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바둑

                                                             저니

우리는 인스턴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순간에 이루어지는 마술과도 같은 단어 인스턴트.

과거에 살던 사람이 현대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다면, 가장 놀랄 일 중에 하나가

물만 부어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들 꼽을지도 모릅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인스턴트 산출물에 이젠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만큼

신경을 곤두 세우던 예전의 감각은 오래 전 부터 무신경하게 마비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찬밥을 물에 말아 총각무 덥썩 입에 베어 물고  먹는 밥이 맛이 더 좋으니 

인스턴트 시대에 저는 슬로우 푸드 세대 인가 봅니다.

인스턴트 말이 나온 김에 그 반대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막상 떠오르지 않습니다.

요리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순간, 찰라라는 말에 영구, 영원 등의 말을 쓸 수가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식품이나 음료를 떠오르게 하는 말에는 우리 말로는 선뜻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인간과 인간과 똑같은 사이보그가 동시대에  살게 된다고 해도 그리 무감각하진 않을텐데...

장마 철도 아닌데 말이 샛길로 흘렀습니다.

우리가 두는 바둑 대국도 시대에 흐름에 인스턴트 대국이 생겼습니다.

바로 인터넷 대국이지요.

시간과 공간의 벽을 일시의 허물어 버린 이 인터넷 대국은 실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지혜가 모여 파생되어 복제되는 속도는 지난 100년에도 이루지 못한 폭발적인 충돌을 만들었고

그 충돌로 인해 우리 기우인은 지식과 정보의 풍성한 혜택을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버튼 하나로 만나서 지구 반대편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마우스 클릭으로 언어적 장벽을 허물고

대국을 하는가 하면, 기다니 도장이나 본인방 가문에 숨겨져 있을 법할 비수나 암수도 문제풀이에

난이도 별로 해답까지 풀이 되어 나열되어 있고 오로와 같은 바둑포탈을 통해 바둑의 소식과

기보가 시시각각 안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스턴트의 바둑.

 남자의 쾌쾌한 입냄새나 담배연기 그리고 귀를 간지럽히는 중얼거림, 날카롭게 부딛히는

신경질적인 바둑돌의 비명소리... 그 싫어하는 소리들이 전부 사라졌으니 나이스한 면도 있습니다.

탈무드에 천국에 대하여 언급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유태인과 개신교도가 서로의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개신교도가 꿈을 꾸었는데 유태인의 천국이 보이더랍니다. 가서 보니 더럽고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다시 그런 꿈 꾸고 싶지 않다고 비아냥 거리자 유태인도 자신의 꿈에 개신교의 천국을 가보니

온통 향기나는 꽃으로 덮여 있고 그렇게 멋진 낙원은 처음보았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개신교도가 미소를 지으며 끄덕거리는 모습을 본 유태인이 한마디를 덧붙여 이야기를 합니다.

" 그런데..그곳에 사람이 없더군요...."

서로의 세계가 잘나고 못나고를 따져서 신앙의 우위를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요

또 일식집의 깔끔한 초밥과  푸짐하게 담아주던 피맛골 감자탕과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인터넷 대국과 직접 두는 대국 자체를 비교하여 논하는 것 역시 무리는 있습니다.

아무리 슬로우 푸드가 좋아도 인스턴트 세계에 사는 것을 부정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도 그리운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삼촌에게 머리를 쥐어 박히며 배운 바둑. 서로의 감정을 읽으며 일희일비하던 나의 숨소리는

차가운 바둑돌에 온기를 담아 상대에게 전하던 말과 같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늘도 저는 인스턴트 커피믹스에 달아오르는 혀끝을 음미하며 탈고도 하지 않는

인스턴트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인스턴트 세계의 아웃스턴트 저니...

인스턴트 사랑

                                     저니

전철 문이 열릴 때 마다

커피 자판기 버튼 누르듯

인스턴트 연인들이 오른다.

눈빛 한 스푼, 숨결 한 스푼

머금은 입안 뜨겁게 데일까

프림녹듯 후후 젓는 대화.

말없이 떠나가는 연인들 뒤로

차갑게 식어버린 종이 컵 하나.

덩그렇게 홀로 남은 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