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86, 모교 체육대회

중부지방을 시작으로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오늘 따라 딱 맞는다.

아침 일찍 처와 운동복차림으로 집을 나서려는데 비는 쏟아진다. 시끄므리한 하늘은

종일 비가 멈추지 않을 듯이 보인다.

매년 5월 모교교정의 체육대회는 졸업 후 25년째 기수가 주관이 되고 15년째 기수가 보조로 제일 큰 행사이다. 57기 주관이니 46세 이면 사회의 주역들로 한창때 이다. 동문들과 가족 등 기 천명이 모이는 적지 않은 행사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오랜 준비기간을 필요로 한다. 비가오니 그만둘까 싶어도 오늘행사에 가려 딸이 사준 운동화까지 갖춘 처와 길을 나선다.

운동장엔 이미 수많은 준비요원들이 분주하지만 빗속에 썰렁함은 본부석 축대 옆에 커다란 플래카드의 상품협찬 동문들의 명단만 외롭다. 정몽준 34회 일금 얼마, 저분이 그렇게 나이가 많았나 나보다 15년 선배이면 69세인데 정치를 하시느라 젊어 보이셨나 보다. 슈퍼쥬니어 인지 젊은 가수들을 보내주던 기획사 대표라는 옛날 가수 이수만 선배는 올해는 행사 공연 지원만 하신다고 쓰여있다.

실내체육관으로 옮긴 개회사에서 동창회장, 모교교장 등 수많은 인사들이 오래 연설을 하시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한 분이 말씀하신다. 지난 국회에는 열 네 분의 당선자가 있었는데 이번 기는 10분이고 49회 동기 처 한 분이 비례대표란다. K고 약 15분 인지 제외하면 두 번째인데 앞으로도 많은 동문들이 관심과 도전을 바란다는 말로 끝맺는다.

티브이에서 보던 국회의 모습은 멱살잡이에 뒤바뀌기 일색 이어 관심도 없었지만 저렇게 모교 연단에서 자신을 되 돌아볼 기회를 갖기 위해 달려온 것일까 싶다.

지난 몇 년간은 테니스대회처럼 바둑대회도 포함시켜 기 백 명이 가족과 같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는데 작년부턴 바둑대회가 빠졌다. 내려갈수록 젊은 회장단에서 바둑을 모르고 굳이 하려고 하질 않는다. 작년 초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내가 나서지 않았던 점이 후회가 된다. 내년부턴 꼭 다시 바둑대회를 포함시키게 사전에 준비를 하여야겠다.

총 동문회에서 가장 큰 단체들이 산우회와 골프회 기우회 인데 테니스만큼도 입김을 내지 못했던 것은 기우회 지도부의 내부 문제이다. 김승준 프로와 강승희, 스베틀라나 등을 초대하여 자녀 다면기 등으로 아이들과 엄마들까지 모두 환호했던 기우회의 오늘의 모습은 부끄러울 뿐이다. 바둑교실을 다닌 어린이 들이 많아서인지 다면기 사전 신청자가 많아 놀랐던 기억이 안타깝다. 일 이백 만원의 예산이면 충분히 진행했는데.

바둑대회장으로 쓰이던 꾀꼬리 동산 옆의 잘 지어진 동창회관건물에 둘러본다. 창가 한 쪽으로 산우회의 해외등정 사진들이 죽 진열되어있고 39회 이상의 선배들을 위한 식사가 준비되어 바비큐파티이다. 예순 네 살이면 특별대접을 받으니 환갑을 지난 나이라는 배려일까? 나는 10년 남았군. 밥을 공짜로 먹지 못 하더라도 그 때가 오지 않았으면 싶다. 무료급식 예산의 몇 분의 일만 투자하거나 기우회 자체경비로 추진해도 바둑대회 진행은 문제가 없는데 바둑을 모르는 57기 회장단에 전통이라는 설득과 압력, 이해를 미리 구하지 못한 것이 다시 후회가 된다.

비가 그치지 않는 스산한 날씨에 썰렁한 기분으로 곳곳의 파라솔에서 무료로 주는 생맥주도 손님이 별로 없다. 파파존스 피자의 대형 트레일러 에서 직접 구워 나눠주는 피자에만 긴 행렬이 서 있다. 동기들과 도시락으로 식사를 마치곤 술 생각도 별로 없어 바둑대회를 하던 회관에서 생맥주피처를 처와 마신다.

뜻하지 않게 5년 후배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들어서 반갑게 합석을 한다. s사의 재정부장이다가 얼마 전 외국계 금융사로 옮겼다는 후배는 묻지도 않는데 죽 진열된 사진들을 가리키며 일본의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어느 높은 산의 동문들 등정모습이라고 알려준다.

산우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었나 보다.

후배는 바둑대회에도 항상 열심히 참가하여 올 초 서초동의 연례 대회에도 참가했었다.

모교대회에는 항상 아들을 데리고 왔었는데 오늘은 바둑 두는 장관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일찍 돌아와 피곤에 지쳐 잠든 처의 모습을 보며 살그머니 일어나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든 채 꿈의구장 으로 향한다.

일요일 이어 왁자지껄한 기원은 내 마음속의 무엇을 꿈틀거리게 한다.

나의 모든 것은 바둑과 연결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