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입으려고 했던 치마정장이 안맞았기 때문. 어젯밤에 먹고 잔 복숭아탓을 애써 해보지만.. 어찌 복숭아가 치마 싸이즈를 관장하랴..

그동안 먹고 또 먹고.. 너무 긴장을 안한 탓.
오늘부터 다이어트다.

  바둑리그를 마치고 청주에서 올라오던 그날.

  저녁을 먹지 않고 출발한다는 차편이 있다길래.. 차를 얻어탔는데, 그게 김만수 사범님 차였다. 뒷좌석에도 사범님 두분. 앞차에도 사범님 세분. 이렇게 일곱명이서 서울로 출발.

  중간에 차가 막힐 지 모르니 저녁을 먹자는 분위기. 앞차가 음식점을 못찾고 머뭇머뭇거리자 김만수 사범님이 속도를 내셨다. 그래서 들어간 음식점.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여섯명의 꽃미남 사범님들과 함께 음식점을 들어가려니 민망하면서도 괜히 으쓱해지는건.. ^^

  식사를 하면서 보니.. 나보다 나이 많은 사범님이 김만수 사범님과 안조영 사범님뿐..
예상외였다. (나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구나.. ㅜㅜ 얼마전까지만해도 어디가나 막내였는데.. 흑..)

야채가 나왔는데.. 고근태 사범님.. 세 접시째 야채를 비우고 있었다.

“얘는 야채를 이렇게 잘먹어서 살이 안쪄..” 다른 사범님의 핀잔에도 굴하지않고 식사를 이어가는 고근태사범님.
“나는 왜 먹어도 살이 안찔까?” 라는 얄미운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그말에 갑자기 식욕 떨어진 은하.. ㅜㅜ)

  밥을 먹고나선 사는 동네를 서로 맞춰서 다시 차를 나눠타니 김만수 사범님 차에서 버려지고..(ㅜㅜ) 안조영 사범님이 주워(?)주셨다.

  차안엔 초면인 세 남자.
운전에 안조영 사범님. 뒷자석에 조한승, 고근태 사범님.

  참 할말이 없었다.

  그러다 나온 얘기.
왜 고근태 사범님은 살이 안찌는가..

  근태 사범님이 억울한듯 말했다.
요즘 살찔려고 ‘용’을 먹고 있단다.. (누군 살 뺄라고 용쓰는데.. 아.. 갈수록 더 약오른다.. ㅜㅜ)

  “용봉탕이나 개소주도 좋대요.”라고 했더니..
  “그건 이름이 폼이 안나요. ‘용’정도는 되야 뭔가... "

  87년생이라는 고근태 사범님.
  귀엽다. ^^

  그러고보니.. 프로기사분들 중에 살찐 분을 못봤다.
이상하다. 찬찬히 한분한분 떠올려봐도.. 비만이.. ... 없다.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이른바 ‘두뇌 스포츠’인 바둑인데..
왜 그들은 살이 찌지 않는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던 2000년 겨울.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었다. 오전, 오후 각각 한 시간 외에는 더운물도 나오지 않았던 좁은 반 지하 고시원에서 매일 16시간씩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워나가던 시절.

  친구를 좋아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를 잘라 완전히 삭발을 하고 독하게 시작한 고시공부. 그러나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며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었다. 다시 시작해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꽤 많았지만, 진정 최선을 다해 공부 했었기에 미련 없이 꿈을 접었다.

  그때 나는 정말 많이 먹었다. 아침이나 점심을 많이 먹으면 공부할 때 답답해서.. 주로 저녁을 많이 먹었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고팠었는데.. 이상하게도 살은 계속 빠져서.. 41kg이라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몸무게였다.

  일주일에 한번씩 보던 모의고사. 계속되는 스터디와 눈에 보이는 경쟁들.. 보이지 않는 견재. 옆에선 웃고 있는 고시 동료들이지만.. 사실은 그들 하나하나가 내 경쟁자라는 그 부담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는 내 몸에 살을 쪽쪽 뽑아갔었던 것 같다.

  바둑은 두뇌 스포츠이다. 스포츠.. 취미로 즐기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만..  그것이 업이고, 매 번 승패의 기로에 서는 그들.. 프로기사에게도 .. 바둑이 스트레스 해소가 될까..?

  살찐 기사가 보이지 않는 바둑계.. 어쩌면 내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정말 치열하고 힘든 곳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귀여웠던 고근태 사범님이 의젓해보였다. 그런 치열한 세계에서도 저렇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그가 대단해보였다. 지금의 그와 비슷한 나이였던 그때..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매일 굳은 표정으로 고시원과 학원을 오갔었는데..

  가만.. 어쩌면 침체기라는 바둑도장을 살린 묘수를 내가 발견한건지도 모르겠다. 바둑이 다이어트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근거만 밝혀내면..

  이제 바둑 도장에서 ‘한달 5kg 책임감량’ 같은 플래카드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둑 도장을 가득 메울 여성 기우들 을 상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비록 그들이 살찐 여성일 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