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배 (空排)

                                                                                                                                  저니

마음을 비운다라는 표현은 말로는 참으로 쉽지만,  눈 앞에 보이는 것처럼 드러나지는 않는

관념적인 표현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비웠다고 합니다.

종교, 정치 등의 분야에서 즐겨 쓰이는 말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은 나는 비웠다고 말하는데 남들이 좀처럼 믿지 않는데 있습니다.

처녀가 시집 안간다는 말과 늙은 노인이 이제 죽어야지 하는 말처럼 말이지요.

바둑에서도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마치 승부와 무관해 보이는 말이지만,

마음을 비워도 바둑을 두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니 싫던 좋던 승부는 나겠지요.

단지 승부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수양이 부족한 사람이라 바둑에 지게 되면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서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느낌을 전달 받을 만큼 표가 나곤 합니다.

고스톱이나 당구같은   게임의 승부에 지게 되어도 좋은 표정이 나오기는 어렵지만,

바둑 만큼 몸 전체에 데미지를 입는 경우는 제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절대 마음을 비울 수가 없지요.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있습니다.

승부가 기울어 심란한 마음이 극에 다르면 중간에 돌을 투석하는 것으로 폭발해버리지만,

조금 부족한 계가의 양상이면 끝까지 두어가고 마지막 공배를 천천히 하나씩 메워가며

체념하듯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걸리지만, 서서히 평온이 찾아오지요.

공배... 공배는 누구의 집도 아닙니다 (중국 룰에서는 다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치 이승과 저승의 중간 구천과도 같은 곳이지요.

물론 이렇게 잘 안될 때가 더 많이 있어도 구천을 메우며 삶도 죽음도 사실 하나가 됩니다.

이긴 승부와 진 승부의 중간의 천길 낭떨어지 처럼 깊던 공간도 공배 메움으로 평탄해집니다.

한용운 님의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라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불교관처럼

어쩌면 마음을 비우는 것과 공배를 매우는 것이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비우지 않고 채워서 얻는 바둑이야 말로 정말 멋진 삶의 도구가 아닐런지요.

내가 남긴 핸드폰 메시지
                                            저니
죽도록 공부하면
죽는 것은 볼펜심이고
 
죽도록 사랑하면
죽는 것은 이기심이다.
 
다 같은 심(心)이 비워지는 구나.

사랑합니다. 오로 회원님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