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줍잖은 셀카~~)

선비 만석 나를 뒤 돌아보면

선비만석

  (글머리에)

  나이 쉰을 이르는 말 지천명을 넘긴지도 몇 해 인가.......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의 삶인들 쉬운 삶이 있겠냐만 내 나이 이순을 앞두고 지나온 세상을 돌이켜 보니 참 많이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본다.   

  어린시절

  내 아버지는 어려서 할아버님을 여의고 개가하신 할머니를 따라서 무지하게 고생만 하고 자라신 분이다.  1908년생이시니 구한말 한일합방이 되기 전해에 태어나셨다.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가신지 어느새 29년이다. 아버지는 개가하신 할머니를 따라서 가셨으나 계부 밑에서 있는 것이 싫어서 인지 요새말로 가출을 하셔서 북한 땅에서 고생도 하셨고 해방되기 전에는 일본 북해도에 징용을 4년 가셨다가 해방 후에 귀국을 하셔서 우리 어머니를 만나셨다. 내 위의 누님이 올해 회갑이시니 세월이란 참으로 빠르다.

  나는 아버지에게 금이야 옥이야 할 귀한 아들이건만 가난한 아버지에게 태어난 죄로 어려서부터 많이 외로웠다. 밀양박씨 부원군 파의 종손인 나는 9대독자이기도 한데 내 아들이 또한 독자이다. 근근이 혈족을 이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일학년 시절 우리 집은 옛말로 우환이 들었다.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셨고 그 병이 신 내림을 받아야 하는 그런 병이라는 것을 나는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내 위에 씨 다른 형님 두 분이 계시고 누님이 계신다. 하지만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라 형제애는 정말 남다르다. 어머니의 급작스런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였고 어머니는 병환에 시달리다 못하여 이웃 사람의  권유로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성당에 나가 기도를 하니까 귀신이 자꾸만 속삭이더란다. (여기는 왜 와 있는 거야. 어서가자. 저놈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 어서가자.) 어찌 되었던 어머니는 성당에 나가시기 시작하였고 나는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성당에를 다니기 시작 하였다. 성당에 나가기 전에 굿을 하였는데 무당이 내게 귀신이 붙었다고 복숭아나무로 나를 마구 때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례를 받으려면 교리문답이란 책을 외워서 신부님 앞에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나는 학교에도 안다닌 어린 것이 한글을 깨우쳐 교리문답을 줄줄 외워서 세례를 받았으나 너무 어리다고 영성체를 해주지 않으셨던 기억이 새롭다.

  어머니가 병환이 낳을 무렵 급격히 기운 가세로 인해 큰형의 결혼식을 억지로 성사시키고는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 일 학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이 되었다. 형은 어머니를 모시고 고성군 거진으로 오셨고 나는 아버지와 단 둘이서 울진에 있는 외가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외가에서 신세를 당분간 졌으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눈치가 보인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평해란 곳으로 가서 옹기 만드는 곳에서 옹기 일을 하시고 품삯으로 옹기를 받아서 팔러 다니셨다.

  어린 나는 학교엔 다니지 못하였고 아버지를 따라서 옹기 공장에서 흙을 반죽하고 놀았으며 아버지가 옹기를 팔러 지게에 옹기를 지고 장에 가실 때는 아버지를 따라서 시장 구경을 하러 다녔다. 하지만 그 때는 아주 어려운 자유당 시절이라 배고픔으로 늘 허기진 나날이었고 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옹기공장에서 나와서 남의 집 일꾼 살러 가셨다.  그곳이 어디인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수할 무렵에 일꾼으로 들어가셨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쌀이 흔한 때가 아니라 주식이 조밥 아니면 보리밥이었는데 산골이라 노란 조밥이 주식이었다.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어 나는 주인집 소를 먹이러 다녀야 하였고 비가 와서 장마가 많이 진 날 소꼴을 뜯으러 내를 건너다 물에 빠져서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해 여름 내생일 이었다.   

  내 생일이 음력으로 6월6일이라서 내 생일날 아버지는 하나뿐인 자식에게 쌀밥을 먹이고 싶으셨던지 주인에게 말해서 그날 아침은 아버지와 받은 밥상의 내 밥그릇은 하얀 쌀밥이 한 그릇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노란 조밥이고 난 하얀 쌀밥인데 차마 혼자서 그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와 나누어서 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다.

  아버지는 방랑벽이 있으신지 또는 성격이 직선적이신지 모르지만 일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 집을 나와서 다시 외가가 있는 울진에 와서 방을 얻고 그 다음해에 나를 학교에 보내 주셨다. 이학년을 다니지 못하고 일학년도 일 학기를 마치지 못한 탓이라 학적부도 없었고 학교에 데리고 가서 선생님에게 사정을 말씀드리니 국어책을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하시는데 나는 한글을 읽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라 줄줄 읽었더니 3학년에 입학을 하라신다.

  울진에서 3학년을 다니다가 난 헤어진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몰래 울던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울진에서 옹기장사를 하시다가 도저히 안 되니 그만 묵호로 가자고 하셨다. 묵호에는 개가한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데 거기를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돈이 없으셔서 울진에서 삼척까지인가 버스를 타고 와서는 거기서부터 3일을 걸어서 묵호로 왔다.  오면서 날이 어두우면 인가를 찾아서 밥을 구걸하고 잠자리를 구걸하면서 그 어린 시절에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걸었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묵호로 와서는 아버지는 작은댁에서 돈을 구하셨는지 방을 하나 얻으시고 나는 묵호국민학교로 전학을 하였고 아버지는 묵호항에서 오징어잡이 (그 당시는 이까바리라고 일본어로 말했다.)를 하러 다니셨다. 아버지가 오징어잡이를 가시면 나는 혼자서 밤에 잠을 자야했고 혼자 있으니 엄마가 더욱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엄마가 어디서 사는지 알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었던 그 시절에 나는 정말 혼자서 많이 울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도 많이 생기고 또 아버지가 준 용돈으로 굴다리 밑에 있는 만화가게를 들어가면 하루 종일 만화를 보곤 하였다.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나를 데리고 성당에를 나가시고 가끔은 시장에 들러서 맛있는 찐빵을 사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울며 매달렸다.

  “아버지 엄마한테 가자........”

  잠자리에서 아버지의 가슴을 더듬으면서 우는 어린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그해 겨울 드디어 짐을 꾸리셨다. 완행버스를 타고 포장도 안 된 길을 하루 종일 걸려서 도착한 거진은 칡흑 같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눈이 내려 빙판길이 된 길을 따라서 한 사십분 걸었을까 인가가 보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아버지와 나를 본 어머니는 말을 잃으시고 나를 안고는 울기만 하셨다.

“아이고 용석아, 엄마가 너 때문에 맘 편히 잔 날이 없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대성통곡을 하셨다. 막내아들 그 어린 것을 삼년동안 떼어놓고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나도 어머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렇게도 보고 싶던 어머니와 형과 누나들 큰 누나는 이미 그 동네에서 시집을 가셨고 식구들은 방 두 칸인 초가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날 난 어머니 품에서 잠들 수 있었다.

  그 다음해 봄 나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전학을 하여서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을 열심히 공부를 한 덕분에 반장을 도맡아 하였고 육학년 때는 전교 회장을 하였다. 육학년 이학기가 되어서 중학교 입학시험이 걱정이 되신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아주 혹독하게 공부를 가르치셨으나 나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수 없었다.

  “얘야, 네가 중학교 입학시험에 붙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네 학비를 댈 수가 없구나.”

  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나에게 청천벽력이었다. 결국 나는 중학교 진학을 못하였다. 하지만 3년 동안 우등산과 개근상을 받았고 졸업식 날 나는 교육장 상을 받았다. 그리고는 중학교에 다니지 못한 대신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사환 일을 보기로 하였다. 그 당시 사환월급으로 칠백 원을 받았다. 그리고는 중앙강의록 이라는 강의록 책을 구입하여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쉽게 되는 일은 없었다. 학교의 선생님들 잔심부름과 교육청에 하루에 한번씩 나가서 공문을 수령해 와야 하는 일상의 범주에서 좀처럼 공부의 진도도 나가지 아니함은 물론 혼자서 하는 공부라 막히는 부분이 나타나면 그만 공부가 싫어지는 것이었다. 또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바둑을 알게 되어서 시간 날 때면 으레히 바둑에 빠져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초등학교 사환 일을 3년 반을 하였고 또 월급도 올라서 이천 원을 받기는 하였으나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일제시대 북해도 탄광에서 진폐증을 걸리신 아버지는 결핵약을 아예 몇 달치를 드시게 되는 병약한 몸이 되셨고 내 위의 누님은 스무 살 되던 해에 시집을 갔다. 나는 1968년 여름에 학교에 사표를 던지고는 서울로 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큰형이 늙은 부모 팽개치고 서울로 가려 한다고 나를 막았다. 그 때부터 나는 노동판을 전전하는 노가다가 되었다. (다음에 계속)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아들이 절을한다

   -청소년 그리고 청년시절-

  친구들은 다들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 또 그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그 시절에 나는 먹고살기 위해서 노동판을 전전하는 막일꾼 (노가다)이 되었다. 노동판을 전전하면서 나는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다.

  처음 노동판을 나간 나이가 고등학교 일학년이 될 무렵인 1968년인데 몸은 이미 자랄 대로 자라서 지금의 키는 그 때 이미 다 자랐다. 나이를 먹으면서 먹고 사는 문제 그것도 노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처지는 나에게 꿈도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저 새벽밥을 먹고 일터에 나가야 하고 십장의 눈에 잘 들어서 낼부터 쉬라는 말만 안 듣고 일을 나가는 것이 하루하루의 나의 삶이었다.

  질통이란 것을 그 때 처음 져 보았다. 콘크리트 타설을 지금처럼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철판(일본말로는 데방)에 순전한 인력으로 콘크리트를 비벼서 타설 하는 시대였다. 그 때는 철판에서 콘크리트를 비비는 네모난 삽을(일본말로 네리가다 삽)들고 콘크리트를 비비는 사람이 임금을 많이 받았고 또 목수나 철근(일본말로 데낑)을 다루는 사람이 돈을 많이 받았다.

  나는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팀(일본 말로 구미)에서 질통을 지게 되었는데 처음엔 젊은 놈이라고 자갈 질통을 지란다. 한데 한번도 져보지 않은 질통에 자갈을 하나 가득 담고서  철판까지 날라야 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받침대(일본말로 다이)에서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으니 일어 설 수 없고 용을 써서 겨우겨우 일어났으나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철판까지 간다는 것은 정말로 난관이었다. 보다 못한 십장이 한마디 하는데 그 말이 거의 욕이었다.

  “야, 이 새끼야 덩치는 조선반만 해가지고 자갈질통 하나 못 지냐?”

  그만 그 자리에서 질통을 확 팽개치고 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병든 아버지와 나이 드신 어머니를 내가 돈을 벌어야 끼니라도 때울 것이니 꾹 참고 일을 하려니 너무도 힘이 들었다. 그 때 나와 같이 일하던 내 위의 형이 십장에게 말하여 나는 좀 수월한 모래 질통을 지게 되었다.

   그 후부터 나는 노동판에서 안하여 본 일이 없었다. 철근 보조공(일본말 데모도)으로 일할 때는 망치로 철근을 내리쳐 잘라야 하는데 이놈의 망치(겐노)가 얼마나 무거운지 자칫 잘못 하다간 기술공(오야지) 손을 작살낼 판이니 긴장한 상태에서 정말 힘들게 일하려니 왜 그리 배는 빨리도 고픈지 그저 점심시간만 기다려지곤 하였다.

   나는 콘크리트 네리가다 삽을 잡는 것을 배우고자 남들이 쉬는 시간에 철판에서 혼자 네리가다 삽 돌리는 연습을 하였고 시멘트를 다루는 보조공으로 드디어 철판에 합류를 하였다. 질통을 지는 사람들이 모래를 질통에지고와서 철판에 부으면 나는 거기다 시멘트를 쏟아 붓고 네리가다 들이 시멘트를 섞으면 다시 거기다 자갈을 넣고 나는 물을 적당히 붓고 시멘트를 네리가다 삽을 쥔 인부들이 석는다. 그해 여름 내내 공고리판(콘크리트 비비는 일)에서 일을 하다가 나는 결국 네리가다 삽을 잡고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석공일도 해보고 목수 데모도를 하기도 하였는데 그놈의 거푸집이 왜 그리도 무거운지 합판으로 만든 거푸집을 등에 메고 나르노라면 정말 힘들었다.

  그 다음해에도 나는 노동판에서 일을 하였다. 목두를 할 적에는 목두는 손발이 잘 맞아야 하고 가락에 맞추어서 발을 움직이는데.......그 가락이란 것이 전부 육두문자였다. 그래도 그 때는 그런 가락이  사람 사는 냄새처럼 느껴지던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나는 가락을 좀 옮겨보면...

  “허어....가자가자. 저기 가는 과부 엉딩이 실룩실룩 어허야 가자가자 지랄 맞은 미친년이 엉딩이를 흔들흔들” 

  내 나이 17세에 시작된 노동일은 젊은 시절 나의 호구지책이었다. 하지만 난 노동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지 않았다. 강의록을 보다가 집어치우고는 중학교 참고서를 구입해서 무조건 읽었다. 암기 과목은 그럭저럭 기억력 하나로 버티었으나 영어와 수학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 했으나 그 시절에 시골에 학원도 없었고 또 나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누구에게 중학교 과정을 배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공부보다 다른 일에 시간을 뺏기게 되었다. 그 중에 바둑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였고 선배들로부터 배운 고스톱도 나를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걸 사람으로 만들었다.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흘러 나는 어느덧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다. 1972년 봄 나는 신체  검사를 받으러 본적지인 삼척으로 갔다. 가는 길에 묵호에 있는 작은집에도 들렀다. 거기서 나는 기원이란 곳을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국기원 묵호지원이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판 내기 바둑과 방내기 바둑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까까머리 중학생이 교복을 입고 기원에 드나들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바둑티브이 해설가로 유명한 조 대현9단이다. 조 대현 사범이 바둑 두는 것이 그 당시 난 참으로 신기했다. 한국에서 세력바둑의 대가로 알려진 조 대현9단은 현재 프로기사회 회장 직을 역임하고 계신다.

  신체검사에서 1급 갑종을 받은 나는 군대에 가면 아버지 어머니는 누가 모시나 하는 걱정에 나는 군대를 가지 않는 방법을 찾다가 가사사정으로 군대를 안가고 방위병으로 가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영연기를 2년을 하고 나는 운 좋게 방위병으로 군에 입대하여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7개월 복무 후 의가사 제대를 하였다. 계급은 이병. 그사이 동네 친구들은 군대를 갔다.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노동판을 전전하였다.

  석산 일을 할 때였다. 점심시간이 한 삼십분 남았을 무렵이었다. 일하던 인부들이 무너져 내리는 돌 더미를 피하느라 혼잡스런 속에 나도 살고자 뛰었는데 나이 드신 한분이 미처 나오지 못하고 돌무더기에 깔려서 현장에서 즉사를 하였다.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한 나는 한동안 그분이 꿈에서 나타났다. 끔찍한 사체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리어카에 싫고 병원으로 가야 했는데 내가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시체를 빼내느라 크레인을 동원 했는데 바위가 너무도 커서 질질 끄는 바람에 시체는 엉망이었다. 사람의 목슴이 파리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노동판에 다니면서 험난한 인생을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단 한번뿐인 인생을 노동판에서 산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였다. 1972년 처음으로 공무원 시험이란걸 보기로 작정하고 시험을 보았는데 공부를 조금만 하면 합격을 할 것 같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공무원 시험과 고등학교 입학자격 시험 공부를 하였다. 공무원을 하고자 한 것은 아무래도 직업이 있어야 장가라도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 당시 나는 여자 친구를 한 사람 사귀고 있었고 그녀는 나더러 공무원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기에 나는 여자친구에게 당당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여자친구는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시는 집안이었고 여자친구는 읍내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밥을 해드리고 시중을 들어주던 아주 예쁜 친구였다. 그녀의 이름은 “최 화순” 내 가슴속에 묻어둔 그 이름 석자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건만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다. 그녀는 집안에서 나를 사귀는 것에 반대하여, 그것을 못 이기고 그만 저세상으로 먼저 갔다. 난 그녀의 무덤이 어디인지 조차 모른다. 다만 그녀와 함께 거닐었던 들판, 같이 갔던 자장면 집, 여름밤 날이 밝아올 때 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던 학교 운동장, 함께 끓여 먹던 추어탕, 감자전 등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 묻어둔 기억의 편린일 뿐.........

  1975년 나는 5급을 지방행정직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영어와 수학성적이 좋지 않아서 떨어졌고 그 때부터 시험이라고 있으면 응시를 하였으나 보는 시험마다 실력이 없어서 떨어졌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부는 죽어라 계속했다.

  1976년 나는 경찰관 채용시험에 응시하였다. 물론 시험과목에 영어와 수학이 없어서 쉽사리 생각하고 응시하였다. 1차 시험은 신체검사였다. 그 때만 해도 한창 젊은 나이였고  태권도와 유도를 하던 나는 신체검사에 합격하고 2차 시험 과목인 국어, 국사, 법제대의, 경제대의 등을 객관식으로 보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고는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데 아는 경찰 선배가 신원조회 차 집으로 들렀다.

  “야, 만석아 너 축하한다.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고 신원조회 하란다.”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너무도 기뻤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서 동네에 소문이 다 났는데 3차 시험과 최종 면접시험이 남아있었다. 3차 시험은 논술시험인데 그때의 시험 문제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내가 불합격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50점짜리 첫 번째 문제는 “범죄구성의 세 가지 요건을 설명하시오” 나는 도대체 이런 제목이 순경시험에 나온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그 당시 특별한 경찰을 뽑는 시험이긴 하였지만 나중에 방송대학 법학과에 진학하여서 책을 보니 범죄 구성의 세 가지 요건은 “위법성”, “유책성”, “구성요건의 해당성” 이라는 것인데 얼뜨기 촌놈이 그것을 알리 없었고 그저 생각나는 것이 법을 위반하면 안 된다는 것만 장황하게 썼던 기억이 난다. 25점짜리 두 문제는 “유가증권에 대하여 논하시오” 라는 문제가 하나있었고, 하나는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 되었거나 소문만 요란하게 내고 시험에 떨어진 후에 나는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전념하여 그해 여름 합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해에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하면서도 난 공부를 하였다. 아내의 집은 우리 집에서 한 사십 리 떨어진 시골에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 그 마을에서 시집온 사람이 있어서 우리 장모님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얼른 우리 동네에 가서 딸 찾아오세요. 딸이 우리 동네 날건달을 만나서 아예 그 녀석 집에 드나들고 있으니 딸 신세 망치기 전에 데려 오세요.”   

  나중에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고 나서 처가에 인사를 갔다가 장모님에게 들었던 말이다. 장모님은 딸이 팔자가 좋으면 제 짝을 만날 것이고 안 그러면 집으로 오겠지 하고 팔자대로 살라고 내버려 두었다는데 우리 장모님은 그 때 실수 하신 것 같다. 여직 마누라 고생만 시키는 나 같은 놈에게 딸을 주셨으니.

  1977년 국가공무원 시험공고를 신문에서 보고 나는 시험을 보기로 작정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내 생전에 처음으로 서울을 갔던 1977년 1월은 겨울이라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가서야 서울에 도착하였다. 원서를 내느라 한번 다녀오고 또 시험을 치느라 서대문에 다녀오고, 합격 후에 합격자 등록을 하느라 세종로에 있는 정부청사를 1977년 4월에 처음으로 방문하던 날 나는 내가 여기서 근무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였다.

  합격자 등록을 하고 한 달 후인 1977년 5월28일 나는 발령통지서 한 장을 받았다. 그것이 내 공무원 생활의 첫발이었다. (계속)

   아련한 도시락의 추억

  -꿈꾸는 자의 반란

  1977년 5월 30일 발령장을 받아들고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또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을 한 뒤 내가 공직생활을 시작하기위해 찾아 간 곳은 말로만 듣던 교도소였다. 교도소 서무과를 찾아가서 공무원인사기록카드를 작성하던 가슴 벅찬 그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이 눈앞이라니...... 그 당시 춘천교도소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었으며 애국지사들이 그곳에서 고문과 학대를 받으면서 지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것은 내겐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들어온 공무원인데 그런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이제부터 월급을 받고 부모님에게 그 월급에서 돈을 보내 드리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의 장래를 머릿속에 설계하면서 발령 날 때를 손꼽아 기다렸던가.

  일제시대에 경성감옥 춘천분감으로 시작된 교도소의 역사를 선배 교도관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그 당시 초임발령 받은 31명의 동기생들은 교도소 선배가 나누어준 기동복(군복)에 모자를 쓰고 워커를  신고 나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리고는 교도소의 견학이 시작되었다. 우선 미결수가 구금되어있는 사동으로 들어가기 위해 미결감방 앞에서 대열을 정렬하고 있는데 미결사동 방에서 우리를 본 미결수가 던진 한마디는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야....여기 햇 돼지 들이 우글우글 몰려왔다.”   

  이 한마디에 사동의 창을 통해 우리를 구경하고자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창으로 몰려들어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보듯이 우리를 보면서 저희들끼리 낄낄 거렸다. 나는 죄수인 그들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무언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애써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미결사동을 구경하고 기결수들이 징역형을 받아 일하고 있는 공장(작업장)으로 기결수를 보러 갔다. 기결수들은 머리를 빡빡 깍아서 마치 스님의 머리처럼 하고는 모두들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목공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의 책걸상을 만들고 있었으며 양재공장의 사람들은 죄수들의 옷을 만들고 있고,  또는 교도관의 옷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조화공의 죄수들은 꽃을 만들고 있었다. 세탁공장 죄수들은 옷 세탁을 하고 있었고, 이발부들은  죄수들의 머리를 깎기도 하였다. 교도소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 동기생 31명은 갑부와 을부로 나뉘었다. 나는 갑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퇴근을 하고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신규직원 교육을 받게 되었다. 춘천에 오던 날 하숙집을 정한 나는 하숙집에서 저녁을 먹고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편지를 써야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무사히 잘 도착하여 내일부터 근무를 한다는 것과 그 때 아예 보따리 싸가지고 집에 온 아내에게 조금만 고생하고 어머니 아버지 잘 모시고 있으라는 부탁을 하였다. 낯선 춘천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일주일간의 실무교육이 끝나고 출근하여 근무를 하명 받은 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감시대라는 곳이었다. 감시대는 죄수들의 탈옥이나 교도소내의 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해 교도소 담장에 만들어 놓은 것으로 초임 교도관이 근무를 하게 되는 곳이다. 두 시간을 근무하면 30분을 쉬게 된다. 그 삼십분 쉬는 시간에 용변도 보고 또 휴게실에서 바둑이라도 한판 두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감시대를 타면서 휴식시간에 직원 휴게실로 불이 나게 달려와서 두는 한 판의 바둑 그 때부터 나는 바둑을 거의 속기로 두는 것이 몸에 배었다.

  그 해 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뜨거운 여름태양아래 달구어진 감시대안은 창문을 죄다 열어 놓아도 말할 수 없이 덥다. 그렇다고 그 시절에 선풍기도 없는 곳에서 오직 바람이 불거나 부채를 부치면서 근무해야 하는 감시대에서 나는 어느 날 꾀를 내었다. 내 근무하던 감시대가 마침 세탁공장 가까이 있는 곳이라서 그곳 근무자에게 부탁해서 물통에 물을 넣어서 포승줄로 달아 올려서 구두와 양말을 벗고는 아예 바지까지 벗고는 팬티 바람에 상의와 모자만 쓰고 물통에 발을 담그고는 근무를 하였다.

   교도관 생활을 한달정도 마치고 첫 월급을 타서 고향에 게신 부모님에게 우편송금환으로 이만 원을 송금하던 그 날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첫 월급 4만 5천 원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돈이었고 월급을 그렇게 많이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월급봉투에 오천 원과 천원 새 지폐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숙비 오천 원을 주고 나도 이만 원이나 남았다. 내가 엄청나게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첫 월급을 타서 집에 송금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나는 비번 날 하숙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아내가 나를 찾아왔다. 한 달 동안 보지 못한 아내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시작한 동거생활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그 멀리서 나를 찾아온 아내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벅차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하숙집 방에서 나는 아내와 떨어져 있던 한 달 간의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하였고 아내는 며칠 묵다가 가야겠다고 한다. 그 다음 날 아내를 하숙집에 두고 근무를 가려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날 근무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근무를 하면서 아내를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번 날 나는 아침 아홉시에 퇴근을 하자마자 한 달음에 하숙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아내를 데리고 춘천의 효자동 산꼭대기에 방을 하나 얻었다. 월세 3천 원짜리 방 한 칸을 얻고는 밥해먹을 밥솥으로 냄비와 그릇 몇 개 그리고 이불과 비닐옷장을 샀다. 그 당시 이만 원으로 그 모든 걸 사고 또 연탄도 백장 들여놓고 석유곤로도 하나사고 쌀도 사고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어 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아내와 떨어지기 싫은 나는 그만 춘천에서 그렇게 방을 얻고 아내와 동거생활을 시작하였다.

   여름 내내 감시대를 타는 그런 고생을 4개월 한 끝에 나는 다행히도 상사의 눈에 들어 보안과의 서무를 맡게 되었다. 그야말로 공무원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서 사무를 보게 된 것이다. 보안과 서무는 직원들의 배치를 담당하고 그들의 근무일지 및 총기지급 등을 보안과 일지작성 또 말썽부리는 재소자의 징계 등을 담당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기결 사동에 강릉에서 전입되어온 재소자의 신체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의 눈을 의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황 XX 라는 내 초등학교 동창생과 마주친 나는 그만 할말을 잊었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한 사람은 교도관이요. 한 사람은 죄를 진 죄수로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자 친구는 고개를 푸욱 떨어트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도 못했고 또 이런 상황에서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재소자들의 신체검사를 마친 나는 그들을 사동 근무자에게 인계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친구는 어려서부터 개구쟁이였다. 중학교 다닐 무렵에 사고를 처서 소년원에 한번 들어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 처음 만나는 친구가 결국 범죄인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사무실에서 한동안 마음을 안정시킨 나는 친구가 갇혀 있는 사동으로 갔다.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도대체 너 무슨 죄로 들어왔냐? 이게 어찌 된 건지 속 시원히 말 좀 해라.”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미안하다.”

  “친구 간에 미안한 것이 다 뭐냐. 너 여기 있는 동안 나에게 부탁할 것 있으면 지금 말해라 머 치약이나 칫솔 같은 것 필요하냐?”

  “괜찮으니 너 어서 가거라. 남들 보는 눈도 있으니.......”

  친구는 얼굴이 잔뜩 굳어서 나와의 대면이 엄청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뒤로 그 친구가 형기를 마치고 나가던 날 나는 친구에게 돈 만원을 건네주면서 다시는 이곳에서 보지 말자고 하였는데 그 친구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는지 그 뒤로도 몇 번 교도소를 들어왔다는데 춘천으로 오지는 않았다.

  아내와 신접살림을 차리고 일년여가 지난 1978년 나는 아내와 의논 끝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춘천으로 모시고 오기로 하였다. 두 분이 식사를 끓여 드시고 적적하게 지내시는 것 보다는 그래도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살기로 아내와 약속을 한 나는 시골의 초가집을 이십 만원에 팔고 춘천에 월세 만 오천 원짜리 집을 얻어서 부모님을 모셨다. 시골 고향에서는 내가 공무원이 되어서 부모에게 효도 한다고 하였지만 결국 그것은 고생길이었다.

   1978년 1월 20일 아내가 시골에 가서 첫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벌써 그애가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해 월급이 오만 원으로 오르고 박 정희 대통령이 공무원의 처우 개선책으로 보너스를 만들었다. 3개월에 한번씩 보너스가 나오자 오만원인 월급의 100%를 보너스로 주니 보너스 달은 십 만원 이라는 거금이 생긴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자 아버지는 친구들을 사귀시느라 매일 친구들을 만나서 골패를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공지천으로 낚시를 가셨다. 하지만 북해도 탄광에서 얻은 진폐증으로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깊어지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을 춘천으로 모시고 온지 일년도 안 된 1979년 4월 아버지는 72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셨다. 아버지를 학곡리 공동묘지에 묻던 날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못난 아들 하나 잘되라고 뼈 빠지게 고생 하시면서도 늘 웃으시던 아버지 평생을 호의호식 한번 못하시고 가난의 한도 풀지 못하시고 저세상으로 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임종을 나는 근무하는 바람에 지켜보지도 못했다. 아버지 가신지 어언 3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아버지 산소에 비석하나 세우지 못하는 나는 사람이 아닌가 보다 불효막심한 이런 아들을 아버지는 어찌 보실는지.............

  교도관 생활이 익숙해지고 점차 직장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업무도 사무실업무로 바뀌었다. 분류실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재소자의 가석방 업무와 분류심사를 하는 곳이다. 업무가 편해지자 나는 배움에 대한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나에게 복음이 들려왔다. 방송통신고등학교가 생겨서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며 학생을 모집 한다는 것이었다. 1979년 나는 그렇게도 원하던 고등학생이 되었다.

  춘천고등학교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비록 일주일에 한번 수업을 나가는 학교이지만 나는 휴일에 학교수업을 나가야 하는데 휴일 근무 날이 되면 차마 학교 간다는 것이 어려워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장의 윗분 들이 휴일 날 학교에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3년 동 안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나는 꿈을 꾸었다. 대학을 반드시 가리라. 그리고 성공하리라. 나의 꿈은 실현될 수 없어도 자꾸만 커져갔다.

  1982년 내 나이 서른한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 하던 날 나는 졸업장을 가지고 아내에게 달려갔다. 비록 춘천고등학교 음악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진 졸업식이지만 나는 지금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닌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제 정규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그럴 형편이 못되어서 방송대학으로 진학하기로 하였다. 고등학교은사에게 상담하니 방손대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농학과에 원서를 넣고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나 농학을 배워서 무엇 하랴 하는 생각에 입학을 포기하고 1983년 다시 법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법학과에 합격을 하고나서 나는 꿈속에서 살았다. 꼭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도전하리라 하는 엉뚱한 야심이 생겼다. 방송대학을 다니면서 학교에서 공모한 넌 픽션에 나는 “나의 城을쌓기 위해” 라는 제목으로 응모해 장려상에 입선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춘천 문화방송에서 내 직장인 춘천교도소로 나를 취재하러 오고 간부들은 회의 끝에 취재를 허락하여 나는 얼떨결에 방송을 타게 되었다. 그리고 내 넌 픽션을 읽은 사람들이 수많은 격려와 편지를 보내 주었다. 그 일이 더욱 내가 꿈을 꾸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 사이에 세상은 박 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났고 신군부가 정권을 잡고 사회정화운동이다 라는 명목 하에 사회악 일소와 조직폭력배를 소탕 한다는 구실로 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끌려가서 삼청교육이라는 것을 받는 살벌한 때였다. 보호감호법을 만든 신군부는 청송에 그들을 수용할 시설을 만들었고 임시로 구 춘천교도소 자리에 제3감호소를 개청하였다. 그것이 1983년 10월경이었다. 나는 제3보호감호소 개청요원으로 차출되어 작업과에 배치되었다. 작업과는 재소자의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곳으로 직업훈련 업무를 맡게 된 나는 보호처분을 받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살 수 있는 훈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후 군부대 트럭에 군복을 입고 머리는 더벅머리 장발 인 채 수백 명의 보호감호자가 탑승하여 호송되어왔다.(다음에 계속)

      (꿈은 아루어 지는 것이라 믿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