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기원 중앙의 난로 앞에 자리를 잡고 이청 선생의 ‘한국바둑사’ 뒷부분을 마저 읽는다.

보고 싶은 책은 직접 사서 읽어야 할 것 같아 사양을 하였음에도 책을 보내신다 기에 증정본은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원에 보내고 나는 사서 보겠노라 하곤 교보문고를 찾았어도 구하지 못해 기원에서 읽던 중이다.

이벤트 에 뽑혀 증정을 받은 책은 작가 선생의 친필로 손종수 선생에게 라고 쓰여 있다.

발송직원의 실수 이었다는 해명은 들었지만 중요한 일은 아니고 내가 평소 존경하던 손선생의 존함까지 쓰여 있으니 더욱 좋은 일이지 싶다.

億萬齋 의 김시습인지 만 번을 읽어 기억한다는 옛 선현은 따라가지 못해도 이런 훌륭한 책은 최소 열 번을 읽어 외어야겠군 싶다. 제측실문 의 감동적 내용은 이미 처에게도 써먹었다. 수많은 김씨들이 김씨 성의 유래를 몰랐을 텐데 평소 궁금하고 나름대로 추측해보던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시원하고 정확하게 고증이 되니 한 사람의 노고 가 이리도 클 수도 있구나 싶어 경이를 넘어 전율까지 느끼게 된다.

티브이 는 주가가 떨어지고 특검수사가 어떻고 미술품 압수 등 뉴스 중이다.

기원으로 들어서는 사채 김은 누구 하나 듣는 이도 없는데 또 저 혼자 큰 목소리로 예기하기 시작한다.

“지가 되면 주가가 오천까지 간다더니 떨어지기만 하네”

“거짓말 하는 사람은 되니까 미술품은 제돈 주고 산 거니 상관없고 탈세는 안돼”

엊그제 편 바둑에서 자신이 대마가 죽어 불리하자 상대편 옆 사람 택시기사 박 8단 이 같은 편에 한마디 한 것을 빌미 삼아 종국이던 판을 엎어버리고 일어서 가 버리더니 천연덕스럽게 예기하며 들어선다.

무슨 예기인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당선인은 거짓말에 불구하고 당선 되었다는 예기이고 미술품은 탈세로 조져야 한다 정도 뜻일 것 같다.

박8단은 저쪽으로 슬그머니 가버리고 나는 책 속에 얼굴을 묻는다.

중2때 기료 20원일 때 당시 700원인지 했던 일본 바둑 월간지 위기를 46권인지 매달 명동의 딸라 골목에 직접 가서 사와 읽곤 하였다. 이청 선생의 작품들을 그 당시 읽을 수 있었더라면 작가 나 역사학자 가 될 용기를 가질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하며 지난 세월이 아쉽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십 년이나 이십 년을 연구한다면 작은 성과라도 이룰 수는 있을 수도 있을 텐데.

해외의료봉사를 다녀오면 내심 걱정이 있다.

이번엔 누가 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의 걱정을 물리친 채 오지를 향해 장기해외봉사를 떠나거나 젊은 대원들 간에 눈이 맞아 결혼하지 않나 싶다.

s의료원 간호사 5년차 를 그만두고 아프리카 에 가서 병원선에 근무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간호사로 활동중인 여대원, 연봉 몇 천의 고 수입과 명예를 마다하고 중앙아시아 오지로 떠난 교수이자 의사인 양반, 인도 오지에서 의사도 아니면서 제 팔뚝에 주사를 연습해가며 병원장으로 결핵퇴치 사업을 하던 남자대원은 환경활동 NGO여자 대원과 결혼을 하였다.

인도근무를 자원했던 간호사 여 대원은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친 채 출발준비를 하던 중 당시 사스 로 출국을 보류하였는데 그 다음해 보니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었지.

일상적인 평범한 행복과 자신의 숭고한 목표의 실천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쳐 그들의 인생을 바꾸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 일까?

“이청 선생의 주역을 읽어보고 싶은 용기가 생겨”

점쟁이들의 치부책 정도로 치부하며 못 배운 이들의 미신 정도로 생각하던 역 이 고대사가 흥미로워진 것은 과욕이자 노욕일까?

“하고 싶으면 해봐”

처 의 격려는 새삼 놀랍다.

사람들은 6척 외모는 같으되 그 크기는 그리도 다를 수 있는 것인가?

신춘문예 당선작의 소개와 수상자의 소개, 심사자의 평을 신문에서 본다.

“신춘문예 응모작들을 보면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가 집약된 듯한 목록들을 읽을 수가 있다”

“이번에도 역시 현저히 즉물적 이다는 것, 다분히 자폐적 이다는 것, 몰개성적 이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많은 투고작 들이 어쩜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었는데 이 개성의 표준화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언어를 헤프게 낭비하는 것, 동어반복 하는 것은 시에서는 범죄일수 있다. 또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난센스의 나열이나 실패한 은유들을 가지고 시의 특권이라고 오해하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당선자는 앞으로 한 권의 시집으로 자신의 시인됨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철가방을 든 자장면 배달이 온다.

두 사람이 바둑 두는 옆의 판 위에 자장면을 내려놓는다.

“뭘 좀 깔지” 반상에 눈을 고정 시킨 채 중얼이는 김사장.

못들은 채 가버리는 잘생긴 준수한 청년. 아마 아르바이트 인 게지.

신문지라도 한 장 깔면 그 집에 배달을 더 시킬 텐데.

해외봉사단 대원들을 선발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바람직한 청년의 모습은 무엇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