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yrs 13yrs

5시에 일어나 움직이는 습관은 몸에 배었다.

술이라도 과음 후 늦게 잠자리에 들면 일어나는 것도 늦을 듯 한데 오히려 두 세시 경에 눈이 떠 지고 잠이 안 온다.

잠을 이기지 못해 군에서 보초를 설 때도 부대회식 날 식판 에 막걸리를 한 사발 먹고 보초를 나갔다가 잠들어 순찰사관이 총을 내무반에 가져간 것도 몰라 원산폭격을 한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대학시절 방학이면 진주 지리산 자락 대원사 에서 공부하느라 오래 머무르며 스님들의 생활처럼 9시 취침 3시 기상을 해보았지만 일요일이면 점심 무렵 기상하던 젊은 시절의 추억은 지금도 새롭다. 푹 잘 수 있는 게 좋은 것이지.

짜인 직장생활에 모범적인 모습을 잃지 않느라 일찍 출근하고 심지어는 밤새 동료들과 회식으로 밤샘 술판 후에도 어김없이 제시간에 제 모습으로 출근해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든가 출근부의 도장과 상사들의 눈도장만 찍은 후 사우나 혹은 이발소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 위선 이겠지.

시간이 지나 한 달이 되고 때가 되면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 아닌 나의 잡을 시작하니 잠이 안 온다. 명절이면 보너스 와 자사 그룹제품의 선물이 나오는 것이 아닌 주변과 관련되는 사람들에게 참치 한 상자 라도 보내야 하는 현실이 버겁다. 자다가 눈을 뜨면 네 시 세 시 두 시 이다.

병원에 다니며 한편으로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사회활동을 동호회 활동으로 시작했다.

핸디.. 이라는 이름으로 오로 에서 시작한 바둑동호회는 회원 240여명이 되며 전국의 회원이 영등포 역 앞 기원에서 모임도 갖고 가슴 이하를 못 쓴다는 마산의 바둑인과 흑기사 김9단의 온라인 바둑을 주선하고 진주의 여 회원에게는 휠체어를 보내 “예쁜 발을 선사해주어 고맙다”는 감동 어린 답을 받는 등 한 단계 승화되며 국내외 장애아동을 위한 의료봉사단으로 성장하여 7차례의 해외의료봉사를 실시 하였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자문 해 보며 당시 답은 13년 이군 싶었다. 60이 되면 은퇴하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이들 젊은 이들에게 맡겨야지 하며 나름 오래 생각한 결론이었지. 벌써 반은 지나 이제 7년 남은 것인데 아직 사상누각처럼 다져놓은 일이 별로 없다.

꿈의 구장 도 많이 변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은퇴 후 오퍼상을 하며 아침 10시면 기원에 어김없이 출근하던 심사장, 의료기 수입상을 하며 11시면 벌써 일을 마치고 기원에 출근해 업무는 전화로 지시하는 박사장, 학교가 파한 후 매일 들리는 사립학교 초교 교장, 노태우 시절 높은 공직에 있었다던 명품으로 치장한 노신사 외에도 수많은 마귀들은 기원에서 숙식하며 그들의 이른 출근에 맞춰 일찍 기상하여 hunting hour를 기다렸다. 마귀(주.1)와 사냥감은 정글의 법칙과는 달리 사냥감만 희생되는 것이 아닌 반상의 결과에 따라 마귀들의 주머니 속 쌈짓돈이 나가기도 하니 오히려 공평하다. 바둑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사냥꾼과 사냥감 인 것이 다른 점이지.

이제 마귀들의 기상시간은 오후 네 시로 바뀌었다.

만원이던 판돈을 2만원 3만원으로 올리고 마귀들끼리 밤샘을 한 후 새벽엔 술을 마시고 대낮까지 일어나지 못한다. 고만고만한 주머니 속 쌈짓돈들을 자기들끼리 잃거나 따거나 해봐야 제로섬 이론에 술추렴 목욕비에 밑천만 줄고 총알조차 없는 마귀는 떠난다.

지금부터 2년이 중요할 것 같다.

아직도 기반이 단단하지 못한 봉사단의 자리매김도 그리 오래 시간이 필요했는데 무엇을 하던 최소 2년은 지나봐야 판단이 서겠지.

강아지들은 올해나 내년까지는 길을 잡을 테고 처의 새 비지니스 도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2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하여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13yrs 속의 2yrs 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책을 보며 신문을 보며 티브이를 보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카리스마 도끼의 치욕 이라는 요다9단의 도끼 타법이 목진석9단과의 대국에서 첫돌을 멋있게 대고목에 내려 찍는다는 것이 미끄러져 반 외로 떨어져 사진기자들을 고생시켰다는 기사에 혼자 웃어본다. 이길 수 없던 판을 사석작전으로 요행히 이긴 목9단.

맞아 세상일엔 요행 도 있는 법 이지.

몇 명이 어울려 편 바둑을 두면 서로 좋을 텐데 모르는 척 하며 자신에게 쉬워 보이는 이 와 개인전을 두는 몇 명. 오락부장 이나 건축사 김사장, 국방부, 인테리어 김, 식당 최사장, 최 사범. 무엇이 도리인지 습관적으로 오랫동안 해온 일 이어 모두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며 남을 배려하는 자세들은 집에 두고 온 이들.

군중 속의 외로움 이라더니 시간을 보내려 온 곳이니 책을 보면 나야 더 좋지만 그리도 오랫동안 알아오던 저들의 마음속이 멀게만 느껴진다. 국내외에 전화와 메일만 하여도 부족할 시간에 바둑 속에서 위안을 찾아보려는 나의 마음이 과욕이겠지.

我作人 글을 읽으며 마음이 꽉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오로 광장에서 바둑계 의 풍향을 가늠해보고, 많은 빚을 진 바둑인 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해보며 내 마음의 위안을 얻는 장소인 꿈의구장 도 이젠 멀게 느껴진다.

2yrs의 무게가 너무 가위 눌리는 것일까?

13yrs의 남은 기간이 너무 빨리 다가옴이 두려워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