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과 남쪽을 찾아보려면 집을 지나쳐야했다. 

지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중에 손 전화가 울렸다. 

딸애가 건 거였다. “엄마, 집에 들어왔어.” “그래? 휴, 다행이다.” 

안도감과 함께 허탈감이 온 몸을 감쌌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집중적으로 질문이 쏟아졌다.

 “어디를 갔다 왔느냐, 저녁은 먹었느냐?” 

아내는 동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고 하였다. 

저녁은 먹지 않고 쌈밥집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왔다고 하였다.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을까? 

워낙 둘러대는데 선수인 아내가 아닌가? 

아내의 손에는 고급 비누 하나가 들려있었다. 

어디에서 얻었는지 잘 대답을 하지 못했다. 

퍼뜩 영태의 뇌리에 오늘 아내에게 용돈을 준 사실이 기억났다.

영태의 지갑에서 5만 원 권 한 장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집에서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었다. 

치매를 앓게 되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영태는 아내를 의심했다. 

아내를 다그친 결과 아내가 숨겨둔 돈을 찾아내었다. 

그 일 이후로 영태는 자기가 받는 매월의 용돈에서 아내에게 5만원을 용돈으로 주기 시작했다. 용돈을 주면 지갑에는 손을 대지 않겠지.

오늘 낮에 분명히 아내에게 5만원을 주었으니 그 돈의 행방이 관건이었다. 

그 돈으로 아내가 어디에선가 저녁을 사 먹었거나 아니면 고급비누를 샀거나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저녁을 먹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꾐에 빠져서 싸구려 비누를 비싼 값에 샀다면 그건 그냥 둘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영태와 딸애의 생각이었다.

아내는 낮에 받은 5만원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어디에 두었는가? 

아내가 여기 두었다고 말하며 서랍을 열어보았다. 돈이 나오지가 않았다. 

“어? 여기에 분명히 두었었는데 어디로간거지?” 

아내가 여기 저기 찾아보았지만 돈은 보이지 않았다.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되었다. 

모든 서랍들, 걸어놓은 옷들의 모든 주머니와 솔기들, 쌓아둔 짐들 속.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돈이 발견되지 않았다. 

돈을 찾으면서 영태는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찾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에 딸애의 커피가 한 통 없어진 사실이 들어났다. 

딸애는 늘 커피 통을 짝수개로 맞추어 놓는데 통이 홀수 개가 남아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범인은 아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영태와 딸의 결론이었다. 

그 동안 커피뿐만이 아니고 귤이나 과자 같은 것을 숨겼다가 들킨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 때에도 대대적인 수색이 이루어졌었다. 

부피가 큰 커피 통이니 돈 보다는 찾기가 훨씬 쉬운데도 커피는 나오지가 않았다. 

영태는 커피를 찾으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이 까짓 커피를 꼭 찾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고 에이 짜증나는데 그냥 집에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릴까? 하는 잔인한 생각도 들었다.

영태는 늘 자기 마음에 악마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중이다. 

어릴 적에도 어머니께 잔소리를 들으면 초가집에 불을 지르거나, 어린 동생과 같이 길을 걸을 때 동생이 칭칭 울어대면 에이, 저 놈을 길 옆 낭떠러지로 확 밀어버릴까 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던 것이다. 

물론 한 번도 그런 끔찍한 일을 시행한 적은 없었다. 

그 점을 늘 영태는 하느님께 감사히 여기고 있다. ‘제발 평안히 일생을 마치게 해 주소서!’

커피를 찼던 중 영태의 머릿속에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났다. 

정기 소독을 하는 날이었다. 

늘 늦잠을 자는 아내가 그 날은 웬일인지 일찍 일어나서 아주머니가 소독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독이 다 끝난 다음에 아내는 커피를 한 통 가져다가 수고했다면서 아주머니에게 드렸다. 아! 그것이 왜 이제야 생각이 나노? 나도 늙어서 건망증이 걸린 것이 틀림없다. 

에이 이놈아.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자책을 했다. 

커피 건은 그렇게 해결이 되었다. 

그날 밤에 영태는 집안에 있는 모든 가스라이터를 밖에 내다 버렸다.

돈을 찾다가 지친 영태는 방향을 바꾸어 우선 쌈밥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거기에서 저녁을 사먹었다면 돈은 찾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냉면 집을 지나치면서 아내는 여기에서 저녁을 사 먹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사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네의 동쪽 끝에 있는 쌈밥집까지 가는 동안에도 음식점은 많았다. 

아까 지나친 냉면집, 칼국수 집, 중국집, 주꾸미 집, 족발 집 등등.

쌈밥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인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영태는 신발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우선 물었다. 

“여기에서 아내가 오늘 저녁을 먹었나요?” 

주인아주머니는 취조와도 같은 의외의 질문에 당황한 듯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영태는 대답하는 아주머니의 태도를 보고는 즉각 단정을 해버렸다. 

‘음, 오늘 저녁에 아내는 이 식당에 오지도 않은 것이 분명하다.’ 

 “예, 잘 알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영태와 아내는 바로 식당 문을 닫고 나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갖가지 상념이 영태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내가 쌈밥집에는 들르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데 도대체 아내는 어디를 돌아다닌 건가? 

그리고 그 화장품은 어디에서 구한건가?

집에 돌아오니 딸애가 돈을 찾았다고 하였다. 

돈을 찾았으니 아내가 저녁을 사먹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 비누는 어디에서 구한 것인가? 

 돈을 주고 샀을 리는 만무하니 누군가에게 얻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서 슬쩍? 절대로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영태 아내는 집안에서는 돈이나 여러 가지 물건을 훔쳐서 숨겨왔으나 집 밖에서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만약 남의 비누를 허가 없이 가져왔다면 이건 아내의 병증이 그만큼 심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비누를 어떻게 구했는지가 영태와 딸에게는 아주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딸애와 영태가 다그치자 아내는 그 비누를 쌈밥집에서 얻었다고 하였다. 

쌈밥집이라니? 영태가 보기에 쌈밥집 아주머니의 표정은 분명히 영태의 아내가 그 집에 들르지도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영태의 입에서 호통이 쏟아졌다. “거짓말 하지 마.” 

영태는 쌈밥집을 찾아갔을 때의 광경을 딸애에게 설명하였다. 

딸애도 제 엄마에게 거짓말 하지 말라고 덩달아 호통을 쳐댔다. 

집안에서 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아내인지라 당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아내는 억울한지 계속 주절거렸다. 

“쌈밥집 아주머니 정말 이상하네? 나는 분명히 그 집에서 비누를 얻었는데.”

끝없는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결국 영태는 다시 쌈밥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내의 손을 잡아끌고 쌈밥집으로 향했다. 

쌈밥집에만 가면 시시비비가 확실히 밝혀질 것이었다. 

그러나 쌈밥집에 다다른 영태는 실망을 하고 말았다. 

쌈밥집은 불이 꺼지고 문이 잠겨있었다. 

정말로 답답한 마음이었다. 

의혹을 품은채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어쩌랴! 그냥 하룻밤을 참고 지낼 수 밖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