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로운 바둑

부스스한 얼굴로 두시 넘게 일어난 그는 배가 고픈지 원장이 술집에 납품하는 냉동고속의

배를 꺼내 들곤 선채로 과도로 깍고있다.

헝클어진 머리, 깍지 못한 수염, 며칠째 갈아 입지 않고 입고 잤을 옷가지..

조선말 역관의 집 후예라는 그는 일본어자격 1급 인지도 가진 똑똑한 친구 이고 가끔 일본의 친구를 만나러 다녀오기도 하고 일본에서 친구가 찾아오기도 한다.

웨이브 진 듯한 머리에 귀공자 같은 좋은 인상, 선량한 품성에 차분한 좋은 인상인데

꿈의 구장에서 매일 집에도 가지 않는 채 점심도 훨 지나 일어나고 밤엔 바둑으로 지새우기

일쑤이다.

자타 공인하는 실력인데도 밑천이 짧아서인지 항상 지는 편 이고 항상 배팅 할 돈도 없어 이사람 저 사람에게 만원 이 만원씩 빌려 모두에게 빚진듯하다. 나는 4만원인지 오래 전에 포기 하였지.

그의 바둑을 관전하노라면 지지 않으려고 잃지 않으려고 장고를 거듭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아름답다기 보다는 훌륭하다기 보다는 애처롭다는 느낌이 든다.

저리 출중한 실력을 애처롭다면 나는 그리 말할 자격이 있는 것 일까?

내 바둑은 무엇일까? 배부른 바둑일까?

그의 장고는 이미 알고 있는 일 이지만

가끔은 장고라는 나 조차도 지긋지긋 할 때가 있다.

“좀 잡수세요” 한쪽을 칼로 베어주며 계속 서서 배를 먹고 있다.

땅딸이 정과 수입상 박은 편바둑에 여념이 없다.

농산물시장에서 평생 장사를 하다 은퇴한 정은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초로의 영감 이어

오전엔 배트민트장 에서 운동을 하다 오후에는 바둑이 일 이다. 비싼 일본브랜드 운동복 차림이지만 말하는 건 싸구려다.

술도 안 한다는 박은 년간 몇 십억 의료품 수입을 하는데 알아서 돌아가는 회사에 오후엔 바둑이 소일이다. 옷차림도 신경 쓰질 않고 편한 허름한 막 옷에 여유 만만이다.

“더 드세요”

두 번 세 번 한쪽씩 배를 더 잘라주는데 옆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여러 쪽 을 나눠줄 셈 이면 정 이나 박 에게도 한쪽씩 주어야 할 텐데..

나중에 누가 배를 먹었냐고 정원장이 따지면 나와 먹었다고 해야 말을 듣지 않는다는 셈 일까?

선3목의 흑번은 항상 승부를 장담할수 없다. 승부는 항상 몇집 차이 이지만 조금만 약하게 대응하면 금새 두세방 차로 벌어진다. 이기면 한방 이내 이지만 이겨도 그리 개운치는 않다.

동등한 조건에서 대국을 한다면 내가 더 불리할 듯 하다.

고스톱의 타짜 여도 밑천없이 대들면 판에 운신이 쉽지않겠지.

한판 이라도 잃으면 안 된다는 만원 이라도 잃으면 안 된다는 투혼 을 가지고 두는 바둑 이어 한 수 한 수 에 정성을 담아 목숨을 담아 최선으로 두는 상대여서 게다가 엄청난 장고 여서 보통사람 들은 질리기 쉽상이다.

세시간은 걸렸을까?

한집 차이이다.

같은 편 박 이 7집을 이겼는데 내가 8집을 졌다.

“두 시간 반 을 기다렸는데 정말 열 받네~” 박사장은 일어서며 한마디..

“질 수가 없는 바둑을 지네” 관전하던 김 사범도 한 마디..

마지막 마무리에서 근 30집짜리 대마를 헌납하여 졌다.

한집도 양보치 않으려고 치열하게 두던 것을 착각을 했다.

그리고도 한집차이인데 던지지 않고 세시간을 둔 것을 보면 그 답 긴 하다.

승부에 관계없이 돈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 한다는 즐거움으로 바둑을 두는, 반상의 얽힌 돌들의 최상의 효용을 실험해 보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역전패 그것도 착각으로 대마를 헌납했다는 것이 치욕스럽다.

그는 만원을 잃지 않기 위해 세시간을 버틴 것이고

나는 돌들의 효용을 반상의 흐름을 만끽하려 세시간을 참은 것인가?

애처로운 바둑!

그 에겐 즐김 이 아닌 고통 이겟지.

묘미 에 빠져 세 시간을 고통 을 참아내는 나도 남에겐 애처롭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