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길 변호사사무실에 오랜만에 많은 사람이 자리를 했다. 그는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사무실을 열지 못했었다. 국내외정세가 안정을 찾아가고, 무엇보다 국민 전체가 희망을 기대하며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자 사무실을 다시 열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모두를 뵙게 되어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기쁩니다.”

아직도 이재길은 손수 차를 내오고 있었다.

“이제 변호사님의 지명도가 높아져서 수임 건이 많아지셨을 텐데요. 사무실에 직원 더 두셔야하지 않을까요?”

한영운의 말에 모두 이구동성으로 동감을 나타냈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아직도 필수적인 운영비만 빼고, 반크에 기부하시나보군요.”

최선미의 말에 이재길이 쭈뼛하면서 말했다.

“적은 금액밖에 기부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죠.”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네요.”

소년처럼 부끄러워서 당황해하던 이재길이 황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최선미 여사님께서 조언을 얻고 싶으신 문제가 있다고 하셨지요?”

그녀는 가족끼리 나누었던 고민들을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가족들의 고민은 당연하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갑작스러운 추앙에 가까운 관심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네 분은 정말로 완벽하게 처신을 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은 공인으로서 생활하느라 심리적으로 많이 지친 것으로 여겨지고요. 달리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은 얻고 싶어 하지만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가진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명문가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중에게 명문가로 인정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부심 있는 일입니다. 미국사회에서는 케네디가 조차 이제야 명문가로 인정받을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값진 희생으로 얻어진 이름이지만, 여사님 가족에게는 ‘독립운동의 성골가’라는 호칭이 생겼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명문가로 인정한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사람은 한영운 총사령관의 말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저도 한 말씀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총사령관의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미래를 계획하는 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대한 의사님이 아직 20대이십니다. 이미 대중들에게는 아이돌이십니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지명도가 높아지면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자칫 지향점이나 목표가 사라질까 염려스럽습니다. 저는 늘 우리사회에 어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회적인 이슈에 젊은이들이 쉽게 흔들리고 휩쓸립니다. 어른들이 많으면 사회가 단단해집니다. 어른이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가 급격하게 발전하는 사회인 것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거의 명맥이 끊긴 ‘선비정신’이 필요합니다. 일본 사회가 한계를 보이는 것은 ‘사무라이정신’이 지배하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정신적인 가치관이 부족하죠.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선비정신’은 정신적인 자양분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저는 의사님이 이 시대의 선비로서 대중의 정신적인 지주로 살아갈 목표를 가지시기를 권합니다.”

“제게는 너무 과한 말씀이십니다. 저는 나이도 어리지만, 지식도 한없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목표로 삼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나가면 가능하게 될까요.”

“의사님이 원하신다면 제 주변이나 총사령관님의 주변 지인들에게 의사님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매우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 의사님을 위한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나설 것입니다.”

“예. 저도 변호사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쉽지 않은 길이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강대한 의사님이 목표로 삼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혼란스럽던 저희 가족들에게 지향점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과 지도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나타내는 최선애의 눈에는 인자함과 고결함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여사님께 사적인 말씀을 여쭙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저희 가족과 전략적인 상견례를 하셨잖습니까. 제 아들이 따님을 못 잊고 만나고 싶어 하는 눈치입니다. 교제를 허락해주시지요.”

“그때 그랬었지요. 그 이후 너무 많은 일들이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아무 경황이 없었습니다. 저는 더없이 영광입니다. 넌 어때?”

갑자기 여럿의 시선이 쏠리자 강민희가 당황하면서도 당돌하게 말했다.

“엄마, 나도 시원씨가 싫지는 않았어.”

얼굴이 빨개진 채로 얼떨결에 이름까지 부르며, 그녀도 그에게 마음이 있었음을 말하는 그녀의 귀엽고 순수한 모습에 모두는 박장대소를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무엇이 그토록 서로를 미워하며 대치하고 적대시하도록 만들었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민족의 마음이 확인되자 거칠 것이 없었다.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조성되던 이념과 국제적인 역학관계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못했다. 하나이고 싶은 열정만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급물살을 탄 남북의 협상은 어느새 국가 통합방안을 논의하는데 까지 진전되었다. 현 체제를 급격하게 바꾸는 것은 모험이었다. 사회가 불안정해지면 이번 기회를 무산시킬 수 있다는 경계심으로 남과 북은 현재의 통치세력을 유지시키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대안은 과거부터 언급된 연방제와,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한반도 2국가 평화협력체제로의 전환 등의 방안이 거론되었다. 이 주장은, 남한이 먼저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변경하고, 북한도 노동당규약 전문을 개정할 것과 남북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사이좋은 이웃나라의 길을 선포하자는 것이었지만, 공감대를 확산시키기에는 난제가 많았다.

남한이 다양한 방안을 들고 고민하는 사이, 북한이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북한 지역을 일본과 같은 왕이 존재하는 체제를 만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수상 임명권을 왕이 가지는 방안이었다. 그리고 1당 독재 체제를 버리고, 휴전선을 ‘통관선’으로 만들어 약간의 통행료와 관세만 부과하여 물자와 사람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북한의 경제적인 부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였다.

자유경제 체제를 지향하고도 현 지도자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절묘한 방안에 남한도 박수를 보냈다. 이에 호응하여 남한에서는 부가가치세에 연계되는 ‘통일세’라는 목적세를 신설하여 북한의 소득이 남한의 90%에 다다르는 시점까지 부과하고, 기업에는 ‘신시장개척세’를 법인세와 연계하여 부과하는 방안을 국민들에게 압도적인 찬성으로 허락 받았다.

무르익어가는 한민족의 통합에 대한 기대로 행복해하는 민족에게 한 가지 더 행복이 더해졌다. ‘독립운동 성골가’에서 재단을 설립한다는 발표였다.

‘그동안 저희는 국민 여러분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부는 저희들에게 독립유공자로서의 생활자금과 각종 혜택으로 넘치는 보상을 해주었고, 고마운 국민여러분들과 각종 단체 및 기업은 막대한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모든 성금을 ’한민족재단‘을 만들어 이 재단에 기부하겠습니다. 앞으로 재단은 우리 민족의 어려운 젊은이들이 공부와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우리의 돈으로 젊은이들을 지켜, 더 이상 일본의 ’문부성장학생‘이 만든 ’조선일본인‘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독립운동 성골가’의 목표는 절반만 이루어졌다.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였지만, 국민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각종 형태의 성금이 자꾸만 쇄도하였다. ‘돈쭐’을 맞은 것이다. 그럴수록 재단의 기금은 자꾸만 불어나고, 또 성금은 답지되었다. 그렇게 재단의 규모는 끝없이 커져갔다.

또다시 한반도에 등불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끝 -

동방의 등불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s.

And the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of the E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