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대국4, 作家 이청 선생님

실제 작가를 지척에서 뵐 기회는 평생을 통해서도 쉽지 않았다.

대학시절 당시 대형서점이던 종로2가 종로서적에서 독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작가와의 대화” 에서 박완서 씨를 뵌 적이 있고 강좌 끝 무렵에

질문을 하라 길래 무슨 말인지 물었다가 날 세운 답변에 한국여류작가 가 그럼 그렇지 하며 실망했었던 젊은 시절의 객기만 기억에 남았었다.

저니 6단과 이작가 의 세 점 대국 복기를 뒤에서 지켜본다. 상호 접바둑의 모범적인 운석인데 조금 힘에서 밀리는 것이 느껴진다. 두터움이나 치열함을 잃거나 포기하는 순간 세의 균형은 무너지는 법인데 혼자 생각한다.

팔공산 자락 수련원에서의 둘째 날 아침은 개울에서 씻고 온 박 詩人과 일찍 일어나신 도리님, 영바모 님, 저니 님 등은 벌써 이른 대국 중이시고 한 켠으로 밀어놓은 술상 곁에선 담요 속에 주무시는 분들도 계시다.

삼계탕 집, 동화 寺, 허브 차 밭을 거쳐 이곳 수련원에서 토나멘트로 우승자를 가리고 팔공회 분들과의 친선교류, 이어지는 소주잔과 캠프파이어, 노래방, 어제 하루는 길기만 했다. 그 여운은 아직도 이 방 속에 가득한 열기로 남아있다.

바둑의 기력차이는 치석으로 상쇄되니 실력의 고하는 문제가 아니고 치석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와 배석의 두터움을 어떻게 타파하느냐의 싸움일 것이다.

어느 일요일아침 꿈의구장 에서 기성마귀가 네 점을 접고 두는 대국을 볼 기회가 있었다.

한 점 한 점을 힘차게 반상에 내리꽂는 처음 본 이는 아마5단 이상은 충분히 되어 보이는 실력은 물론 전국구로 큰 내기도 많이 해본 사람인듯하다. 아마 그 이는 누가 나를 감히 네 점을 잡고 이길 수 있으랴 하는 심정이었겠지. 그 힘찬 한 수가 백 만원 꼴 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듣고 알았다. 천 이상 잃고 갔다지.

오로 에서 이청 작가님의 글을 만난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글속에서 느껴지는 치열함과 고증을 통한 논거 등은 한 개인의 역량과 노고는 이렇게 크게 넓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사서하는 천형이라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더 많이 끄적여 본다.

이청 선생의 모든 작품을 사서 읽고 싶어지고 관련된 분들의 책까지 사 모으고 싶다.

이청 선생 著 한국바둑사 를 구하여 읽고 강00씨의 자서전 인간학교 두 권을 사다 읽었다. 선생의 글 중에 소개된 북한판 이조실록이 전세 값 수준이라 하여 처에게 예기한다. 서울은 전세가 몇 억대지만 지방은 조금 낮을 테니 억 정도일까 짐작해본다.

자기가 나중에라도 꼭 사 주겠다는 처의 말에 고마웠는데 선생을 뵙고 들어보니 1400이란다. 100질을 들여온 것이 아직도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는 말씀에 작금 인문학의 수준과 교수 대학 도서관들의 무신경을 혼자 헐뜯는다.

이청 作家님과 세 점 대국을 시작한다.

모범적인 초반 진행이지만 중반에 들수록 상대의 의도를 비틀고 난전을 불사하시는 모습은 순응이 아닌 학문적 의구심을 극대화하는 한 순간도 쉽게 가기 보다는 옳다고 생각되는 길을 가시려는 선생의 모습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와 서울에 올라가시는 길인데 시간이 어떠시냐 길래 만사 제치고 시내로 달려가 선생을 뵈었다. 네 시간의 만남은 식사와 저니 님 정이사님도 잠깐 잠깐 계셨지만 한마디 한 말씀이 배우고 기억해야 할 것뿐인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하철로 고속터미널로 같은 방향 이어 향하며 호형호제 하시자 는 선생의 말씀에 나이의 고하를 떠나 師表 삼을 이의 말씀에 민망하여 거절한다.

일행들의 아침일정이 바빠 이청 作家와의 대국은 중간에 중단한다.

師表 삼는 이와의 승패가 무엇이 중요할까?

하나도 없으며 열이 있는 척 하는 이가 있고

열이 있으되 말 않는 이가 있다.

하나씩 보여지는 그 깊이와 신뢰는 연출이 아닌 그분의 삶의 모습과 깊이 이시겠지.

목욕탕 속의 벌거벗은 모습, 팔공산정 에 어울리는 단아한 모습, 동화 寺에서 보여주시는 웅변, 곁에 있음이 기쁘고 공부이다. 모두 작별과 헤어지며 대전까지 모셔다 드리기 위해 동승한다.

선생의 말씀을 한마디 라도 더 주의 깊게 듣기 위해 고속도로의 운전은 위험해 내가 해야 하지만 처에게 운전을 부탁한 채 선생의 말씀을 경청한다.

한 말씀 한 말씀에 존경과 즐거움이 더해간다.

呼兄呼弟를 먼저 청하셨던 선생의 말씀에 기쁨과 위안을 느낀다.

내가 그리 잘못 살은 것은 아닌가 보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