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그냥 살다가도 가끔 어떤 일로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부끄러워하게

되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습니다. 

후지쯔배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박영훈9단에 대한 인터뷰기사를 읽었습니다.

프로기사의 인터뷰를 보고는 늘 기대와 실망을 반복 했으면서도

이번 인터뷰에도 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나 봅니다.

프로기사들과 인터뷰는 늘 그랬습니다.

뭔가 속시원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하기를 상상하는 것일까요?

우승할 수 있었던 비법일까요?

아니면 수담으로 나누었던 상대방과의 대화를 입을 통해서 듣고 싶은 것일까요?

저는 그 어떤 이야기로든지 우승의 통쾌함과 시원함을 같이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도 있습니다.

왜 그런 기사가 올라오지 않은 것일까?

바둑기자들이 너무 정직해서 일까?

바둑기자들은 일반 정치기사나 연예기자들과 달리 특종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일까?

기자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기사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없을리 만무한데

그렇다면 프로기사들의 수가 적다보니

프로기사에 대한 조금이라도 과한 기사를 싣는다든지하면

바둑계의 경직성과 엄숙주의 때문에 기자생활 힘들기 때문에 걸러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가장 유력한 이유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 오해가 며칠전 뜻밖의 곳에서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며칠째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펴 들고 읽고 있었습니다.

그 책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하수의 눈으로는 절대로 고수를 측량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수의 눈으로는 하수를 대번에 측량할 수 있다

  바둑의 고수들은 대국에서 이긴 다음 소감을 물으면

  대부분 자기가 잘두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상대가 실수를 해서

  이긴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의 대답은 입에 발라진 겸손이 아니라

  수많은 대국을 통해서 얻어낸 진실이다.

  그러나 하수들에게는 진실조차 가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하수들은 습관적으로 진실을 포획하는 그물보다

  가식을 포획하는 그물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가식과 진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고수라고 착각하는 하수는 문제가 심각하다...」

제가 그동안 너무나도 재미없는 인터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 제가 하수였기때문인가 봅니다.

기자는 최선을 다해서 취재를 했고 프로기사도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했는데

말입니다. 이외수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이라는 책에서 의외의

내용을 깨우칩니다.

부끄러움과 모자람이 가득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