도 끌지 않았다. 그리고 창문의 잠금 장치를 열어 둔 채로 폭약을 창가에 놓아두었다. 타이키와 약속된 장소와 위치에,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이제 그는 야스쿠니 신사의 옆 골목에 주차된 차 안에서 타이키를 기다리면 된다.

엄마가 하시모토와 같이 한국으로 떠나자 강대한은 마음이 놓였다. 이제 요시다가 놓아둔 폭약을 미리 파악해둔 장소에 가져가서 타이머를 결합하여 폭탄으로 세팅한 뒤 타이머만 작동시키면 되는 쉬운 일만 남았다.

자신이 타이키로 신사에 돌아온 뒤로 신사의 직원들은 모두가 그를 마치 직원처럼 대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일본을 위해 신고까지 한 모범적인 일본인인 것이다. 덕분에 그는 신사 내의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신사 내에 있던 행사의 뒤처리를 마치고 퇴근하겠다는 그의 말에 다른 직원들이 먼저 퇴근한 뒤, 타이키만 혼자 남아서 경내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타이키군, 늦게까지 일하는구나.”

경내의 야간 순찰자들이 그에게 늦게까지 수고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저도 오래 걸리지 않아요. 저도 곧 퇴근할겁니다.”

그는 그들에게 웃음까지 보이며 여유 있게 움직였다.

세 건물의 구석진 곳에 설치된 폭탄의 시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30분 뒤에는 이곳이 화염에 쌓일 것이다. 강대한은 천천히 퇴근하여 골목 어귀에 있는 요시다의 차에 올랐다.

“이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을 확인하고 출발했으면 합니다.”

“그래.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이제 15분만 더 있으면 폭탄이 터질 것이다. 기다리는 15분의 시간은 무척 길었다.

드디어 폭발음이 3차례 들리자, 강대한 일행은 사가현의 니시가라쓰항으로 향했다.

한영운은 경상지역사령관에게 밀항선을 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도록 지시를 내렸다. 강대한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한영운은 밀항선을 띄우기로 한 것이다. 그는 부산지역을 뒤져 여든이 넘은 노인을 찾아냈다. 지금은 밀항이 불가능한 탓에 그 지역에서는 그가 과거에 밀항운행 경험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백발인 그는 그럼에도 탄탄한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오랜 시간 맨몸으로 물과 싸워온 세월을 흔적이었다.

“나는 열 살이 되던 해부터 아버지의 배에 올랐소. 부친이 하던 일은 일본과의 밀무역이었는데 그 루트가 낙동강 하구의 다대포와 사가현의 니시가라쓰항 이었다오. 지금 당장에라도 나는 그 항로로 배를 띄울 자신이 있소.”

그는 지역사령관에게 두 팔을 들어 삼각근과 상완 이두근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몸이 무척 탄탄하십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코스를 밤에, 불빛 하나 없이 다녀와야 하는 일입니다.”

그는 잠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나는 눈 감고도 배를 띄울 수 있소. 그런데 이 일이 불법적인 일이군요.”

“아닙니다. 불법적인 일은 아니지만, 비밀스런 작업입니다.”

“알았소. 나야 뱃삯만 받으면 그뿐이지요. 그렇지만 그런 조건이면 두 배로 주셔야합니다.”

“무사히 다녀만 와주신다면 뱃삯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검은 바다 쪽으로부터 신호가 왔다. 요시다도 약속된 신호를 보냈다. 배는 안전하게 뭍에 접안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실은 배는 깜깜한 현해탄으로 방향을 돌렸다. 낚싯배 수준을 겨우 면한 작은 배였지만 선장은 능숙하게 바다를 뚫고 나갔다. 잠시 후, 멀리 일본의 해안순시선이 보였다. 그는 이미 그들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듯이, 엔진을 멈추었다. 세 사람은 아무 대화도 하지 않은 채, 망망한 바다만 바라보았다. 밤에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기분은 두렵고도 막막했다. 하늘이 맑은 듯 밤하늘에 별들이 무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빛들로 인해 잠시 아늑함이 감돌았다. 뱃사람들은 참으로 고독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강대한의 머리를 스쳤다.

‘지금쯤 야스쿠니는 아수라장이 되어있겠지.’

그곳에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몸부림에 가까운 노력을 바친 몇 년의 시간이 허망했다.

‘나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어. 내가 아무리 일본인으로 살려고 했어도, 그들의 눈에는 타인일 뿐이었어. 그들이 경계하고 얕보는 ’조선인‘이지. 이렇게 떠날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해안순시선이 멀어지자 선장은 다시 시동을 걸었다. 배는 물살을 힘차게 헤치며 한반도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대한민국영해로 들어섰다.

“이제 한국의 영토 안으로 무사히 들어왔소. 안심하시오.”

선장의 말에 요시다와 강대한은 서로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그런데 무슨 비밀 작업을 했기에 요즘에는 사라진 밀항을 하시오.”

한국에 무사하게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요시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방금 야스쿠니 신사를 폭파하고 오는 길입니다.”

폭발에 이은 화재로 야스쿠니 신사 내의 주요 건물 3동의 형체가 사라졌다. 곧바로 출동한 소방대와 경찰이 현장 수습을 마치고, 곧바로 폭발물 감식과 범인 색출에 돌입했다. 범인은 쉽게 특정되었다.

“타이키를 잡아라.”

그들은 즉각 공항에 연락해서 그의 출국을 막았다. 그리고 타이키의 집으로 출동했다. 그렇지만 그의 종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인터넷에 뉴스가 봇물 터지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뉴스를 받은 한국의 인터넷 매체들도 앞 다투어 야스쿠니 신사의 폭파 사건을 게시하였다.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비상상태로 돌입하였다. 날이 밝자 야스쿠니 신사의 무너진 모습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온 세상이 들끓었다. 처음에 외신들은 ‘일본의 정신을 폭파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뉴스를 실어 날랐다. 어감이 주는 느낌은 무엇이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묘한 것이었다. 그럴리가 없지만, 마치 통쾌하다는 느낌도 주었다. 아직 범인을 구체화하지 못한 언론들은 폭파의 주체를 언급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범인이 언론에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론에 일본명 타이키, 한국이름 강대한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누나, 나 무사해. 당분간 연락 안 돼. 걱정 마.’

한국에 도착한 강대한은 누나에게 짧은 소식을 전하고 휴대폰을 파기했다. 걱정을 하고 있을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곧바로 한영운이 마련한 안가로 숨었다.

일본 경찰은 타이키가 공항에 나타나지 않자, 그가 밀항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니시가라쓰항 인근에서 타이키 일행이 사용했던 승용차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들은 한나절 만에 밀항을 도운 선장을 붙잡았다. 밀항선을 운행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한국에 불과 몇 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총사령관님! 제가 노출되었습니다.”

경상지역사령관의 다급한 연락이었다.

“알겠습니다. 거사를 수행하느라 노고 많았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지금 집에서 나오세요. 우리 대원이 곧 보호에 착수합니다.”

한영운은 이번 일에 조직의 전부를 걸었다. 자칫 조직망이 전부 드러나고, 그로인해 조직이 해체되는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민국 의사의 뒤를 이어 강대한 의사가 거사를 완수했다. 설민국 의사는 잃었지만, 강대한 의사는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대한독립의군부 대원 모두에게 비상사태에 대응하라는 지침이 하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