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기는 진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초목이 움트는 사월 초에 남해도로 파견되었다.
남해도에는 유존혁 장군이 웅거하며 남해연안과 경상도 지역을 방비하고 있었다.

지리산 일대에 화적떼가 출몰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삼별초군을 사칭하며 주변의 마을들을 약탈하고 있었다.
남해도의 삼별초군이 출동하였다.
배에 나눠 타고 섬진강을 따라 올라갔다.
이미 연통을 돌려 산청과 남원 쪽의 삼별초군도 미리 출동하도록 하였다.
산청과 남원 쪽의 삼별초군은 화적들이 도망갈 길에 복병을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구례에서 내린 삼별초군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화적들의 은거지로 향했다.
화적들은 갑론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삼별초군이 막강하고 무서우니 도망가자는 쪽과 그래도 지형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한판 붙어보자는 의견들이었다.
결국 도망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화적들은 짐을 꾸려서 산채를 떠났다.
삼별초군의 진군은 재빨랐다.
화적들이 도망 친지 얼마 안 되어 산채에 도착한 삼별초군은 화적들의 산채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도망치던 화적들은 삼별초군의 복병에 걸려 대부분 토벌되었다.

화적들을 토벌하고 귀로에 오른 삼별초군은 구례, 하동의 마을을 지나면서 화적들에게서 되찾은 식량과 재물들을 백성들에게 되돌려주었다.
백성들이 감사해하며 섬진강에서 따온 강굴을 대접하였다.
입안에 가득차서 향내를 풍기는 섬진강의 벚굴과 막걸리가 병사들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순찰을 돌던 경계병들이 일단의 수상한 자들을 데리고 왔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일본말이었다.
급히 통역을 찾아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고 하였다.
유존혁 장군은 이들을 진도에 보내기로 결정하고 며칠간 남해도에 머물도록 했다.
이들 중 한 사내가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단련된 몸짓에 무척 긴 칼을 차고 있었다.
순기는 호기심이 일었다.
알고 보니 사신단의 호위대장이었다.
이 사내도 순기의 반월 검에 호기심을 보였다.

결국 사신단의 호위대장과 순기 간에 무술대결이 벌어지게 되었다.
진중의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 순기와 호위대장이 서고, 주위를 삼별초군과 사신단 일행이 에워 쌓다.
국가 간의 대항전이었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호위대장이 먼저 칼을 뽑았다.
긴 칼을 상단으로 겨누었다.
순기는 반월 검을 오른쪽 하단으로 늘어뜨리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호위대장이 칼을 내려치고 순기가 맞받았다.
 ‘쨍그랑, 끼이익’
칼이 부딪치어 불꽃이 튀고 섬뜩한 소리가 났다.
무서운 공력이었다.
순기가 평소에 내공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상대방의 첫 공격에 밀렸을 테고 그랬으면 상대방의 가공할 연타공격에 그만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을 것이었다.
다행히 순기는 매일 꾸준히 내공수련을 하여 공력을 쌓아놓고 있었다.
상대방의 첫 공격을 무사히 받아내고 약간의 반격의 기미를 보였다.
호위대장은 내심 당황하였다.
지금까지 자기의 첫 공격에 무너지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첫 공격으로 상대방을 무너뜨린 뒤 계속된 연타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자기의 장기이었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자는 자신의 첫 공격을 막아낸 것에 그친 것이 아니고 막아내는 순간 반격을 가한 것이 아닌가?
맹렬한 첫 공격으로 상대가 약간 밀리지 않았다면 그 반격으로 자신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날 뻔하였다.
허리 쪽의 옷섶이 약간 베어진 것 같았다.
상대방의 반격이 두려워 호위대장은 마음껏 공격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방어를 위하여 공격에 6할 정도의 힘 밖에 쓸 수가 없었다.
순기는 이제 상대방의 공격을 겁낼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받아주며 끊임없이 칼을 상대방의 칼에 갖다 붙이었다.
반월 검의 장기는 붙임수에 있었다.
붙이는 순간 공격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호위대장은 수세에 몰려 쩔쩔매기 시작하였다.
작은 공간을 매섭게 파고드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하여 계속 뛰어서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해야했다.
급속도로 지쳐갔다.
결국 얼마못가 호위대장은 패배를 자인하고 말았다.
삼별초군에게서 환호성이 일었다.
일본의 사신단 일행은 일본 제일의 검술실력을 자랑하는 호위대장이 졌다는 사실에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저녁때 사신단 일행을 위하여 만찬이 베풀어졌다.
죽방으로 잡은 멸치회가 달래나물에 무쳐서 나왔다.
사신단 일행과 삼별초군의 앞에 있는 술잔이 끊임없이 비워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