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아내에게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전하고는 딸애가 아내를 찾으러갔다. 

다행히 아내를 잘 찾아왔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둘은 문단속에 무척 고심을 했다. 

문을 안에서 잠가놓자니 불이 나거나 하는 위급한 상황이 걱정이 되고, 아내를 묶어두는 것도 역시 전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결국 딸애는 밤중에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핸드폰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장치를 마련하는 걸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딸애와 아내가 산책을 나갔다가 아내를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병만이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리더니 딸애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엄마를 잃어버렸어.” 

 딸애가 화장실을 가면서 아내에게 꼭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는데 나와 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병만은 눈앞이 잠시 아득하였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걱정마라. 엄마가 단기 기억력은 없어도 예전에 기억했던 전화번호는 꼭 기억하고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병만은 옷을 바삐 주워 입고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딸애가 기다리는 곳으로 찾아갔더니 딸애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어. 엄마를 보호하고 있대요.” 

둘은 파출소로 찾아갔다.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둘을 보자 반색을 하면서 달려 나왔다. 

아내는 딸애가 보이지 않자 딸을 찾아 그냥 한 쪽 방향으로만 무작정 걸은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 길의 끝에는 파출소가 있었다.

몸무게가 50킬로그램 밑으로 떨어졌을 때 병만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전에 비하여 힘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병만의 몸무게가 줄자 딸애도 병만의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지 몸무게를 불리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다 시도를 해 보았다. 

그러나 한 번 떨어진 몸무게는 다시 오르지를 않았다. 

반면에 아내의 몸무게는 계속 오르기만 하였다. 

병만의 아내는 아침을 먹은 후에도 병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꼭 말을 걸어온다. 

“여보, 맛있는 것 사줘. 간 짜장 먹고 싶어.” 

병만이만 있을 때는 아내의 요구를 물론 잘 들어주었다. 

그러나 딸애가 있을 때에는 문제가 달랐다. 

아내의 몸무게가 불자 아내는 인지 능력 외에도 고혈압과 당뇨 걱정에 시달리게 되었다. 

식이요법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아침마다 아내는 고구마나 청국장용 콩을 먹는다. 

그리고 점심과 저녁에는 현미밥을 먹는다. 

그리고 일체의 간식은 금지이다. 

과일이나 과자 등 간식을 먹을 때면 병만은 아내에게 무척 미안하다. 

딸애 몰래 한 개씩 주기도 한다. 

못 먹는 것 없이 잘 먹는 병만은 몸무게가 줄어들고, 엄격하게 음식을 통제하는 아내는 몸무게가 오르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음식을 철저히 통제 시키자 아내는 가끔씩 딸애 몰래 빵을 훔쳐서 먹었다. 

그러다 들키는 날에는 집안에 풍파가 인다. 

호통을 치며 악을 쓰는 딸애와 그 정도쯤 어떠냐는 병만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고 집안에는 한 참 동안 냉기가 감돌게 된다. 

이런 일이 잦아지자 이제는 병만도 어느 정도는 면역이 되었다. 

몸무게가 올라가는 엄마와 떨어지는 아빠사이에서 딸애도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가? 

요즈음에 병만은 ‘효녀심청’이라는 흘러간 유행가를 자기도 모르게 가끔씩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몸무게에 관한 두 번째 충격은 작년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면서 일어났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검사였다. 

검사 3일전부터 식단 조절을 하며 무슨 약을 마셔야하고, 또 물이나 이온 음료를 대량으로 마셔야했다. 

약을 마시면 그 역겨움 때문에 토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였다. 

평소에 술을 과음하여 토하는 것에 익숙해진 병만 에게는 약을 마시는 것은 별로 고역이 아니었다. 

문제는 물이나 이온 음료를 대량으로 마시는 것이었다. 

병만은 평소에 물은 별로 안마시지만 이온 음료는 상당히 좋아했다. 

그래서 이온 음료를 마시기로 결정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이온 음료 마시는 것이 이처럼 고역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좋은 것도 강제로 마시자니 정말로 힘들었다.

3일을 굶다시피 하고 검사장에 가서 몸무게를 재었다. 

44.5킬로그램이 나왔다. 

전의 49킬로에서도 한참이나 빠지는 숫자였다. 

아무리 3일을 굶었어도 이렇게 몸무게가 빠지다니.

빠졌던 몸무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올라 46.3킬로그램이 되었다. 

그런대로 안심이 되었다. 

그 이후로 집안에 있는 체중계가 고장이 나서 더 이상 몸무게는 재지 못하였다.

오늘 승우가 너 얼굴이 빠져 보인다고 말했을 때 병만은 몸무게에 관하여 세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혹시나 몸무게가 43킬로그램 이하로 빠진 것은 아닌가? 

병만은 혈압이 낮은 편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고혈압보다도 저혈압은 더욱 위험하다고. 

이렇게 몸무게가 빠지면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인가? 

누님과 여동생이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한약까지 지어주었었는데. 

내가 죽으면 나의 연금에만 매달려 살아오던 아내와 딸애는 어떻게 살 것인가? 

아!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내이다. 

마음이 여린 아내는 내가 죽게 되면 얼마나 슬프게 울 것인가? 

그 광경만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반지의 제왕을 능가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고는 겨우 한 페이지 밖에 쓰지 못했는데.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귀결이 될 것인지. 

장래 우리나라의 흥망성쇠는 또 어떻게 될 것인지. 

또 하나 궁금한 점, 빅뱅이란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 

딱 하나 죽어서 좋은 점은 있다. 

죽음 뒤의 세상이 늘 궁금했었는데 그것은 곧 해결이 될 것이니.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도 병만은 죽음에 대하여 계속 생각했다. 

술을 조금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평소보다 더 많이 취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자기가 보호해야할 아내에게 오히려 보호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자 시무룩한 병만의 표정을 보고 딸애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평소에 표정관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빠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딸애는 뚝딱 뚝딱 고장 난 체중계를 만지더니 금세 고쳐놓았다. 

“자, 올라가 보세요.” 

병만이 체중계에 올라섰다. 눈금은 47.6킬로그램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이, 공연히 걱정을 했네.” 병만은 안도의 한숨을 휴 하고 내 뱉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