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고 싶어서 수목원에 갔습니다. 봄에 봄꽃이 핀 수목원도 보기 좋았고

여름에 연꽃이 피고 청포도가 달린 수목원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수목원의

'가을'도 보고 싶었습니다. 백발이 되기 시작하면 머리에 흰눈이 내린다는 표현처럼

나무에 가을이 오니, 나무에 단풍이 흰눈이 내리듯 물들었습니다.

나무 윗부분 절반은 빨갛고 아래는 아직 초록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을이란 시간은 세상을

가로질러 가고 가고 있었습니다.

각양각색의 국화가 수목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작은 꽃송이가 가득 모인 국화도

있었고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국화도 있었습니다. 전시회장 주변에는 종국의 바둑판 위가

흑돌과 백돌로 넘쳐 나듯 국화화분이 가득하였습니다.

어릴때 교과서에서 국화기르기를 배운 후, 국화를 얼마나 좋아하게 되었는지

직접 기르기도 했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만개한 국화 화분을 사다가 집에 두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본 국화는 감흥이 좀 달랐습니다. 넘쳐나는 국화에 신기하고 놀랍기는 하였지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침이었습니다. 장미를 보았습니다. 가을 장미. 가을에 핀 것이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장미가 원래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품종인데 워낙 5월의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가을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철이 지나서인지 만개하였지만 꽃잎도 많지 않고 색깔도 진하지 않았습니다.

외로워 보일 만큼 적은 꽃잎을 가진 선홍색의 가을 장미.

억지로 많은 비료를 주거나 꽃망울을 관리하여 국화처럼 풍성하고 큰 꽃은 아니었지만

인위가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자연스러움이 예뻐보였습니다.

가꾼 국화가 미스코리아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면 아침에 본 가을 장미는

자연미가 가득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11월 월간바둑이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읽는 "정용진의 신기사론"을 폈습니다.

첫부분에 오타가 있었습니다. 오타가 아침에 본 장미처럼 아름다워보입니다.

그리고 미소짓게 합니다. 그 미소가 하루가 지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가을 장미가 자연스럽게 보이고, 오타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완벽함보다는 자연스러움과 서투른 것의 맛을 아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