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는 도중에 무언가 조그만 쇠뭉치가 윗니에서 빠지는 것을 느꼈다. 

삼키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한참이나 계속된 드르륵 소리. 

드르륵 소리를 듣는 중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입안에서 쏘아대는 물줄기가 코로 넘어간 것이 느껴졌다. 

의사선생임이 말했다. 

“물이 넘어갔나요?” “음음음(예, 그런것 같습니다.)” 드르륵 소리가 멈추고 다시 사진을 찍으려고 일어나면서 또 쇠뭉치가 빠졌다. 

의사선생님은 포기를 선언했다. 

 가운데 것은 도저히 임플란트를 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맨 끝 것도 뼈가 부족해서 뼈 이식을 해 놓았으니 한 참을 기다려야한다고 말했다. 

결국 수술은 절반만 성공한 셈이었다. 

아침에 신문에서 본 오늘의 운세에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 라고 나와 있더니 역시 병만이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결국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한 것이었다.

또 다시 죽을 먹었다. 

이번에도 아내가 뺏어먹으려고 하여서 절반을 덜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 앞에 섰더니 코피가 나왔다. 

의사가 걱정한 비강천공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걱정이 앞섰다. 

코피라니. 어릴 때 친구들하고 싸웠을 때 코피가 나면 지는 것이었다. 

기운이 쏙 빠졌다. 

휴지로 코를 틀어막았다. 이거 이러다가 이비인후과에 가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소독을 하러 치과에 가기 전에 딸애와 아내가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 

병만은 농담 한 마디를 던졌다. 

“야, 돗자리 싸들고 치과로 가자. 가서 바닥에 누워서 농성을 하는 거다.” 

농담을 던지고는 바로 치과로 향했다.

코피 이야기를 하자 의사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코 점막을 건드렸기 때문에 코피는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거란다. 

그리고 뚫린 뼈는 바로 붙을 것이고, 잇몸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잘 아물 거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었다. 과연 그날 이후로 코피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8년 전 아내가 쓰러지기 전에 병만의 몸무게는 55킬로그램을 넘나들었다. 

그 때는 혈색도 좋고 기운이 넘쳐흘렀었다. 

그러나 아내가 쓰러진 후부터 병만의 몸무게는 조금씩 빠져나갔다.

아내는 지방의 노래방에서 쓰러졌다. 

머리가 아프다며 구토까지 하였다. 

술은 조금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아내는 원래 술을 조금도 못 마신다. 

119를 불러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뇌동맥류파열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환자 중에서 삼분의 일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또 다른 삼분의 일은 병원에 가거나 치료 받는 중에 사망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만 살아난다는 무서운 병이었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여서 가까운 다른 지방의 큰 병원으로 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밤길을 구급차는 달리고 또 달렸다. 

큰 걱정이 앞섰다. 우선은 아내가 살아나야만했다. 

그런데 살아난다고 해도 전처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가정사는 아내가 그동안 책임을 쳐 왔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가정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가?

오랜 시간의 수술 끝에 아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루에 두 번만 면회가 허용되었다. 

병만이와 딸애는 병원 근처의 모텔에 방을 얻어놓고 아내의 간병을 시작했다. 

만사 절약하며 비용을 아꼈다. 

5층의 모텔 방에서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이 아주 근사하였다. 

계절은 한층 가을이 빛을 발하는 10월 중순이었다.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는데도 가을 풍경은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에는 병원주변을 돌아다니는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무척 부러웠다. 

아내도 저렇게 휠체어에 태워서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바라보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병원 주변의 가로에는 빨갛고 노란 단풍잎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쌓여가고 있었다.

두 달간 중환자실에 있던 아내는 일반병실로 나오게 되었다. 

이제는 재활치료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재활을 잘 하면 어느 정도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기대에 찬 첫 재활치료는 간단히 무산되었다. 

 치료를 위하여 지하에 있는 치료실로 이동하는 도중 여러 복도를 도는 데에 어지럼증을 느낀 아내가 계속 토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병원에서의 재활치료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일반병실로 옮긴지 일주일 후에 아내를 집이 있는 서울로 옮겼다. 

큰 병원은 자리가 나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고, 이쪽 병원에서 소개해주는 작은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도 아내는 계속 토를 해댔고 병원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토를 하였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재활치료는 계속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딸애와 병만은 간병인이 하는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고 배웠다. 

이 병원까지만 간병인을 채용하고 다음 병원부터는 그냥 자기들이 간병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에 큰 병원에서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를 구급차에 태우고 큰 병원으로 갔다. 

전의 병원은 8인실 이었는데 여기는 4인실이었다. 

병실이 아주 쾌적하고 마음에 들었다.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아주 훌륭하였다. 

고즈넉한 대학 건물 곳곳에 커다란 교목이 곳곳에 서 있었다.

본격적으로 아내의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정상인으로 발 돋음 하는 그 과정이 드디어 제대로 시작된 것이었다. 

결과를 미리 말한다면 병만의 아내는 이 병원에 누워서 들어왔지만 나갈 때에는 걸어서 나가게 된다.

병만이는 사고를 쳤다. 

사고의 전말은 이렇다. 

아주 가까운 친지 형님 내외가 병원에 문병을 오셨다. 

그 때 병만은 무슨 일로 병실에 없었다. 

딸애가 혼자서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지인 형님은 앞의 빈자리에 앉으셨다. 그

것을 딸애가 트집 잡았다. 

“거기는 앞자리 환자의 보호자 자리예요. 앉으시면 안돼요.” 

“무얼? 빈자리인데 그냥 앉아도 되는 거지.” 

옥신각신하던 둘은 언성을 높였고, 화가 난 형수님 내외는 병실을 떠나셨다. 

뒤늦게 병실에 와서 사건의 전말을 들은 병만은 기가 막히었다. 

그런 사소한 일로 그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는(형님과 병만은 술로 무척 친하였고, 딸애는 이점을 전부터 내내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형님 내외를 내쳐버리다니. 

병만은 딸애를 꾸중하는 것은 다음 일이고 먼저 형님에게 사과를 드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