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가을을 먼저 죽인 겨울

                                                                 저니

출근 길 바닥에 수북히 쌓인 노란 은행낙엽 두께의 코트를 입고 걷는 출근 길.

입동은 지난지 여러 날 되었지만 헐벗은 나무가지 만큼 마음이 가볍지 않는 것은

아직 내 마음은 가을을 보내지 않았는데 찾아온 겨울이 반갑지 않아서 입니다.

어릴 때면 '크리스마스이다' '방학이다'해서 겨울이여 오라 노래 부르며 기다리곤

했었는데 벌써 새로운 시간이 오는 것이 불편한 것을 보면,

신김치를 좋아하게 된 지금만큼 삭힌 시간에 애착을 갖기 때문인가 봅니다.

얼큰한 무왁저지에 대하를 넣고 입맛을 채워 가을 무의 맛을

만끽하였는데 벌써 겨울이라니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느낌입니다.

어릴 적, 우리집 최고의 반찬은 손님이 오셔야 먹을 수 있는 새우젓을 넣은

무나물과 계란 찜이 최고였는데 그나마 무조림은 여름에는 그 쌉쌀함으로

맛이 덜해서 벼를 베고 난 이후 맛이 꽉찬 가을에 달게 먹었던 기억이 남니다.

올해는 새우가 풍어라지요. 마을 장터에서 대하가 만원에 스무마리라니

예년의 삼분지 일 수준으로 선뜻 지갑에서 만원짜리가 기분좋게 나갔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댓마리를 싸우지 않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게 좋던 가을.

스산한 벤치에서 홀로 담배를 물고 있어도 그리 궁상스럽지 않게 보이던

그 가을이 떨어진 은행잎 만큼 가벼워진 겨울 하늘에 눌렸습니다.

이제 이기적이지만, 마음에서 가을을 털어야 될 것 같습니다.

죄수의 딜레마에 가을과의 혈맹을 깨고 겨울에 들러 붙어야겠지요.

아마 가을이 삐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가을 귀퉁이 삶이 좋다고 겨울 세력에 피해살 수는 없으니까요.

다시 찾아올 가을에 된통 가을앓이를 할때까지 가을은 옷장 깊숙히

잠을 잘겁니다.

                         가을 잊기

                                                                                     저니
 
집을 나서는 공기가 얼얼하다

은행나무가 늘어선 도로엔 노오란 아쉬움이 가득하다

총총 걷는 출근길의 사람들.

몰려 탄 버스 안 훈훈한 열기에 취해

난, 내릴 곳을 훌쩍 지나쳐 버렸다.

오늘 하루도 이리 시작하나 보다.

하늘에 녹지 않은 구름 한 점처럼

덤덤히 넘긴 달력은 가을을 떠나려 한다.

프로방스 앞 기억하나.

한강의 붉은 낙조와 어우러진 감청 색 산영.

마음 병풍에 곱게 넣은 화폭이

잊혀지는 시간에 환영처럼 가득할 뿐

서른 다섯 해의 다시 오지 않을 가을이 간다.

지은지 7년이 넘어 가는 시를 옛 화일서 먼지를 털듯 찾아냈습니다.

그때도 가을을 보내기엔 너무도 아쉬웠나봅니다.

이별은 또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눈물이지만,

해가 갈수록 그 눈물 끝은 아리고 그 눈물의 깊이는 깊어집니다.

가을에게도 그렇게 깊고 짠한 제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