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石(3)

선비만석

  서로의 한 수가 반상에 떨어질 때 마다 흑백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한데 이외였다. 대머리가 삼연성을 들고 나왔다. 수제자는 대머리의 삼연성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지만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두텁게 두어올 것이다. 대머리의 평소 기풍으로 봐서 자신의 기풍을 최대로 살리려 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어진다. 굳힐 것이냐 걸칠 것이냐 초반 포석부터 쉬운 결정이 아니다. 수제자가 우하 귀 소목을 날일자로 굳히면  대머리는 반드시 갈라 칠 것이다. 하지만 변칙을 둘 수는 없다. 초반 포석은 상대방의 심리적인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제자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면서 소목을 날일자로 굳혔다. 실리로 가기로 작정한 이상 철저히 실리 위주의 반면운영을 할 각오로 임했다. 대머리는 삼연성을 두고서 수제자의 눈치를 살폈다. 수제자의 착 점이 길어진다. 오로바둑은 인터넷 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두어지니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다. 다만 상대방의 착 점 시간이 길어지면 장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 일분여의 가까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수제자의 착 점이 떨어진다. 스피커를 통해서 “따악” 하는 둔탁한 마찰음이 대머리의 귀를 울린다. 화면을 보니 우하 귀 소목을 날일자로 굳힌다. 수제자는 대머리가 예상한 대로 실리로 반면을 꾸릴 태세이다.

  대머리는 곧 바로 우변 화점에 갈라 치고 들어갔다. 세력을 두텁게 하려면 거의 바둑돌이 삼선으로 놓이게 마련이다. 이번에는 수제자도 곧 바로 응수를 하였다. 우상 귀 소목을 또 날일자로 굳힌다. 이제 수제자는 반드시 대머리의 삼연성 귀를 파러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한가하게 귀를 굳히는 따위의 수를 두는 것은 대머리의 기풍에 맞지 않는다. 대머리는 수제자의 착 점이 놓이기가 무섭게 우하변의 화점에 넓게 벌린다. 수제자가 귀를 파러 들어오면 귀는 내줄 심산이다. 수제자가 착 점을 하지 않는다.  또 장고인가? 수제자의 시간을 이미 2분정도 소요 되었으나 대머리는 겨우 10초만 지나갔다.

  대머리는 그때서야 자신이 흥분하고 있음을 느꼈다. 마음을 진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신혼 첫날밤의 서투른 신랑처럼 잔뜩 흥분한 그와는 달리 수제자는 침착하게 바둑을 두는 것 같았다. 오로에서 많은 대국을 치룬 수제자가 어쩌면 오로는 홈그라운드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삼십초 정도가 지나갈 무렵 수제자의 다섯 번째 착 점이 떨어진다. 우하 변 갈라 침에 대해 다가올 줄 알았으나 이외로 수제자는 상변 화점에 착 점을 한다. 실리와 세력을 균형 있게 쓰려는 것인가? 이렇게 되면 우변 갈라 침에 대해 무언가 보강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우변을 보강하면 다음 수제자의 착 점은 반드시 대머리의 두화점 중에 한곳의 삼삼에 침입을 할 것이다. 초반부터 선수로 귀를 내주게 된다면 바둑의 주도권을 수제자에게 내주게 된다. 대머리는 갑자기 머리로부터 짜릿한 전율이 등을 타고 내리는 것을 느꼈다. 오르가슴 같은 그런 느낌의 이 전율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