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국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보니..

  ... 따뜻했다.

대국장은 너무나도 냉방이 잘 되어있어서.. 정말 추웠다. 이번 청주 투어에 무려 34분의 프로기사가 내려온다는 소식에.. 대국중인 선수들의 열기에.. 덥지 않을까..? 생각으로 겉옷을 챙겨오지 않았었는데.. 선수들의 열기보다 에어컨 바람이...?!

“멀리가지 말아요. 바로 시작이에요..” 라는 PD님의 말에.. 행사도 구경하고, 사범님들과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원대한(!) 꿈은 펄럭펄럭~~

화장실만 들렀다가 얼른 대국장으로 복귀했다.

제일화제와 월드 메르디앙의 첫 번째 1,2,3국 동시 대국은 제일화제의 조훈현, 안달훈 사범님이 승리하며 2:1의 상황..

제 4국은 이세돌 사범님과 최철한 사범님의 대국이다. 이번 판에 최철한 사범님이 승리하면.. 2:2.. 5국까지 가게된다.

나는 메인 계시원이라.. 4국, 5국을 모두 계시해야 하기에.. 이번 4국.. 이세돌 사범님과 최철한 사범님의 대국에 매우 중요한 것이 걸려있었다. 

바로...  저.녁.식.사.

대국과 대국 사이 시간은 대략 20분? 그러나 계속 대국장 근처에서 대기해야 하기에 그 시간에 저녁식사는 불가능..

그래서 모든 대국이 끝날때까지 식사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방송팀이나 A7 등 진행 관계자.. 그리고 계시원이다.  특히 나와 같은 메인 계시원의 경우 1국이 시작되는 2시부터, 만약 2:2가 되어 5국이 진행되면.. 모든 대국이 끝나는 저녁 9시정도까지 계속 계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할 수 없다.

하필이면 그날 점심때 시킨 짜장면과 볶음밥이.. 사상 최악(!)의 맛이었다.. 밍밍한 짜장면과.. 삐들삐들 마른 당근이 별빛처럼 가득 박혀있던 볶음밥.. 사실 짜장면23그릇.. 볶음밥23그릇을 만들어 오라고 할땐.. 이미 맛을 포기했다는 것과 같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집에서 따땃한 밥을 해놓고 기다리시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든.. 정말로 숙연케 했던..  눈물젓은 춘장의 향기로 가득했던 최악의 점심식사.. ㅜㅜ

‘4국이 시작되기도 전에.. 배가 고파오는데.. 아아.. 최사범님이 이기면.. 5국까지 굶으며 계시를 해야하는걸까?’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눈으로 이세돌 사범님을 쳐다보게 되었다. ‘승리해서 우리에게 저녁밥을 안겨주세요~’ 뭐 이런 기대가 담긴 눈이랄까?

‘아니야.. 아니지.. 계시원이 이러면 안되. 공정해야해..’ 얼른 정수기로 달려가 물을 한컵 가득 들이켜 공복을 달래고 두 사범님이 마실 녹차를 준비해 대국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이세돌 사범님과 최철한 사범님.. 두분 모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바둑판 앞에서 대기하라는 싸인은 안떨어져서.. 조명팀과 나 그리고 사범님이 대국장 한쪽에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그래도 역시 대국전이라서인지 두분 사범님은 별 말이 없으시고, 따라 웃기만 하셨다.

그래서 주로 나와 조명팀의 수다가 대국장을 채웠는데.. 너무너무 추우니 따뜻한 조명 하나만 틀어달라는 내 부탁을 조명팀은.. 들은척만척.. 혀만 날름날름거리며 약올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대국시간이 가까워오면서.. 다들 말수가 줄고.. 긴장감이 흘렀다. 두 사범님도 말없이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행여나 정신통일에 방해가 될까.. 다들 조금 떨어져서 소리를 낮췄다.

바로 그때.. 나는 이세돌 사범님이 들고온 자켓(양복 윗옷)을 발견하고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저거야~ 다들 자켓을 안입고 두셨으니.. 이사범님도 안입고 두실꺼야.. 벗어놓으시면 빌려서 입자.. (안타깝게도..) 싸이즈 비슷할 거야(흑..ㅜㅜ)’ 라는 생각에 탐욕스런(?) 눈빛을 자켓에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나의 야욕(?)이 들킨걸까? 아쉽게도 사범님은 자켓을 입고 두신단다..

대국이 시작되고.. 대부분의 관계자가 대국장 밖으로 나갔다.

아까 3국이 동시에 진행될때와는 달리.. 대국장 안이 너무 조용하고.. 휑~한 느낌..

침 한번 삼키는데도 신경이 쓰였다.

초읽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최철한 사범님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셨다. 응? 눈이 마주치자 나는 깜짝!뜨끔! (내가 뭘 잘못했나? 아까의 실수때문인지 살짝 쫄아있는 상태였다.)

최철한 사범님의 진지한 한마디..
“소리.. 크~으~게 내주세요.”

“네? 아.. 네..” ^^

집중하다보면 계시 소리가 안들릴 수 있다던데.. 최사범님의 집중력.. 으음..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크~으~게’를 강조하는 최사범님이 살짝쿵 귀여워보였다.. 헤헤헤^^

그리고 사실 집에와서 계시노트(사실은 뒤끝노트)에 한마디 적었다.

‘최철한 사범님께는 크~으~게~’ ㅋㅋㅋ

아무튼 소리를 크게 내도록 신경쓰며 계시.. 크게 내면서도 거슬리지 않도록 소리를 내다보니.. 그리고 에어컨이 너무 차갑다보니.... 헛기침 ‘음음!’ 이게 너무너무 하고싶었다.. 그러나.. 두분 사범님과 카메라기사님 두분, 방송팀 한분, 그리고 나..이렇게 여섯명밖에 없는 넓은 대국장이 너무나도 조용해서.. 차마 그럴수가 없었다.

목은 자꾸 간질간질.. 기침이 하고싶어.. 기침이 하고싶어.. >.<

이때부터 계시&관전&사범님들 눈치보기가 시작되었다. ‘둘 중 누구라도 자세를 살짝 고쳐앉을 때.. 얼른 기침을 해야지..’라는 속셈.. 헤헤헤^^ 그러나 두분 다 자세조차 고정.. 으음.. 이럴수가..

두번째 작전(?) 돌입! 돌을 ‘따악!’놓는 것과 동시에 기침하기! 사범님들의 손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가 겨우겨우 박자를(??) 맞춰서 ‘음음!’ 을 하였다..  ^^;

계시를 하면서 관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보다보면 수읽기도 하고 싶고 그런데.. 그러다보면 계시할 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이세돌-최철한.. 멋진 두 사범님의 대국을 눈앞에서 보는 행운에도 불구하고.. 바둑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하며 계시를 해야했다. (그런데 대국이 은근히 재미있어서.. 사실 빠져들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덧 배고픔도 잊고 열심히 관전&계시를 하다보니.. 형세가 조금씩 명확해지고.. 최사범님이 사석을 들어 바둑판위에 조용히 올려놓으셨다. 그때까지도 돌을 던지는건 정말 돌을 툭! 던지는거라 생각했던 나이기에.. ‘어! 최사범님이 집어야 할 바둑돌을 헤깔리신거 아냐? 이거이거 말을 해야하나?’ 라는 걱정을 했다.(아.. 이 무지함이여.. 말했으면 생방송으로 전국적인 창피를 당할뻔했다.. )

그렇게 대국이 끝나고.. 방송에는 나오지 앉았지만.. 한쪽 구석에서 방송팀이 입만 뻐끔거리며(소리는 못내고) 조용~히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이세돌 사범님의 열렬한 팬이었거나..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이게 유력하다.. 아.하.하. ^^;;)

대국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지만.. 복기를 마칠때까지 자리를 지키라는 PD님의 손짓.. 곧이어 커다란 카메라를 드신분이 가까이에 오셔서 사진을 찍으셨다.

본능적으로.. 은하도 여자이기에..  ‘이쁘게 나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이사범님의 승리에 기쁘지만.. 최사범님의 패배가 안타까워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표정이 참.. 차암~ 그때의 제 맘이 잘 드러나있다는.. ㅜㅜ)

그렇게 계시를 마치고 대국장 밖으로 나오는데.. A7의 천희창님이 급히 손을 끌고 어디론가 가셨다.

‘뭐지? 밥 왔나?’ (내 머릿속엔 뭐가 들은걸까? ㅋㅋ) 라고 생각하며 헐레벌떡 따라가서.. 어두운 복도를 지나.. 세워준 곳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에...

무대 한가운데였다. 조명은 내리쬐고..

그 아래 수많은 청주 관전객이 앉아있는 경품행사장... 의 무대위.. 에..???

옆에서 경품행사를 도우라는... 아하하^^;; 밥이 아니구나.. 오면서 행사.. 뭐라고 하셨는데.. 그냥 "예예~" 해가며 따라왔는데.. 그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신거였구나..<-바보?

행사야.. 원래 은하 전문이지요~ ^^
무거운 바둑판도 번쩍번쩍 들어 상품도 전달하고.. 번호도 뽑으며 즐겁게 행사진행을 도왔다.

이렇게 청주 바둑리그를 마무리 하고 서울로..

그런데 은하는 서울을 어떻게 왔을까요..?! 저녁은 결국 어떻게 먹었을까요..?!
(다음편에서 꽃미남(!) 사범님들과의 저녁식사 & 상경기가 이어집니다.. <- 예고)

마지막으로.. 늦은시간까지 저녁도 못먹고 수고하신 A7 관계자분들과 바둑TV분들게 박수를..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