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속이 좋지 않았다. 더부룩하였다. 

운기조식을 하여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러마라고 대답을 하고는 계속 운기를 조절하였다. 

다행히 식당에 다다랐을 때에는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어있었다. 

아내는 순댓국을 싫어하므로 황태해장국을 시켰고, 나와 딸애는 순댓국을 시켰다. 

음식을 아주 조심스레 먹었다. 

절대 과식을 하지 않도록 조금씩 먹었다. 

컨디션이 좋을 때라면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술 생각도 하련마는 몸이 좋지 않으니 밥은 반 그릇만 먹고 술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는 저녁에도 집에서 아주 조심하면서 밥을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나는 몸 조심을 해야 한다. 

다음 주에는 일주일 내내 술을 먹을 일이 있다. 

화 수 목은 정기 모임으로 술을 당연히 마셔야하며 월요일과 금요일에도 딸애가 나간다고 했으므로 그 날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신다? 과연 내가 버텨낼 수가 있을까? 하여튼 조심할 수밖에.

저녁까지 조심스럽게 먹은 관계로 몸 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바둑을 두려다가 그 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한다고 딸애가 말해서 얼른 컴퓨터를 껐다. 기안팔사와 빠니보똘은 언제 봐도 재미가 있다.

TV를 보고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양치질을 하고는 완전하지 않은 컨디션을 감안하여 오랜만에 좌선을 하였다. 

전에 팔괘장을 배울 때 익혔고, 기천에서도 배운 기법이었다. 

호흡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편안하게 정신과 육체를 이완시키는 방법이다. 

가끔씩 실천하면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경험을 하였었다. 

좌선덕분인지 힘들지 않게 잠이 들었다.

전날 꿈 상태에 따라 몸 상태가 좌우되는 법인데 꿈의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다. 

물론 개꿈이겠지만 꿈의 내용을 살펴보면 시원하게 흐르는 물과 무시무시하게 돌아가던 공장의 기계들, 버스를 탔는데 그것이 자율주행차로 바뀌면서 또 황소가 끄는 마차로 바뀌었는데 황소들이 마구 날뛰는 순간 아, 마차에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친구들은 벌써 모두들 내려버렸다는 사실. 

황소들은 자기들끼리 마구 싸우고, 아. 재미있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잘 기억이 안 나는구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 상태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마의 일주일이 시작되는 셈이었다. 

자제력만 따진다면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고 화 수 목에는 조금씩만 마시고 금요일에도 마시지 않는다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아, 그런데 오늘 아침 컨디션이 이렇게 좋으니.

딸애가 점심값을 주었다. 

바둑을 한 판 가볍게 이기고, 아니 졌었나? 까짓 거 이기고 지고가 무슨 상관인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이기고 지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지고서도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다.) 기분 좋게 컴퓨터를 껐다.

벌써부터 재촉하는 아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자장면을 먹기로 했다. 

B 음식점을 찾았다. B 음식점의 이과두주는 맛이 없는 축에 속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C, D 음식점의 이과두주가 맛이 괜찮은 편이다. 

겉으로 보면 똑 같은 북경이과두주인데 어째서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 

이 집의 이과두주가 맛이 없는 것을 아는 나는 이번에는 이과두주 대신에 고량주를 시켰다. 

요즈음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무인 곽원갑’에서 어제 그들이 맛있는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던 나는 고량주라면 그들이 마셨던 그 기분을 만끽할 것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아, 그러나 고량주를 한 잔 마신 순간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맛이 좋은 술은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며 구수한 누룩냄새가 나는 법인데 이건 마신 순간에 역한 냄새가 입안에 퍼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술에 조예가 깊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는 북경고량주라고 쓰여 있었다. 

똑 같이 북경이과두주. 북경고량주라고 쓰여 있는데 어째서 술 맛이 다른 것일까?

이제는 이 집에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했다. 

굿 바이. 

내가 좁은 소견을 부린지도 모르겠다. 

전에 그 유명한 마오타이 주를 마셨을 때도 역한 기분을 느꼈었으니까.

어쨌든 술을 반만 마시고는 그냥 나두고 음식점을 나왔다.

마신 술을 깨기 위하여 뒷동산 꼭대기 까지 올라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려고 했지만 아내가 중간까지만 오르자고 해서 중간의 축구장까지만 올라가서 그곳의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셨다.

일주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