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둑에 관한 얘기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비이락격으로 전글의 댓글들 중에서

종교나 정치, 쓸데없는 일상사에 대한 글만을 쓴다는 말을 듣고 쓰는 것 같아 좀 찜찜합니다만..

제가 石佛 또는 神算 이창호 9단을 처음 본 것이 아마 1980년대 종반으로 생각됩니다.

그 시절에 가끔 국제 대국이 한국에서 열렸고 소공동 롯데호텔이 주된 대국 장소였습니다.

제 직장이 근처에 있어서 롯데 호텔에서 열리는 국제 대국은 거의 가서 보았습니다.

어떤 국제 대국이 벌어지던 그 날도..점심 먹자 마자 바로 롯데 호텔 2층 공개 해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제 자리는 주로 중계 카메라 바로 옆입니다.. 

혹시나 중계 카메라에 얼굴이 찍히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자..

대국이 종반전에 접어들 즈음..화장실에 가기 위해 해설장을 나와서 일을 보고 난 후에

해설장으로 돌아가려다.. 검토실로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검토실로 갔습니다.

검토실은 프로기사나 관계자들만이 있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토실에 들어서니 다행히 아무도 저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프로 기사들이

열심히 검토를 하는 현장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노장들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쟁쟁한 프로 기사들을 직접 보니 기분이 좋더군요.

윤기현 9단인지..정확하지는 않지만 중년의 프로가 근처에 서 있던 어떤 소년에게 가까이

오라면서 대국에 대한 의견을 묻는 듯 하였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이창호 프로였습니다.

그 때의 石佛과 나는 검토용 바둑판이 있는 테이블을 마주 보는 위치였는데..거리는 약 1미터

조금 넘거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石佛 소년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말 소리가 너무 적어서 제 귀에는 잘 안들렸습니다.

입술 움직임도 너무 작고.. 수줍어 속삭이는 듯 하게 말을 하는데 ..안 들리는 나는 너무 답답해

石佛 옆으로 갔습니다. 한 30센치미터쯤 거리까지 밖에는 접근을 못하였습니다..

石佛 주위를 몇사람이 에워싸듯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石佛의 말 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더군요. 말도 길게 안하고 조그만 소리로 몇 마디만 하고는 끝..

또 누가 뭐라고 물으면 간단하게 말하고는 끝.. 간간히 손으로 바둑판의 돌들을 가르키는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여드름난 통통한 얼굴의 소년의 말 한마디와 손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는 모습이.. 내가 처음 石佛 이창호 9단을 보았을 때의 장면들입니다.

처음 본 이창호 9단의 모습에서 느낀 감상을 다음과 같이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神算이란 별칭이 그 때는 이창호 프로에게 없던 시절이라서.. 초기 石佛이란 표현을 합니다.

  初見石佛   謙讓之者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네요)

어린 소년이지만 겸손함과 깊은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말 솜씨는 많이 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여전히 많은 말은 안하는 스타일은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아마 이세돌 9단이라면 발랄,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의견을

거리낌없이 말하지는 않았을까.. 그냥 나름대로 추측해 봅니다.

훗날 세계 최강자가 될 줄 알았으면.. 그 때 소년 이창호에게 싸인이라도 받아두는건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