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태는 결국 아내를 찾아 나서기 위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입으면서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절대로 찾으러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초조해지는 자기 자신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이렇게 앉아서 속을 태우느니보다는 바깥에 나가서 아내를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계산이 앞섰다. 

비록 마음을 독하게 먹겠다는 자기의 다짐은 깨졌지만 그래도 이편이 더 나으리라.

저녁 전이었다. 

딸애가 볼일이 있다면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갔다 와서 저녁을 차려준다고 하였다. 

영태와 그의 아내는 TV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TV에서는 저녁 시간 전에 맛있는 음식 먹는 프로그램을 자주 돌리는 편이다. 

영태의 아내는 “저거 맛있겠다. 언제 저거 먹으러가자.”라고 탄성을 질러가면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시피 했다. 

피곤을 느낀 영태는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침실에 가서 드러누웠다.

문제는 먹는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벌어졌다. 

무료를 느낀 아내가 거실을 서성거리더니 바깥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딸애를 찾으러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볼 일 보러 나간 딸애를 왜 찾으러 나가? 딸애를 찾기는커녕 자기가 집을 나가면 집도 제대로 찾아오지도 못하면서. 

 “안 돼.” 영태는 큰소리를 쳐서 말렸다. 

 그러나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섬주섬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때 영태가 일어나서 강하게 말렸어야했다. 

그런데 귀찮아진 영태는 말로만 안 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마음 한 편에서는 화가 났다. 

말로하면 들어줘야할 텐데 왜 내가 하는 말을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습게만 여길까? 딸애가 하는 말은 고분고분 잘 들으면서. 

이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도 아내가 딸애를 마중 간다고 아파트 현관 앞 벤치에서만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듣고는 몇 번 말로 제지하다가 아내의 성화를 견디다 못한 영태는 그냥 아내를 놔주었다. 

잠시 후 걱정을 느낀 영태가 밖에 나가봤을 때, 아내는 벤치에 없었다. 

온 동네를 헤매며 찾다가 실패하고 다시 집에 돌아온 순간 아내가 딸애와 함께 들어왔다.

 현관 앞에서 만났다고 하였다. 

그 당시에 음주관계로 딸애와 냉전 상태에 있던 영태는 딸과 아내가 짜고서 자기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꾸몄을 거라는 음모론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그 느낌을 발설하자마자 딸애가 발악하면서 퍼붓던 저주가 생각났다. 

공연히 쓸데없는 의심을 품었다가 몇 배로 혼이 난 셈이었다. 

솔직히 영태는 아내를 돌보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귀찮기도 하고 화도 나고 에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이대로 아내가 나가서 영원히 들어오지 않아도 할 수 없다는 섬뜩한 생각마저도 스쳐갔다.

 그렇게 아내는 집을 나갔다.

화가 난 탓인지 얼마동안은 그런대로 버텼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을 한번 보여주자. 나 자신의 의지를 한번 시험해보겠다.”

 무슨 도를 닦는 양 비장하게 자기 자신을 추스르며 영태는 견디려고 노력했다. 

무슨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하게 부닥치겠다는 아릿한 쾌감도 함께 느끼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영태는 포기하고 말았다.

영태는 자기 동네를 아주 작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데리고 집을 나서면 자주 가는 음식점이 한 열군데 정도 되었다. 

그 중 아무 곳이나 마음에 드는 곳을 아내와 함께 찾아가면 되었다. 

길은 외줄기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도 마음에 드는 코스로 그저 외줄을 타듯이 돌아오면 되었다. 

아주 단순했다. 아주 작은 동네, 눈 감고도 어느 곳이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 그것이 영태가 생각하는 자기 동네였다. 

그런 동네에 아내가 나갔으니 찾는 것도 아주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엄청난 착각인 줄을 영태는 집을 나서자마자 실감하게 되었다.

아내가 어느 곳으로 갔을까? 

저녁때가 되었으니 아내는 음식점을 찾아갔을 것이다. 

자주 가던 곳이 열군데 정도였으니 그 곳을 찾아보면 되겠지. 

그런데 어느 음식점을 먼저 찾아가야하나? 

영태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순열, 조합이 생각났다. 

10의 계승이면 수 만 가지 경우가 생겨난다. 

거기에 요즈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인공지능의 정치망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찾아야할 경우의 수는 수십 가지가 넘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막막한 길에 영태는 한 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도 아직은 화가 덜 풀린 상태라 아드레날린이 몸속에 만재되어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까짓것 찾아보는 거다. 밤새도록이라도.”

우선 생선구이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에 한 번 그 집에서 아내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두 군데 정도 허탕을 친 다음에 세 번째 찾아간 그 집을 들여다보니 반듯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아내의 등이 보였다. 

그렇게 반갑고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아내를 안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었다.

 이번에도 바로 찾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안고 생선구이 집을 들여다보았다. 

아내의 등이 보이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러나 식당 안에 손님들이 몇 명은 있었지만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감과 함께 큰 허전함이 밀려왔다. 

도대체 아내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동네의 동쪽이 마음에 걸렸지만 서쪽으로 발을 디딘 이상 계속해서 서쪽을 찾아보기로 했다. 

순대 국 집과 짬뽕 집을 들여다보았다. 

아내는 없었다. 갈치조림을 하는 집에서도, 쟁반짜장을 하는 집에서도 허탕을 쳤다. 

이제는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야했다. 

배가 고프고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오기가 남아있어서인지 아내를 내보낸 것에 대하여 후회는 생겨나지 않았다. 

내가 고생하는 만큼 아내도 고생을 하겠지. 그래, 고생을 짤짤하게 해봐야 돼. 그래야 집을 나간 것에 대하여 후회를 하겠지. 

한참을 걸어서 해장국집에 다다랐다. 

잔뜩 기대를 하였다.

 제발 아내가 식당 안에 있어주기를! 

손님들이 모여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에 아내와 나도 저렇게 알콩달콩 저녁을 먹었었지. 

아내는 항상 돌솥비빔밥을 시켰고, 나는 선지해장국을 시켰었지. 

그리고 식사하기 전에 아내는 늘 생수를 빼왔고, 나는 식사 후에 자판기 커피를 빼왔었지. 

환영만 어른거릴 뿐 여기에도 아내는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