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거의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적의 대마를 두 개나 잡고 있었고 나의 약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상대방이 돌을 던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상대방은 쉽사리 돌을 던지지 않았다. 물론 이해가 갔다. 

나도 내가 확실히 불리한데도 불구하고 항복을 하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혹시라도 상대방이 결정적인 실수라도 할 것을 기대하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지 아니한가? 

그렇게 해서 재미를 본 경우도 가끔 있었다. 승부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닌 것이다.

역시나 상대방은 나의 유일한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해결책을 생각해두고 있었으므로 되도록 쉽게 응수했다. 

어서 빨리 바둑을 끝내고 저녁을 먹어야했다. 

잘못하다가는 화가 난 아내가 컴퓨터 코드를 확 뽑아버리고 만다고 설쳐댈지도 모른다.

그런데 쉽게 나가던 바둑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좀 더 수읽기를 철저히 했어야했는데 빨리 끝내야한다는 강박감에 너무 느슨하게 상대한 것이다. 

아아! 어찌 어찌하다가 그만 나의 요석이 잡히면서 잡았던 상대방의 두 대마도 모두 살아가버렸다. 바둑은 나의 참패로 끝이 났다.

저녁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그까짓 인터넷바둑 한 판 졌다고 나에게 무슨 손해가 있는가? 

내기바둑도 아니고 오직 친선바둑이었지 않은가? 

그렇다. 훌훌 털어버리고 맛있게 밥이나 먹자.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 다음에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아내는 이 순간이 최고로 행복하다고 늘 말한다.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 편안한 꿈나라로 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도 편안하게 잠에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아까 두었던 바둑이 생각났다. 

어째서 그 바둑을 지게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분한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는 잠이 오지가 않았다. 

그냥 억지로 잠에 들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망막에는 바둑알들이 그득하게 자리 잡고는 나를 놓아주지를 않았다. 

할 수없이 일어나서 다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는 아까 두었던 바둑을 차근차근 복기해보았다. 

상대방이 나의 약점을 끊은 후에도 내가 이길 수 있는 경우가 수십 가지는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끊지 않고 그냥 늘기만 했어도 승리는 나의 것이었다. 

결국은 내가 수읽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차분하게 복기를 마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토마스만의 ‘마의 산’을 보고 있다. 

젊은 청년 요하임의 죽음장면을 어제 보았다. 

사관생도였던 그는 폐질환으로 학교를 잠시 쉬고 알프스의 다보스에 있는 요양원에서 18개월 동안 요양을 한 뒤 대 여섯 달만 더 지내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하산을 결심한다. 

그는 하산하여 하사관에 임명되고, 다시 장교 임관시험을 거쳐 소위로 진급을 한다. 

그러나 병이 재발하여 다시 요양원으로 오게 된다.

 군대에서의 무리한 생활로 후두염에 걸린 그는 3개월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 

다행이랄까 신경이 마비되어 큰 고통 없이 죽음을 맞게 된다. 

고통 없이 품위 있게 죽어간 그가 어느 정도는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고통 없이 죽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TV에서 본 끔직한 장면이 생각났다. 

고교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급히 넓은 길을 뛰어서 건너고 있었다. 

그 학생의 속도로 보아 무난히 길을 건널 수 있어보였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승용차가 나타나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여 그 학생을 치어버렸다.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그 학생은 아마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저승사자가 데리러 왔을 것이다. 그 학생이 순순히 바로 저승사자를 따라갔을까? 

내가 볼 때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을 것 같다. 

자기가 죽은 것이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리고는 자기가 죽지 않았을 경우를 수 없이 되새기면서 후회와 자책과 반성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친 상대방도 생각했을 것이다. 

왜 음주운전을 했는가? 생각 같아서는 그 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같이 저승으로 가자고 했을 것 같다.

 아아. 그 학생이 육백 만 불의사나이처럼 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달려오는 승용차를 간단히 손으로 제압해버리면 그만 이었을 텐데. 

이런 저런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한 없이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 같다. 

그리고는 마음이 풀어진 다음에야 저승사자를 따라 나섰을 것이다. 

저승사자도 그런 정도의 배려는 충분히 했을 것이다.

 힘든 저승길을 버티며 따라오지 않으려하는 사자를 데려가는 것 보다는 마음을 풀고 나서 순순히 따라오는 사자를 데려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을 테니까. 

혹시 모르겠다. 바쁜 저승사자가 사자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무식하게 사자를 데려갔을지도.

어쨌든 염라대왕께서 이런 명령을 내렸기를 희망한다.

‘저승사자들이여, 혹시라도 억울하게 죽은 사자가 있으면 그가 마음을 풀도록 그 자리에서 충분히 복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