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18, 승부수

같은 편 두 사람은 각 세 집 한 집을 이겨 모두 이겼는데 내가 7집을 황 사범에게 져서 우리 편이 지고 나는 따블로 벌금까지 내 3만원을 잃는다. 정말 치열하기 짝이 없다.

넷씩 다시 편을 갈라 두는데 내 옆의 교도소 근무하는 고 선생이 30여 호를 져 우리 편이 진다. 실력보다는 운에 좌우 되는 경우가 많다. 짜릿한 승부에 거르지 않고 들리게 되는 것일까? 내 말처럼 이 시기를 빨리 보내기 위해 잊기 위해 들리는 것일까?

지난 7월15일경 고성에서 돌아오며 향후 진로를 결정한다던 것이 그 후 또 3개월이 지났어도 근본적이 문제는 그대로인 채다. 10월17일의 공주모임에 다녀와서 결정을 할 까 싶어도 그때는 너무 늦다. 10월10일 처와 오랜 이야기 끝에 결정을 한다.

평소에는 존중하며 하지 않던 속내도 이야기하는 처에게 미안함과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다. 지난 1년의 결과가 거의 없었으니까.

2002년 이래 운영해오던 해외의료봉사단이 지난해 7월의 7기 미얀마 팀 이후 두세 번 더 나갔어야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모두 떠나지를 못했다. 분당 샘물교회의 아프간 피랍사건이 지난 8월 해결되었지만 해외봉사의 위험성이 국민의 뇌리 속에 각인되었고 가을의 미얀마 승려와 군부의 대립도 악재였다. 군부의 데모대에 대한 발포 령에 불응한 전국 고급지휘관들을 사태 후 수도 양군으로 소환한 일로 현지 진출이 불투명하였다.

올 여름 출발하려던 방글라데시는 출발 직전 부산 15명 팀의 취소로 무산되었다.

올 겨울 팀의 조직도 현재 국내외 경제여건과 환율급등 등의 악재에 쉽지 않을 텐데 이제 다른 일을 찾아보며 생계를 대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처의 말에 선뜻 답을 못한다.

바둑동호회에서 출발한 봉사단이고 바둑을 좋아하고 어려움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위해 기원에 가는 것은 이해하지만 자신은 열심히 일하다 낮에 내게 전화를 하면 항상 기원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힘이 쭉 빠진다고 처는 말한다. 바둑이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당신 마음은 안 그래도 발길이 절로 기원으로 향하나보다고.

불과 1년 사이에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급전직하한 현실과 웬만한 일과 어려움은 입에 담지도 않으며 순종하는 처가 저럴진대 물속에 빠져 切命의 위기 속에서도 나만 현실을 모르고 부인한다 생각되어 답답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려니 이해는 되지만 답답한 가슴으로 집을 나선다. 기원에 앉아 조용히 생각해봐야지 하며.

해외오지의 적막한 산중에서, 키르키즈스탄의 동양의 알프스라는 6천고지, 카자흐스탄 메데우山 3500고지, 우즈벡의 만년설이 쌓인 천산산맥의 고령에서, 히말라야의 산자락인 고산지대 소수민족마을에서 느껴보던 것과는 또 다른 지난 1년간의 망중한은 나름 기억이 깊다.

팔공산정에서 고성에서 태백에서 s의료원 바둑캠프에서 이제 공주에서 바둑을 원 없이 두었고 바둑친구 글벗들과 깊은 마음속을 나누었다.

포기는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니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배팅을 해야겠지.

지난 10년간 해 온 봉사활동을 그만두고 이제 취직을 해 생계를 도모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지만 앞으로 세 달은 마지막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며 겨울 해외봉사단을 조직하여 지난 1년의 어려움을 씻고 지난 10년간의 노력의 지속을 도모해야겠지.

이미 기울은 판을 던지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일까?

반전의 타개를 도모하는 것일까?

승부수를 던지는 것일까?

대국이 끝나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된다.

그때 그 수는 이렇게 두었어야 했는데.

오랜 세월 후에 이 일기를 다시 보면 어떻게 되어있을까?

교도소 고 선생과 대국을 유리했던 판을 종국에 대마를 잡히고 진다. 아쉽다.

평소 이기던 지던 몇 집 이내인 내 바둑인데 평상심을 잃었나보다.

마지막으로 한 판 더 박사범과 둔다. 바둑 둘 의욕이 없음을 스스로 느끼면서 판세가 평소답지 않게 어그러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속수무책을 실감한다.

이래서는 안 되지 싶어 그 순간부터 정신을 차리고 상대의 허점을 공략해 나가며 좌중앙 대마를 잡아 세 방을 이긴다. 항상 기회는 있는 법이지. 정신만 차리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