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포구

온돌방 안에 빙 둘러앉아 찬송가를 부를 때면 늘 외할아버지 의 음색만 선명히 들린다. 책을 읽는듯한 박자도 없이 낮고 굵은 목소리는 다른 이 들이 열심히 부르는 찬송의 경건함을 훼손시키는 듯 한 느낌이다.

갑자기 교회를 다녀야 한다며 교인들이 집에 자주 찾아오고 일요일엔 어머니를 따라 서대문근처의 새로 생긴 교회에 중등부에 처음간 날, 내 또래의 어린 교복 속 의 학생들이 새로 온 이를 반기기는커녕 기도에만 여념이 없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로선 흔하지 않았을 통성기도 방언기도 에 놀라 슬그머니 되돌아 문을 열고 나와 교회를 벗어났다.

왕장고 는 국방부 와 바둑을 두며 향수에 잠긴 듯 “내가 중학 때는 바둑깨나 잘 둔다고 소문났던 실력인데~” 한다.

“중학 때 계림극장 부근에 계림기원이라고 있었어~”

한 20년 전에는 강원장도 세 점을 놓고 두었다지만 지금은 영감님의 밋밋한 옛날바둑 일뿐 지금은 외레 강원장에게 두 점을 놓는다지.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장고 후에 무슨 뾰족한 수 라도 내는 것도 아닌 채 전투감각은 사라진 억지바둑일 뿐이다.

나 역시 중학시절부터 바둑을 시작했으나 실력의 성취는 사람 따라 한계가 다른듯하다.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면 치열함과 감투정신 등 필요한 덕목들이 사라지고 오히려 실력이 주는 것 이겠지. 내가 저분들 나이가 되면 내 기력도 감퇴될 것이 확실할 듯 하다. 왕년에 내가~, 소싯적에 내가~ 해 봐야 배 떠난 항구 저무는 포구겠지.

일어서서 부르는 찬송 속에 바로 옆 처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귀를 기울여도 잘 들리지 않고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부담스레 들린다. 박자도 안 맞고 저음의 책을 읽는듯한 어려서 많이 듣던 할아버지의 찬송가 기억과 함께.. 이제 세월이 꽤나 흐른 것 이지. 교회가 끝나고 오후엔 꿈의구장 에 잠깐이라도 들려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고교기우회 를 오로에 만들고는 후배들과 힘을 합쳐 회원 150여명 이상의 기초토대를 만들고 모교 체육대회에 바둑을 포함시켜 동문가족들과 프로기사 초청 다면기를 통해 가족 모두의 즐거움으로 승화 시키고, 젊은이들의 바둑클럽과 인터넷 대항전은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이 생중계를 하며 인기 절정이었고, 장애아동들의 후원도 시작하고 장애기우에게 휠체어를 보내고 장애기우와 프로의 인터넷 다면기도 주최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 하였더니 10여 년 선배들이 총동창회 산하의 정식 편제로 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운영을 맡아 영감님들의 잔치가 되어버렸다.

꿈의구장 원장은 젊게 사시려 노력하는 듯 하다. 청바지에 쉐터 는 10여년전 유행하던 홍콩 스타일이다. 벽화 는 어쩐지 이발소 수준을 벗어난 듯 했는데 이대 서양학과 졸업 후 국전에 입상했던 따님의 작품이란다. 왕장고 와 동갑 이라는데 기력은 못 미쳐도 라이프 스타일은 멋지신 것 같다.

10년 연상이라 하여 무시했던 그 때가 언제였던가?

7년 전 인듯한데 그럼 나도 이제 그때 그분들의 나이와 거의 진배 없지 않는가?

어렸을 적 외우던 시구가 생각난다.

왼손에 몽치 들고

오른손에 가시 들고

오는 세월 막으려 해도

귀밑머리 세임은 막을 수가 없노라.

어느 순간이건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모든 이를 최상으로 섬길 때에

반상의 패배를 줄이고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 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