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96, 꿈속의 친구

하나 둘 기원에서의 에피소드와 주변에 바둑에 관련된 일이 많다 보니 일기형식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벌써 백 회를 다가서게 되었다. 고지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아서 인지 95편을 쓴 이래 여러 날이 지난다.

오늘은 오늘 두게 될 대국은 내 개인 바둑史 중에서도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다.

그는 s대 외교 과를 졸업했는데 외교관으로 세계를 누비는 일보다 조용히 혼자 있는 일을 선호 했나 보다. 모 경제연구소를 거쳐 개인 전업투자자로 활약한지 오래이다.

그는 탕젬골 7단 이라던데 힘이 센 戰鬪(전투)형 바둑이다.

고교대회 기수 별 대표로 출전하면 괴력으로 상대를 초장에 큰 차이로 제압하여 그가 출전하면 우리 기수의 단체전 우승확률이 상당히 높은데도 그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기가 싫다며 가능하면 빠지려 한다.

그는 술을 못한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적다던데 소주잔 두 잔만 마시면 얼굴이 벌겋고 숨이 가빠하는 것 같아 보는 내가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저녁이나 같이 하자며 6시경에 만나자고 전화했던 그는 금새 다시 걸어 “바둑이나 한 판 할까?” “4시쯤 어떨까? 일이 몇 시에 끝나지?”묻는다.

지난 가을 그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홍보를 위해 티브이 출연준비와 모 종단과의 협조 진행 등으로 바쁘다며 나중에 소식을 전하겠다는 통화가 마지막이었었지.

내가 눈을 감을 때 어떤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을까 자문자답해보면 우선적으로 그일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오랜 친구거나 학교 동기이거나 직장동료 군대 친구 등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각각 소중한 오랜 추억과 경험을 공유한 이들도 많지만 특히 바둑에 관련된 친구들이 자주 만나게 되고 매월 테니스장에 모이는 친한 벗들이 있지만 한 명을 택하라면 그 일 것 같다.

그와는 사실 몇 번 만난 기회도 많지 않다.

고교 졸업 후 30여 년 지나 동문바둑대회 출전하느라 몇 번 만나고 개인적으론 딱 한번 같이 만나 바둑을 작년 이맘때 두었었지.

작년 이맘때 그와의 바둑을 두 번 바둑일기 에 올린 적이 있지.

바둑일기51, 오만의 대가(07/6/11), 바둑일기52, 국교의 초석(07/6/14)

그를 만나면 무슨 예기를 할까 생각해보느라 이른 아침부터 잠이 깬다.

정말 그가 보고 싶었고 최근 몇 달 동안 그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지 하며 스스로 미뤄왔었다. 그런 그에게서 어제 먼저 연락이 왔다.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몰랐을 텐데?”

“홈페이지에서 읽어봤어”

시간을 잊기 위해 꿈의구장 에서 바둑을 두던 중 받은 그의 전화는 너무나 반갑다.

그래 정말 보고 싶었는데 오늘 보게 되는군.

내가 먼저는 연락을 하지 못했을 텐데.

이 시점에서 그를 보는 것은 내겐 큰 기쁨과 위안으로 남겠지.

무슨 예기를 하나?

그저 바둑을 한 판 두는 것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