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내가 40년을 바둑 뒀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야”

편바둑 을 이미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자기들끼리 친선바둑을 두는 옆의 이들에게 이야기 한다.

“에이 내가 졌다 그러고 가버려야지”

그는 귀가 어두워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들어 못들을 줄 알고 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반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뾰족한 수도 없는 상황을 하염없는 장고를 하는 것이 괘씸해 한 이야기 이기도 하지만

그의 바둑매너는 정말 참기가 어렵다.

반상을 손가락으로 저 혼자 이리저리 가리키며 중얼거리고

남이 둔 돌을 매 번 꼭 건드려 삐뚤게 만든다.

조금만 유리하면 옆의 이들에게 좋아서 듣는 이도 없는데 저 혼자 이야기하고

저 혼자 중얼거리면 두던 이는 묻는다.

“누가 물어 봤냐고?”

조금 불리하면 끝없는 장고이다.

88만원 인생 이라는 화두가 장안에 회자된다지만

비 정규직의 처우는 정말 당사자들의 인생을 처량하게 왜소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근무인원 4500 의 S의료원은 의사 천 간호사 천오백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거의 72개 협력회사의 비 정규직 이다. 매년 계약 연장을 하여도 십 여년씩 근무는 가능 했었는데 4년 이상 근무자는 정규직전환을 해주라는 정부의 고마운 조처 덕분에 오래 근무한 병원에 꼭 필요한 유 경험자들은 무더기로 잘렷다. 나와는 직접 상관은 없는 일 이지만 세상살이는 이리 어려운 것 일까.

마감을 해야 한다며 회사에 일찍 나간 처가 안쓰럽다.

새벽부터 그날 가르칠 교재를 먼저 공부하느라 돋보기를 쓴 채 거실 작은 상 위에 노트북과 학습지를 수북이 쌓아놓고 있는 처. 중등 수학이나 영어는 미리 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른다는 고난 함. 오전엔 회사에서 회의와 정리 후 오후부턴 매월 거의 150여명을 학습지를 직접 갖다 주고 진도를 챙긴다. 밤 9시 10시 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면 밀린 집안일과 자식들 챙기기는 거를 수 없는 여인의 일과이다.

명색은 교사 이지만 자신들끼린 노가다 라고 자조 한다나.

노력에 비해 생계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해 지난 2년의 고생 끝에 퇴사를 신청해도 입사시 보증보험을 받아놓은 사측은 이런저런 핑계로 쉽게 허용도 안 한다나.

조금 더 벌어놓고 여유가 생기면 봉사활동을 시작해야지 하며 한 해 한 해 미룬 채 지난 십여년 이 너무 아쉬워 무작정 시작 후 5년째 이었던 지난해엔 두 가지를 병행하기 어려워 병원도 사직하며 전념하였다.

글쓰기를 전업으로 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지만 용기가 서질 않는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청조실록을 소장하고 있다는 예일대 석좌교수처럼 창작이 아니더라도 역사와 자료의 보고에서 헤엄만 쳐도 의미 있는 용기 있는 마감이 될 듯 하지만 언감생심이다.

해외봉사단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 이냐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항상 격려를 해주는 처.

작가가 되기를 원하면 시작 하라는 처.

당신은 돈 하고는 거리가 먼 듯 하니 내가 더 벌겠다는 처.

연말 이어 새해의 계획 신년사의 작성 등 생각할 것은 처리할 일은 산적해 있어도 바둑 한 판에 모든 것을 잊고 싶어 찾는 꿈의구장 에서 웬만하면 참고 모나지 않게 예의 바르게 하고 싶어도 이 양반은 이리도 사람을 괴롭힐까?

백번 에 양고목 으로 시작한 그는 세를 쌓는 것도 아닌 채 지렁이처럼 일선 이선을 구불구불 기어 다니거나 적진에서 되지도 않을 헤엄만 치다 대마가 몰살된다. 하수들과 접바둑만 두어 버릇 해서인지 모르지만 관전하는 하수들 조차 그를 비웃는다. 계가를 하니 96집을 이겼다.

호남의 명문 K고와 S대를 나왔다는 그는 사람 이름은 한번만 듣고도 기억은 잘 한다.

사람은 좋다고 소문 났음에도 반상에서 무례하고 무모한 그의 운영은 그와 반 외의 평소에도 인사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사범이란 칭호는 그에겐 아직 이를듯하다.

바둑은 반상에서 모든 것이 평가 되는 것 일까?

한 해를 마감 하는 날 이어서 인지 아침부터 만감이 교체된다.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지만 그것조차 허명을 쫓는 공명심 아닐까?

작가가 된들 불후의 명저를 설령 남긴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려서 우연히 배운 바둑.

나이 들어 인생의 전혀 다른 분야로 발걸음을 하게 해 준 바둑.

괴롭거나 어려웠던 순간 순간들을 잊게 해 주었던 바둑.

오로 바둑사이트에서 돋보기를 쓴 채 나의 글을 읽는 처.

나를 이해해 주는 처 와 바둑이 있으니 이만하면 족한 것 이겠지.

묵은해를 보내며 한판 바둑을 두고 새해를 새롭게 맞이해야지.

바둑일기66, 마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