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기는 용장성의 왼쪽 편을 주의 깊게 살피고 다녔다.
성문의 재질이라든가 위치, 병사들의 인원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기억하였다.
집에 와서는 머릿속의 기억을 더듬어 지도를 제작하였다.
며칠 전에 강화에서 육지로 탈출하였던 친구가 몰래 섬에 들어왔다.
이 친구가 여몽연합군의 명령이라며 용장성 왼편의 정탐을 부탁하였다.
강화도에서 문관 일을 보다가 이곳 진도로 잡혀 와서도 삼별초 군의 문관 일을 맡아하는 김철기는 이곳의 거친 음식과 잠자리가 싫었다.
개경의 기름진 음식과 안락한 생활이 그리웠다.
어서 빨리 여몽연합군이 진도를 점령하여 개경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도를 완성하여 친구에게 주었다.
친구는 캄캄한 밤에 바다로 빠져나가 울돌목의 세찬물결을 타고 건너편 삼견원으로 건너갔다.

삼별초군에게 연전연패한 여몽연합군은 이를 갈았다.
삼별초군을 무찌르려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무능한 아해를 파면하여 몽골로 송환하고 대신 흔도와 홍다구 장군을 투입하였다.
여몽연합군은 무수한 첩자를 진도에 잠입시켜 군사정보를 빼내었다.
이를 바탕으로 진도공격의 준비를 시작하였다.
군사들의 인원도 대폭 늘리었다.
고려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 둔전병 6천을 증원하고 고려에서는 경군과 충청, 경상도의 장정들을 징집하고 백정과 천민들까지도 동원하여 이들을 철저히 훈련시켰다.
또한 최신 무기인 철포도 준비하였다.

결전의 날 1971년 5월 15일 여몽연합군은 군사를 중군, 좌군, 우군으로 나누었다.
우선 김방경 장군과 흔도의 중군이 벽파정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삼별초군은 벽파정 방비를 준비하였다.
연전연승하던 삼별초군은 여몽연합군을 깔보고 있었다.
그 동안 무수히 공격을 받았지만 모두 쉽게 물리치었다.
그저 별다른 준비 없이 전투에 임하였다.
대부분의 군사가 벽파정으로 동원되었다.

중군이 벽파정으로 향하는 동안 영령공의 두 아들 희와 옹 그리고 홍다구가 지휘하는 여몽연합군의 좌군은 방비가 허술한 장항을 기습 점령하였다.
장항을 점령한 좌군은 용장성의 좌측으로 치고 올라가 성문을 철포로 파괴하고 성안 곳곳의 요소에 철포를 이용하여 불을 질렀다.
한편 대장군 김석만 등이 지휘하는 우군은 군직기미를 기습점령하고 용장성의 우측으로 올라왔다.
용장성에서 합쳐진 여몽연합군의 좌 우군은 몽골군의 장기인 밀집대형으로 삼별초군을 공격하였다.
천하무적인 삼별초군이었지만 예상 못한 적의 기습과 화약무기에 혼을 빼앗긴데다가 적의 밀집공격이 가해지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왕온 부자와 배중손 장군이 참살 당하였다.
벽파정에서 적을 막아내던 삼별초의 주력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김통정 장군의 지휘아래 선착장으로 내려가 병선에 올랐다.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목의 요소에서 이원배가 결사대 50명과 함께 남아 여몽연합군을 막았다.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는 여몽연합군에 맛서 분전하던 결사대는 화살과 창, 칼에 한두 명씩 희생되어갔다.
결국 이원배를 포함한 결사대 50명은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틈을 타서 김통정 장군이 이끄는 대부분의 주력군은 무사히 선착장을 빠져나가 여몽연합군이 추격할 수 없는 거리까지 떠나갔다.
탐라로 도주하는 삼별초군의 눈에 처참하게 화살과 창, 칼을 맞고 죽어간 결사대의 모습과 불타고 있는 용장성의 궁궐과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기는 남해도에서 진도군의 참패소식을 들었다.
가슴에 철렁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원배 형은 어떻게 되셨을까? 제발 무사하셔야할 텐데.”

유존혁 장군은 탐라의 삼별초군을 구원하기 위하여 남해도의 모둔 물자와 인원을 80여척의 병선에 싣고 탐라로 향했다.
탐라로 향하는 배위에서 순기는 이원배의 안녕을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