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88, 노년의 두려움

김 사범과 강원장 나 셋이서 저녁식사를 나선다.

편 바둑 한 판을 두고 나니 판이 깨져 바둑도 못 두며 하릴없이 티브이만 보다 여러 차례 청하는 김 사범의 제안을 물리치지 못한다.

철판순대의 안주는 손길들을 주지 않는 채 소주와 맥주만 연신 오간다.

5살 때 할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다는 김 사범.

성균관의 박사였다는 조부는 손주에게 바둑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으셨다 보다.

30여 년간 교직생활을 하셨다는 교장 부친보다 기력이 나았다는 김 사범.

대우man으로 해외현장을 누볐었던 그는 바둑 때문에 놓쳤었던 승진이나 영전 등의 과거를 회고하며 바둑배운 것이 후회되고 할아버지가 원망스럽다고 한다.

15,000명의 투자자가 참가한 모의대회에서 700등 이내를 목표로 참가 후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스스로 시험하는 그는 체계적 분석적인 접근방법은 바둑에서 닦아진 것이 아닐까? 원만하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의 인품은 후회된다지만 바둑에서 얻은 것이 아닐까?

잠시 바둑학원을 운영하여 평소 원장소리를 듣고 있는 강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인텔리이다. 조선시대 말 프랑스공사를 지냈다는 집안내력인지 항상 온화한 그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온라인의 모의경마대회에 나가 2등인지 하여 상금을 받은 그는 막상 주말의 배팅엔 천원 단위이다. 그저 소일거리이겠지. 바둑 배운 것을 후회한다는 소리는 그에게서 들은 적이 없지만 그의 지금은 바둑에 연유된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겠지.

바둑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일까?

“훌라 가 바둑보다 재미있나요?”

정말 몇 번을 망설이며 물어보고 싶었는데 끝내 물어 보질 못 하였다.

바둑도 잘 두는 박8단이지만 전에 전해 들었던 전설은 7천인지 땄었다는 그 아닌가?

“구경을 해도 스릴이 없어”

“정말 저렇게 못할까?” 박8단.

12시 경부터 인지 바둑은 안 두고 훌라 를 시작한 국방부와 왕 장고 노인네 셋의 훌라를 곁에서 보다가 내 곁으로 온 박8단의 이야기 이다.

화투나 트럼프를 하려면 하우스 라는 곳에나 갈 것이지. 왜 기원에 오전부터 와서 저 소란들일까?

옆에 팀 노인들은 노인이니 그렇다손 쳐도, 아마 7순들은 넘었겠지.

그래 저 영감들은 나를 보며 저 나이에 왜 이곳에서 저렇게 죽치고 있을까? 지들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그러겠지. 온 국민의 스포츠이고 치매예방에 탁월하다는 고스톱이나 포커를 저 나이에 저렇게 즐길 수 있으면 행복한 것 이겠지.

그렇지만 이곳은 하우스가 아니고 기원인데.

분당에서 오는 박사장이 한 수 하자는데도 약속이 있는척하며 왕 장고는 국방부 노인네와 둘이 훌라를 시작한 판에 바둑 못 두는 다른 노인네는 점심 무렵 들어서며 너무 반가워하며 판에 앉는다. 바람 잡아 훌라 판 벌이는 것이 그 노인네의 전부인데 밥상이 차려진 채 기다리고 있으니 내 밥이다 싶겠지. 65는 틀림없이 넘었을 듯 하고 70도 넘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 노인은 이 세상 사는 재미가 훌라 인가 보다. 나는 할 줄을 모르지만 내가 바둑 두는 것이나 같은 것인가 보지.

편 바둑이 두 번 끝나자 판이 깨진다.

두 번 다 돈을 잃은 오퍼상 박 사장은 그만두며 남들 내기하는데 놀이를 들어간다. 4만원 잃은 것이 억울해 복구하려나 보다.

그는 잃었던 4만원을 금방 놀이로 복구한다. 저런 판단력과 배팅능력이 그의 비지니스를 유지해 온 비결일까?

년간 몇 십억씩 의료용품을 수입 판매하여 걱정이 없어 보이는 그이지만 자신이 잃은 4만원은 그 자리에서 복구를 해 버리는 능력의 소유자.

바둑이 잘 안 풀릴 때는 바둑을 고집하지 않고 배팅으로 판을 뒤집는 그.

나는 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 없으니 정말 큰 일이지.

그래도 오퍼상 박사장을 맞수임에도 그의 욕심과 억지를 분쇄하며 무려 92집을 이겼다.

사람 사는 내음을 맡기 위해 모이는 것일까?

몇 년째, 십 여 년째 모이고 이름도 모르는 채 술 한잔 같이 해보지 않는 이도 있어도 그저 그곳에 또 다시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 사범이 강원장이 이 교장이 타워크레인 기사 김씨가 건축사 김사장이 오퍼상 박사장이 조경업자 유이사가 인테리어 김씨가 전기 홍사장이 무역상 사장이 교도소 모씨가 치과 임원장이 사채 김사장이 택시기사 박 팔 단이 국방부 김사장이 잠실 새마을 시장에서 야채가게를 하던 왕 장고가 가락시장 상인 정원장이 김사장이 꾸준히 이곳에 오는 이유가 무엇 때문 이었을까?

청소도 안 해 지저분하고 씻지도 않았을 컵에 지저분해 걱정되어 물 한잔도 못 마시며 7순도 훨 넘었을 바둑도 못 두는 노인들의 노름판과 술타령 고성방가 소란에 끔찍하면서도 피할 수 없을 닥쳐올 노년의 두려움을 곁에서 바라보며 소름 끼치는데도 이곳에 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