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보국이 ‘대한독립의군부’의 실체를 모두 파악했다. 그리고 그 정보는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 일본 내의 온건파는 숨죽이며 목소리를 숨겼다. 사안이 너무 엄중해서 반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곧 국가에 대한 배신자의 행위로 몰렸다. 그동안의 극우세력이 취한 행위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 정당화되어버렸다. 극우세력의 목소리는 극에 달했다.

“조선 정벌에 나서라!”

이것이 그들의 요구사항이었다. 우익들은 조선이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선동했다. 일본인 그 누구도 이 주장에 반박할 수 없었다.

“조선 말기에 고종왕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가 우리 군에 의해 괴멸되었다고 믿었던 ‘대한독립의군부’가 아직 실체를 유지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신사를 폭파한 범인이 이 단체의 소속 대원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적 수괴는 한영운이고 범인은 강대한, 일본명 타이키입니다. 그는 독립군의 후손입니다. 또한 그는 얼마 전에 신사에 침입해서 신물을 빼돌렸다가 잡힌 범인과 처조카사이입니다.”

각의를 소집한 총리가 서두를 열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일에 대해 일본에 깊은 유감을 나타내며, 자국민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사과를 한다고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 단체에 대해 알았다면 침략이고 몰랐다면 무능입니다. 한국의 치안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경찰도 있지만 정보당국이 가지고 있는 정보력은 우리 정보당국조차도 놀랄 만큼 강력합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발뺌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익들의 주장처럼 한국과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해결 가능한 방법을···”

그렇지만 총리는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가 한국에게 침략을 당했는데 무엇이 무서워서 전쟁을 할 수 없다고 하는지 설명해보세요. 지금 전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한국을 정벌하라고 외치는 소리를 총리는 듣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총리가 진땀을 흘렸다. 야당이나 우익은 저렇게 내뱉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국정을 운영하는 집권당의 입장은 막연하기만 했다.

‘국민들은 홧김에 한국과 전쟁을 요구하지만, 미국이 그걸 용납하겠습니까? 그리고 주변국들의 반응을 보세요. 하나같이 이번 일에 지지를 보내고 있어요. 국제적인 여론과 정세는 우리에게 턱없이 불리합니다.’

총리는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말을 힘겹게 삭히고 있었다.

회의는 고함만 지르다가, 아무 결론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일본이 스스로 선택할 길이 없는 것이다. 미국이 허락하지 않는 한···

한국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대한독립의군부’를 이끄는 수장 한영운의 신변과 이번 거사를 실행한 강대한의 신변을 확보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렇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대가 심했다.

전 국민들이 나서서 영웅으로 떠받드는 그들의 신변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정치생명이 끝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정치인을 포함한 경찰이나 정보국 조직의 구성원들조차 그들에 대한 어떠한 제재나 조사에 결연하게 반대하고 나서는 실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국민들도 국제적인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타협점을 찾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타협점이 문제였다. 일본인들은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찾고 싶어 했다.

‘전쟁으로 응징이 최상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한국정부가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사건을 저지른 단체의 수괴와 관련자 전원을 일본으로 압송하라.’

이것이 일본인들이 양보 가능한 최후의 조건이었다.

‘사사카와 재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일신을 양명한 ‘문부성장학생 조선일본인’ 들은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본을 위해 공헌한 바를 내세워야 하지만 국내의 여론이 강경해서 어디에도 틈이 없고, 그들에게 한줄기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본국으로부터 버림받겠다.’

그들에게는 일본이 본국이었다. 조바심은 송준병이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다. 그는 평소 친일성향이 강한 일간지에 기고문을 실었다.

‘우리 지식인들은 작금의 사태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분열과 불안을 획책하는 일부 급진주의자들이, 허울뿐인 감언이설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우국충정에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국제사회도 규범과 금도가 있다. 다른 나라의 영토에 잠입하여 물건을 훔치고 시설을 파괴하는 행동은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범죄행위이다. 선량한 국민들에게 공분을 살 범행을 연달아 저지른 범죄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일부세력들이 그들을 미화하며 찬양하는 사태가 목도되고 있다. 이에 우리 일본학회는 국민들이 조속히 이성을 회복하고, 범죄자들을 피해 당사국에 인도하여 양국 간의 우호를 증진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회복하는데 동참하기를 우국충정으로 호소한다.’

그렇지만 이 기고문은 그들을 나락으로 몰았다. 삽시간에 ‘송준병’과 ‘일본학회’가 검색어 순위를 장악했다. 네티즌들은 민의를 읽지 못하고 아집과 독선에 빠져 조국을 져버린 삶을 살아온 ‘조선일본인’들에 대한 혹독한 징벌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사카와’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문부상장학생’으로 살아온 ‘조선일본인’의 명단이 낱낱이 공개되더니 급기야 그들의 행적과 가족 신상까지 공개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지탄은 견뎌낼 수 있었지만, 가족들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은 감당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들은 지금 상황에서 일본의 도움을 얻을 기대도 가질 수 없었다. ‘문부성 장학생’들에게 모든 곳에서 길이 사라졌다. 급기야 송준병등 ‘일본학회’의 회원들은 모임의 해체와 함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일간지에 다시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렇게 정계와 재계에서 ‘조선일본인’은 소멸되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한영운과 강대한, 홍설민 등 야스쿠니 폭파사건과 연관된 모두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공식적인 요구가 한국 정부에 전달되었다.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못할 요구를 한 것은 저들의 저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일본이 결국 전쟁까지를 각오하고 이런 요구를 한 것으로 읽힙니다. 저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빌미로, 미국에게 명분을 삼고 자국 내의 온건파를 압박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일본은 명나라를 정벌한다고 구실을 내세웠죠.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적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 중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일본 패를 집어 들겠지요. 물론 미국은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어떻게든 말리려 들겠지만요.”

“그런 상황이 되면 북한도 오판을 할 겁니다. 적화통일의 적기라고 생각하겠지요. 중국도 북한에 동조를 할 거고요.”

그러나 한동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국제정세 속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북한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주시하던 정보원이 의미 있는 분석에 도달했다.

‘북한이 유의미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의 김일성에 대한 항일투쟁 역사는 북한의 근본과도 같은 것이다. 누구도 넘보거나 침범해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영역이다. 그런 영역에 북한이 야스쿠니 신사의 의거를 대입시키는 파격을 나타냈다. 북한은 이 의거를 인민들에 대한 충성심 고양의 소재로 사용하고자 설민국의 거사시점부터 지금까지 각종매체에 하루도 빠짐없이 소식을 전하고 있었지만, 이 변화는 충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설민국의사가 일으킨 거사가 보천보 전투라면, 강대한 의사가 일으킨 거사는 간삼봉 전투에 비견될만한 성스러운 쾌거다.’

북한에서는 청산리전투나 봉오동전투에 비견되는, 김일성이 1937년 6월에 지휘했다는 항일 투쟁의 성스러운 업적이었으므로 파격과 충격이외에는 말하기 힘들었다.

‘가능성이 보인다.’

정부는 이렇게 판단하였다. 그리고 진의를 파악하고자 움직이는 동시에 대북 특사를 물색하였다. 그리고 그 대상을 이재길로 낙점했다.

“북한이 공산주의 사상 체제이고, 조선의 왕실을 인정할리는 없지만, 그는 특별합니다. 북한이 정신적 근간을 두고 있는 초대주석 김일성의 항일 행적을 살핀다면, 이재길의 5대조 의친왕부터 배일정신이 투철하였고, 그는 ‘의현단’의 의장신분이었습니다. 설민국의사는 ‘의현단 단장’으로 거사를 수행한 것입니다. 이런 논조의 보도를 매체에 실었다면 이재길은 북한이 환영할만한 특사임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