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를 기해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일본이 한반도 영해의 일부를 봉쇄하고 있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한반도는 우리 한민족의 삶의 터전이다. 이 땅에 일본이 제국주의 망령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도발을 일삼고,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이를 용인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에 북조선인민공화국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단호하게 징계하고자 한다. 즉시 한반도 영해의 봉쇄를 풀어라. 내일 0시를 기점으로 물러나지 않았음이 확인될시, 우리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14’라는 숫자를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일본의 14개 도시는 우리의 탄도미사일의 공격으로 폐허로 변할 것이다‘

북한의 담화가 발표되자 주변국들은 발칵 뒤집혔다.

특히 6자회담 당사국들은 충격에 빠졌다. 한반도에서 그들의 지분이 사라질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 담화는 명백하게 북한이 남한을 위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일본을 공격하겠다는 뜻이었다. 사태 추이에 따라 남, 북한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될 여지가 생겼다. 한반도를 갈라놓고 즐기던 게임이 없어지게 되고, 통일된 한반도가 나타나는 것을 손 놓고 봐야하는 불편한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당장 순망치한의 사태를 걱정했다. 그동안 북한은 충실하게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더욱 불안한 것은 하나 된 한반도가 가지게 될 역량이 염려스러웠다. 지금보다 더 강해진 한국은 매우 부담스러운 상대가 될 것이다.

미국은 어쩌다가 이렇게 일이 복잡해 졌는지 속내가 시끄럽기만 했다. 일본을 너무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빠른 시간 내에 한국에 유화책을 건네야 했다.

바야흐로 동북아시아는 일대 격변의 현장이 되었다.

남, 북한과 일본의 국민들도 자신들의 세대가 역사 속 격랑의 한가운데에 놓였음을 느꼈다. 특히 일본 국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북한이 도시 숫자 14개만 말하고 공격대상 도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공격 개시 시점도 밝히지 않았다. 일본의 모든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금까지 보여 진 북한의 행태는 충동적이고 독단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혼란은 가중되었다. 오늘 밤새 14곳의 도시가 불바다가 될 상황이었다.

언론은 방위성부터 물어뜯기 시작했다. 막강한 해군력만 믿고 무모하게 작전을 실행했다는 질책이 줄을 이었다.

‘이번 사태로 방위성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잃기만 했다. 야스쿠니를 폭파한 범인들을 잃었고, 한국을 제압 할 기회를 잃었고, 국민들이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의 신뢰를 잃었다.’

‘해상자위대는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한반도에서 물러나라. 그래서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이라도 달래줘라. 그리고 책임자는 사퇴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사죄해라.’

‘일본은 남, 북한의 화해무드를 감당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앞으로 진정 상대하기 힘든 적을 만나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국민들은 북한의 담화문 내용에 반신반의했다. 너무나 놀라운 반전이었다. 고맙고도 기쁘고도 반가운 일이었다. 일부 우익진영의 인사들마저 감격해마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우리 겨레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축복이었다.’

‘이번 일로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킨 죄를 갚았다. 이제 용서하자.’

‘전화위복.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를 기대한다.’

‘한민족의 피가 통했다. 대한인 만세!’

‘이제 남한이 북한 동포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매체는 사태의 대 반전에 감격하고 북한의 조치에 찬사를 보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겨레는 하나임을 느꼈다.

방위성은 진퇴양난이 되었다. 북한의 기습으로 모든 것이 뒤엉켜버렸다. 상대는 무모한 북한이었다. 언론도 부담이고 내부의 반발도 부담이다. 거기에 더해 미국의 시각도 달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일을 벌여놓고 빈손으로 회군을 해야 할 처지는 용납되지 않았다. 칼집에서 칼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후퇴를 하는 격이다.

“이렇게 물러나는 것은 역사에 조롱거리로 남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한방 날릴까? 북한에 한방 날릴까?”

울분을 참지 못하는 부하들에게 해상막료장은 어떤 설득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스스로가 가장 납득이 되지 않는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태에 대한 판단을 조금 더 고민하겠다. 그런 뒤, 내가 내리는 판단을 제군들은 반드시 따라주어야만 한다. 이것은 해군막료장의 군령이다.”

부하들을 물리치고 난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나의 영예로운 군 복무에 대한 치욕적인 날이다. 이 치욕을 반드시 씻어야 한다. 나는 죽더라도 해상자위대의 명예는 지켜져야 한다. 이번 작전의 실패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다. 모든 함정과 대원들은 내일 0시를 기해 각자의 근무 위치로 복귀를 명령한다.’

부하들에게 명령서를 남기고 그는 깨끗하게 용모를 가다듬은 뒤, 경비정 한척을 직접 몰고 해상자위대 본부를 출발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로 나온 그가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았다. 그는 군인으로서 사무라이 정신으로 할복하듯 현실에 저항했다. 해군인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수장시켰다.

세계인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날짜가 바뀌었다. 그리고 천천히 물러가고 있는 해상자위대의 모습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일본은 단 한척의 손실도,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단 한발의 실탄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패배한 전투였다. 외상은 하나도 입지 않아 말끔하지만, 내상은 치명적이었다. 그것도 한사람이 아닌 일억 명이 넘는 일본인 전체가 입은 타격이었다. 차라리 전투를 통한 패배였더라면 상처가 이렇게 아프고 힘겹고 처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열도가 정신적으로 침몰해버렸다.

한국은 마치 전승국 같았다. 한민족은 단 한명도 잠들지 않은 듯 했다. 단 한발의 실탄도 사용하지 않은 전쟁이 가져온 승전보! 그들은 마음껏 기쁨을 누렸다. 정치인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한밤중임에도 그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국민들이 필요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은 지금 밤이 아니었다. 해가 졌다고 밤은 아니다. 모든 가게가 문을 열었고, 모든 국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밤이어서 더 좋았다. 정부는 긴급하게 회의를 열고 오늘을 임시공휴일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접한 국민들은 마치 한국 축구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함성을 터트렸다. 가히 온 나라가 축제장이었다.

한 방송에서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을 보였다.

‘이 시각의 일본과 한국 사진입니다. 칠흑 같은 일본 열도와 달리 한국은 전국이 대낮처럼 밝습니다. 이 영상이 마치 두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 벅찬 희열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에게 영광을, 한민족에게 환희를!’

최선애의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살아서 만난 기쁨과 함께 우여곡절 많았던 시간들이 아득하기만 했다. 이제 더 이상 안가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한자리에 모인 기쁨으로 지난 시간들의 번민들이 모두 사그라진 듯 행복했다. 일본이 더 이상의 위해를 시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한영운은 판단했다. 정보기관의 판단도 이를 뒷받침 했다. 다만, 의사와 그 가족들에게 경호시스템은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엄마는 이제 고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이렇게 뿌듯하고 가슴에 자부심이 넘치는구나. 내 아들 대한이, 내 딸 민희, 내 동생 선미,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제부 설민국 의사. 엄마는 모두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동안 엄마가 내 자신만의 삶을 찾아서 사느라, 너희들의 큰 뜻에 동참하지 못했던 점 용서를 바랄게.”

“엄마, 밖에 나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국민들께서 상처받아.”

딸의 말에 최선애는 뜬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니?”

“언니! 인터넷에서 언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왜, 네게 안 좋은 말들을 많이 하니. 정말이야? 내가 그동안 나만 생각하고 살았다고 다들 욕하나보구나.”

“엄마, 그 반대예요.”

강대한의 말에 그녀가 쿠션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엄마는 지금 인터넷에서 민족의 어머니로 통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 지금 엄마 놀리는구나.”

“언니는 인터넷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지. 우리 가족 신상 모두 털렸어. 언니가 야스쿠니를 폭파하려는 아들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일본인과 결혼까지 했다고 떠들썩해. 더구나 독립운동을 하다 다친 고모를 위해 어린 학생시절 희생하며 자랐다고도 나와!”

“정말이야? 나 창피해서 어떻게 사니.”

“엄마! 인터넷에 있는 말 사실이야. 엄마가 만약에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엄마는 그렇게 살았어요. 자부심을 가지셔도 돼요. 그리고 이 시대는 영웅을 필요로 해요. 엄마는 그럴 자격이 있고요.”

“대한이 말이 맞아! 언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해.”

“맞아, 엄마는 그렇게 희생하시며 살아내셨어. 그 덕에 나와 대한이가 이렇게 잘 자랐잖아.”

최선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올랐다. 그리고 세 사람을 꼭 끌어안았다. 벽에 걸린 사진속의 최윤경이 밝게 웃으며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