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를 챙겨서 우체국에 갔다. 

신춘문예 단편소설부문에 응시하기 위해서였다. 

원고를 부치고 나서는 홀가분하면서도 어쩐지 아쉽고도 처연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을 쓰는 동안, 그리고 작품을 완성하고서는 상당히 고양된 기분이었다. 

스스로 내 작품에 감동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원고지에 옮겨 쓰는 동안에 모든 감동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쓸수록 어쩐지 작품이 어설프고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고지에 옮겨 쓰는 기간이 일주일 정도는 되었다. 

하루에 10장 정도를 썼다. 단순한 노동이다. 

예민한 볼펜(다소 비싼)으로 쓰기에 힘들여서 꽉꽉 눌러써도 안 되고 적당히 힘을 주어야했다. 

마치 붓글씨를 쓰는 기분이었다. 

 나쁘게 생각하면 기가 소진 되는 것이고, 좋게 생각하면 기를 적당히 운용하는 것이다. 

컴퓨터로 써 논 글을 읽었을 때에는 그냥 그런대로 괜찮았었는데 원고지에 써 놓고 나니까 왜 이렇게 약점이 많을까? 

우선 글씨가 마음에 안 들었다. 

삐뚤빼뚤 영 엉망이다. 아무리 정성들여서 써도 글씨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문맥도 이상하게 컴퓨터에 써 놓은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했지. 작품의 교정은 토가 나올 정도로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그러나 게으른 나는 교정을 적당히 하고 말았다. 

그것이 원고지에 옮겨 쓰는 동안에 들어난 것인가? 

 그러나 단순히 교정의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전반적으로 작품전체가 엉망이 아닐까?

아내가 친구를 만나러 갔다. 딸도 동행하였다. 

나는 자유로운 기분이면서도 어설픈 작품 때문에 우울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이번 작품은 틀려버린 것이고, 나는 이제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독서를 계속 하고, 될수록 조그마한 것이라도 잘 느껴보는 것이다. 

그까짓 글이야 안 써도 그만 아닌가?

두메산골 쌈밥집에 가기로 했다. 

자장면에 이과두주를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옥식각신 끝에 쌈밥집으로 결정을 했다.

식당은 그야말로 초 만 원이었다. 

앉을 자리가 딱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그 자리에 앉았다. 

바로 옆에서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똑 똑 부러지게 자기주장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네들에게 폐가 안 되도록 조심하면서 행동을 하였다. 

사장님이 알아서 두부조림을 소주 안주로 미리 챙겨주었다. 

나는 호기롭게(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았다.) 술병을 따서 한잔을 안주 없이 따라 마셨다. 그래 바로 이 기분이지. 일만 사천 원에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이 절대 자리에 내가 앉았다.

옆에서 이야기 하는 여학생들의 음성이 내게는 음악으로 들려왔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음성은 왜 이렇게 똑똑한가? 

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는데 나도 그렇게 똑똑했을까? 

“그 런 가 유? 잘 몰라 유.” 긁적긁적. 이것이 젊었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게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못난 나의 모습.

시간이 지나자 꽉 차 있던 식당이 순식간에 텅 비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나의 옆자리 손님들마저 떠나자 그야말로 고립무원, 나 혼자서만 식당에 남아있게 되었다. 

왜 이렇게 허전한가? 인간세상은 그냥 복작복작한 것이 매력이 아닌가? 

그냥 감상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었다. 

빈자리를 정리하는 식당 종업원들의 손길을 보면서 내가 계속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어쩌면 폐가 될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업원들도 빨리 정리를 하고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속으로 안절부절한 찰나 남자 손님 둘이서 식당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들이었다.

뒤돌아 앉은 젊은 친구의 모습이 웬 지 낯익었다. 

어디서 본 듯했다. 그렇다. 국민의 힘 대표였던 이 준석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 친구는 절대로 이준석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쪽을 보고 “야, 준석아.” 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들이 구세주였기 때문이었을까?

국민의 힘에서 이 준석이 설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었다. 

그리고 이 준석을 내 친 것에 대하여 내심 환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준석과 같은 뒷모습을 보고는 어째서 반갑게 느껴졌을까?

앞의 젊은이를 보고 야, 준석아. 하고 외친다면 그 젊은이의 반응을 어떨까? 

아무리 좋게 봐도 70프로 정도는 부정적일 것이다.

나는 부르는 것을 애써 참았다. 

만약 실제로 이 준석이었더라도 나는 아무 말 없이 술 한 잔만을 나누었을 것이다.

두 명의 여자 손님이 또 들어왔다. 

나는 식당을 나오면서 사장님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사장님이 가끔 길에서 만나는 동네 주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험준한 두메산골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네요?” 

 사장님은 나에게 찾아주어서 아주 고맙다고 답례를 하였다.

‘두메산골’ 다정한 이름이다. 

‘유정천리’란 유행가에도 나오는가? 

요즈음 본 체로키 인디언 소년 이었던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이란 책에 나오는 그런 숲의 동네 느낌이 난다.

집에 돌아오면서 나 자신에게 반문을 했다. 

야, 임마. 너는 누구냐? 정체성은 있는 것이냐?

하늘을 올려다보니 흰 구름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