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ting pot

오래 있었는지 도우미들도 조금 김빠진 지친 표정에 꿈의구장 동생들도 일어서려던 직전의 모습이다. 밤10시에 전화가 와 오늘이 생일 이어 노래방에 있다며 초대를 하여 엉겁결에 온 시간은 10시반 경이다.

처에게 같이 가기를 청하니 도우미도 있다는데 내가 어떻게 가냐며 당신이나 가서 재미있게 놀다 오라지만 부득불 같이 나선다.

생일의 주인공인 범수 는 백 점이 나오자 만원 권 하나를 꺼내 대형티비 화면에 붙여놓는다.

“도우미 들은 이혼녀인가?” 처음 본 모습 이어 궁금한 것도 많은지 귀엣말로 이것저것 묻는데 대답하기도 곤란하다.

“오늘이 생일인지도 몰랐는데 지방에서 형수가 문자를 보내줘서 알았어요”

“작년 생일에 영길이가 기억하고 챙겨준 것이 고마워서 오늘은 제가 한잔 사려고요”

저녁에 반주를 먹은 터에 년 말의 기분도 승하여 노래와 맥주에 취해본다.

꿈의구장 식구들을 처가 본 것은 처음인데 사실 내색하지 않고 항상 이해하여 주고 하는 것이 내심 고맙다. 부침개 나 샌드위치 과일 등을 가끔씩 보내곤 하였지.

오늘은 구경만하였던가? 아니 한판 두었지.

마른침을 탁탁 뱉으며 요다 의 도끼질처럼 탕 소리를 내며 바둑알을 내리꽂는 땅딸이 정원장과 한판 두었지. 누구하고 두던 마구잡이로 하수대하듯 두는 그이 초식은 하수에겐 대 여섯 방씩 이길 때도 있지만 저 역시 질 때는 대여섯 방인데 부끄러움도 모른다.

게다가 조금만 불리하면 마냥 끝도 없는 장고이다. 지겨운 장고는 모두가 알고 머리를 흔드는 것 인데도 “나는 장고는 안 해~” 할 때면 저이가 제정신인가 싶다.

조화와 예를 추구하는 것이 바둑일 텐데. 비슷한 동급 대여섯 중에서 동급들에겐 항상 지는 편이고 승률이 낮아 돈으로 메우지만 평생 K시장에서 양파 한 품목으로 꽤나 모아두었다고들 한다 .

기다리고 참으면 무조건 이기는 것을 알면서도 하도 무례한 태도에 같이 흥분이라도 하랴 치면 난전에서 가끔 판을 그르치기도 한다. 기상천외한 기수 이수 들을 두어 좋은 수 라기보다는 비트는 수인데 괘씸해 혼내줘야지 하다 보면 오히려 걸려드는 수도 있다.

“형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실한 편 이죠”

2차 맥주 집 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처에게 묻는 말에 대답하기가 곤란하여 한 대답 이란다.

인테리어를 하는 그는 세력과 싸움을 좋아해 한방 이내의 승부로 가야 하는 편 바둑에선 환영을 받지 못한다. 질 때는 많이 져서 같은 편 에게 폐를 끼치기 일수이다.

건달 노릇도 해 보았다지만 태생이 온순한 그에겐 반상이 모험의 장 이었을까?

“형님 소리를 처음 해 보았어요~”

그의 말에 공감이 되며 그와 여러 차례 반 외 에서 어울렸던 자리들이 떠 오른다.

동상 이라 부르며 친근히 지내던 다른 이는 모처럼 술자리에서 대화를 한다.

그의 지혜와 현명함이 번득이는 것이 취중에도 느껴진다. 아직 젊지만 세상살이의 지혜와 경험은 나와 다른 분야에서 체험으로만 다져진 듯 하다.

조금만 챤스가 생기면 마냥 밀어붙여 승기를 잡는 그의 바둑은 오랜 공부 나 내공 이 아닌 세상살이의 체험을 실천 하는 듯 하다. 작은 기회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졍글의 생존본능 이겠지.

밤새워 방내기를 해 딴 돈 10만원으로 상대를 설롱탕 을 사준 후 모처럼 찜질방 에 갔다가 성 추행범으로 몰려 45일간 구치소 다녀왔다는 동상은 숨기거나 부끄러워 하기 보다는 자신은 인터내셔널 로이어 라며 그 안에서도 다른 이들 상담을 해주느라 바빴고 부러 일주일을 늦춰 나왔다나.

원래 형제가 없지만 마음으로 따라주는 동생들이 생기니 마음속은 흐뭇하다.

고교 기우회 에서 수많은 후배들과 수많은 시간들을 보내봤지만 동생 이란 생각이 들었거나 동생을 자처하던 후배가 그런 때가 있었던가 자문해 본다.

다양한 생활과 다양한 군상을 모두 용광로 처럼 한 판의 반상 속에 녹여내는 것이 바둑일까?

미국을 멜팅팟(melting pot)이라더니 꿈의 구장이 멜팅팟 인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