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한의 가장 큰 고민은 어머니에게 거사를 고백하는 일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삶은 고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두었다. 그렇게 사시던 분이었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나자 빈자리가 크게 남았다. 나는 크게 남은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너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했지. 다리를 절룩이던 고모할머니와 어린 이모는 내게 매우 무거웠다. 엄마의 삶은 어른들의 독립활동으로 인해 그렇게 구겨졌다. 나는 이모와 생각이 다르다. 고모할머니를 존경하지 않는다.”

일본에 와서 삶이 안정을 찾자 자식에게 자주 넋두리를 하던 어머니였다. 그만큼 그녀는 일본에서의 삶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자신에게 안정된 삶을 내어준 하시모트를 그래서 사랑하고 있었다.

거사를 한다면 어머니도 일본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자신의 거사를 반대하는 차원을 넘어, 가로막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굴곡진 삶으로 인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들의 행동은 그녀의 삶에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 한들 세상의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수 없고 탓해서도 안 된다. 그녀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일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없는 고민 끝에 그는 이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모! 내가 거사를 하면 엄마는 일본에서 살지 못해요. 그리고 엄마는 하시모토상을 매우 사랑하고 있어요. 엄마가 한국으로 가지 못하면, 일본인들은 엄마를 인질로 나를 붙잡아 처형하려고 하겠지요. 제가 죽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엄마도 아마 자책감으로 살지 못하시겠지요.”

최선미는 한영운을 만났다. 조카의 말이 사실이었다. 언니가 일본을 떠날 수 있어야 그가 거사를 일으킬 수 있다.

“제가 그 부분을 간과했네요. 여사님 죄송합니다.”

“총사령관님께서 우리 집안의 일까지 속속들이 아실 수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이 일에 대한 대책은 필요해보입니다.”

“원래의 계획은 대한군과 같이 언니가 한국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는 일이군요.”

“언니는 저와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언니로 인해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거사일을 1000번째 수요집회 일로 계획했으니 12월 14일입니다. 이날 밤 9시에 신사가 폭파되고 대한군은 11시 경에 일본을 떠나게 됩니다. 방법은 딱 하나뿐입니다. 그 시점에 언니가 한국에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무슨 이유를 만들든 그렇게 되어야 안전하겠군요. 그 방법은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여사님의 가족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총사령관님께서 개인적으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실 일은 아닙니다. 시대의 비극인지 소명인지 알지 못하지만, 대한국민 누구라도 해야만 할 일입니다. 그것을 제가, 저희 가족이 맡았을 뿐입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우리 가족이 감당하게 된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우리 ‘대한독립의군부’가 자랑스럽고 총사령관님을 존경합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조카 강민희를 불렀다.

“이모, 엄마만 한국에 오면 안돼요. 하시모토상이 위험해요. 일본 극우들이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 엄마는 아빠를 많이 사랑해요. 저도 아빠를 사랑하고, 대한이도 그래요. 엄마와 아빠가 모두 한국에 있어야 해요.”

역시 딸은 엄마의 마음을 잘 알았다.

“네 말이 맞구나. 하시모토상이 너희 가족이지. 내게도 형부가 필요해.”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가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잠시 뒤, 강민희가 빙그레 웃었다.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이모, 내가 시집을 가면 돼.”

“무슨 소리야, 애인도 없는 애가 한 달 만에 어떻게 시집을 간다고. 그리고 이 일과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니?”

“내 말을 들어봐. 엄마는 일본으로 간 뒤에 한 번도 한국에 나오지 않았어. 오고 싶을 거야. 엄마가 나를 보러 오게 만들면 돼. ‘엄마, 나 시집가려고. 상견례 날짜 잡혔어.’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안 오고는 못 배길걸? 아빠도 반드시 같이 와야 할 거고.”

말을 마친 강민희는 의기양양했다.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다. 두 사람이 한국에 반드시 오도록 만들 수 있네.”

최선미가 방법을 말하자 한영운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군요. 여사님 조카에게 애인이 있나요?”

“아직 없어요. 그래서 약간 고민이기는 한데, 주변에서 대역을 해 주실 분을 찾아보려고요.”

“여사님! 그 대역 제 가족들이 하면 안 될까요?”

“총사령관님께 어떻게 그런 부탁을 드려요.”

“제가 자청하는 겁니다. 저도 이 거사에 작은 역할이나마 해야지요. 허락해주세요.”

“이미 모든 작전을 수립하시고 총 지휘하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 민족에 대한 사랑이 과하십니다. 그럼 감히 부탁 올립니다.”

“아닙니다. 제게도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아들이 있으니, 상견례 연습을 하는 셈 치면 되지요. 그리고 혹시 누가 압니까. 제 아들놈과 여사님 조카가 실제 인연이라도 될지.”

“저희 가족에게 그런 영광스런 경사가 생길까요. 너무 과분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여사님 가문이야말로 우리나라 제일의 명문가로 생각합니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소명과 영광으로 생각하는 가풍이 저는 존경스럽습니다. 만약 그런 경사가 생긴다면 오히려 저의 가문에 큰 영광입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럼 날짜를 12월 11일 일요일로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언니에게 한국에 온 김에 2~3일 쉬고 가라고 말하면 되니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일본의 동지들에게는 제가 그렇게 알려두겠습니다.”

뜻밖의 소식에 최선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난데없이 무슨 상견례를 한다는 거야. 그동안 엄마한테는 시집갈 생각 없다고 했잖아. 사귀는 사람도 없고.”

“맞아, 엄마. 나도 결혼 생각이 조금도 없었거든.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이 사람이 무턱대고 대쉬를 하는 거야. 내가 마음이 있었으면 엄마에게 미리 언질이라도 했지. 나도 이런 내가 좀 당황스러워.”

“너 속도위반했니?”

“전혀 그런 거 아닙니다. 딸을 그렇게 모르세요?”

“그럼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엄마는 내가 시집가는 게 싫은 거야?”

“그럴 리가 있어? 빨리 안가서 애가 탔는데.”

“그런데 반응이 왜 그래! 나 서운해.”

“아냐!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렇대도. 축하한다. 그런데 아빠가 일본 사람인거 그쪽에서 알아?”

“응! 다 알아. 요즘같은 글로벌 시대에 그게 무슨 문제냐고 그러네.”

“그건 다행이다. 날짜가 며칠이라고?”

“상견례 날을 12월 11일로 잡았어. 일요일이야.”

“알았어. 시간도 얼마 없네. 엄마가 뭘 준비해야해?”

“아무것도 준비할 거 없어요. 아빠랑 대한이도 같이 올 거지?”

“아빠는 가능할거고, 대한이는 일정을 물어봐야지. 왜 대한이도 있어야 돼?”

“꼭 그런 건 아니야. 가족들끼리 오랜만에 다 모일 수 있나 해서. 하긴 지난번에 대한이는 다녀갔으니, 그냥 엄마랑 아빠만 오세요.”

“그러지 뭐. 아빠랑 얘기하고 엄마가 전화할게.”

“예, 엄마. 그런데 이번에 오면 한국에 며칠 머물러라. 엄마랑 할 얘기가 많단 말이야.”

“그럴까? 아빠 일정을 보고, 가능하면 그렇게 할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타이키와 하시모토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애는 강민희의 소식을 전했다.

“정말이야? 축하할 일이네. 결혼이 늦어서 마음이 쓰였는데 정말 다행이야.”

“매형자리는 어떤 사람이래?”

“나도 잘 몰라. 전화로 그런 걸 어떻게 다 말해. 엄마도 갑자기 그러는 바람에 그런거 물어볼 정신이 없었다.”

“엄마, 나는 그 날에 신사의 일이 많아서 못갈 거 같아.”

“그럼 하는 수 없지. 당신은 이번에 한국에 가면 며칠 쉬다 올 수 있어요? 민희도 그러라고 하고, 나도 일본에 온 뒤로 처음 가는 거라서 며칠 머무르고 싶은데.”

“당신이 원하면 일정을 그렇게 맞추면 되지. 염려 마.”

강대한은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누나의 상견례 핑계는 정말로 탁월한 아이디어야.’

강대한의 얼굴에 웃음이 피자 최선애가 말했다.

“너도 누나가 시집가게 된다니 좋은가보구나.”

“맞아, 좋아! 우리 가족이 늘어나는 거잖아.”

“그럼 좋은 일이지.”

하시모토도 맞장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