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1, Seven Homeless

공원 벤치에선 이른 오전인데도 두 양반이 바둑에 몰두 중이다.

추리닝차림에 조깅이나 걷기에 여념이 없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롯데월드 놀이기구 들은 이용객의 환성 탄성이 호수를 울린다.

바둑 두는 이들은 오후에 나이 지긋하신 이들이 많던데 10시경 이른 아침에 대국을 하는 이들은 아마도 약속을 미리하고 만난 호적수 들인가 보군 지레 짐작하며 다가서 구경을 한다.

세 점 바둑의 전개는 백은 상당한 수준의 고수이다.
호숫가에 아침산책을 나와선 조깅이나 걷기보다 바둑구경을 하고 있으니 나도 참 어지간한 사람 이긴 한데..
스스로도 우스워 담배를 피워 물며 반상을 유심히 살핀다.

반상의 응접은 상호 상당한 수준인듯한데
무언가 이상한 것이 느껴진다.
백을 든 이는 고수의 풍모가 느껴지는 수준 높은 바둑이긴 한데 복장이 어째 이상하다. 아침운동을 나온 사람 같지도 않고 운동복이 아닌 평상복도 아닌 스키장에서나 입을법한 소데나시 오리털조끼차림이다. 여러 날 깍지 않은듯한 수염은 젊었을 적 미남 이었을듯한 얼굴과 잘 어울리긴 하지만 곤궁함이 배어있다.

이상하다 싶으며 앞의 대국자도 유심히 살펴본다.
자신 있는 정확한 수순의 시원스런 행마이지만 뭔가가 이상하다.
짧은 팔 와이셔츠는 때가 절었고 한가히 운동을 나왔거나 시간을 보내러 출근복 차림에 들린 이의 모습도 아니다.

바둑들은 잘 두는데 두 사람 다 참 이상하기도 하군!

벌써 주변엔 여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관전을 한다.
불쑥 나타난 단발머리의 퉁퉁한 여인은 인사나 말 한마디 없이 대국자들 앞의 벤치에 앉는다. 아는 사이인 듯 한데 셋 다 인사나 말 한마디 없다..

이곳 저곳에선 자리를 펴고 바둑을 두기 시작한다.
죽 둘러봐도 수준급의 바둑은 없다. 동네10급도 안 되는 이들만 있는 듯.

아까 관전하던 바둑의 백을 두던 이가 일어서 구경을 하고 있길래 다가서 묻는다.

"기력이 얼마나 되세요?"
"조금 둡니다~"
"한 수 배울 수 있을까요?"
"식사하러 가야 되서."


그냥 가긴 아쉬워 얼마 전 꿈의구장 에서 4점 접바둑에서 6집을 졌던 바둑을 판만 놓인 벤치에서 혼자 복기해보는데 점잖은 풍모의 노인이 3~4급 두신다며 청한다.
두점 접바둑을 두어보니 판이 안 된다.
세 점을 놓아도 마찬가지이고 노인은 장고에 몰입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아까 식사를 한다며 거절 햇던 양반은 이제사 떠나는 중이다.

어디선가 더 4명의 홈리스 가 와서 모두 일곱이다.두 명은 먼저 떠난다.
"가락동 복지관 가보셨지요"
"녜"
"먼저 가세요"
어느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은 복지관들이 아마 무료급식을 시작하는 시간이겠지.
"아 저 여자분도 데리고 가세요~"
능숙한 지휘자마냥 고수 홈리스 는 젊은 홈리스 들을 지시한다.
바둑이 고수여서 매끄러운 솜씨로 홈리스 중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가?
"대형 마트들에 가면 샘플들을 많이 주니까 그걸 쓰면 되요"
정보교환을 나누며 어디선가 얻어온 삶은 밤들을 나누는 그들.
나머지 넷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떠난다.

역시 고수답게 거짓말은 아니었군.
바둑 두기 싫어 피하려고 식사 가야 한다 한 것이 아니었군..

노인은 세 점에도 거의 만방이다.
6점 이상은 놓아야 할 것 같은데.. 일어선다.
노천공원에서의 바둑도 한번 두어봤으니 원은 풀었고.

미국에 이민 가서 살던 시절 홈리스 들을 많이 보았었는데..
누구나 순식간에 전락하여 홈리스 가 될 수도 잇는 것인데..
도처의 고수들과 대국을 해보다 홈리스 고수 와도 대국을 할뻔한 것이 못해본 것이 다소 아쉽다.

그의 바둑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했는데..

그 옛날 헝그리 권투 라는 말은 있었었지만.(끝)

바둑일기 목록:
1)김수영 사범님을 애도하며
2)모교교정에서
3)불우한 고수!
4)바둑 病
5)虛와 實!
6)청년들의 나라!
7)바둑선생
8)오리걸음
9)평생지기 05/7/1
10)꿈의 구장 05/7/29

11)Seven Homeless 05/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