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을 되짚어보기를 가끔 혹은 자주 아니면 영영 건성으로 하지 않는 이도 있는데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기도 힘들지만 무의미하지도 않다

복기로 긍정적인 면은 위로와 자신감을 얻고 실수는 원인과 과정을 알게 되니

반복을 줄이며 추후 상황에 따라 위기에 반영할 수도 있어 자신도 모르게 내공이 된다.

부정적인 것은 반성의 준비가 없거나 경지에 이르면 되새김이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이고

다음의 경우에 그것이 능력저하를 부르니 차라리 빨리 잊는 게 좋다

이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알고 하는 이의 안목과 결과를 보고서야 아는 이의 경솔함의 차인데

집착과 아집 편견 그리고 겸손과 무심함에 병사들은 사석과 폐석 요석을 오간다.

깨달지는 못했지만 나름 자각하였다 해도 완급의 차이는 있으나 실수는 수없이 반복되고

일상에서는 인연에 설마를 거듭하고 바둑에서는 무지의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기원5급에서 하이 텔에 잠시 기웃거리곤 20여 년 바둑을 접었다가 오로에서 다시 시작했다

생태계를 몰라 5급에서 시작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6단이다

그런데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왜 그렇게 승급이 어려웠을까 라는 의문이 풀렸다

잘나가다가 마구들에게 걸렸던 것이다

아쉬움과 오기로 대들다 영영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고.

이런저런 풍파 속에서 현재 레이팅 대국 9995승 10434패다

10여 년의 결과지만 20여 년의 앞선 바둑에 버금가는 대국이 아닐까 한다.

아마 이글을 올렸을 때면 만승 돌파를 하였을 것이고 패도 늘었을 것이지만 미미할 것이다

10000승에 10000 몇 백패면 2만판의 질곡의 대국에서 5%로도 안 되니까

그 만 번의 승리에 완벽한 지략으로 오른 봉과 상대의 실수와 나의 어거지도 있을 것이다

이기고도 부끄러운 판이 있었고 지고도 후련한 판이 있었고 상대의 치졸함을 응징한 쾌감과

거물 속을 빠져나와 창공과 대해로 유영하는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또 만 번이 넘는 패배에는

그러지 못한 자괴감과 실망과 후회와 분노에 때로는 상대에게 원인모를 존경심도 느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상에 작은 활력과 지장도 주었다.

바둑은 인간의 가장 지적인 게임이며 인간만이 즐길 수 있는 도와예의 절정이다

어차피 인간이 하는 것이고 도와 예는 허울이고 승부만 있는 게임일 뿐이다.

전자는 아마의 중 상급 하수들이 즐겨하는 말이고

후자는 아주 무지(?)한 하수와 초절정의 고수이무기들이 자학(?)하는 소리로 많이 듣는다.

나는 아직 도는 몰라도 예를 강조하니 어느 선에 머물까.

아마도 무지함은 벗어났고 그렇다고 이무기엔 언감생심이니 그냥 중 상급의 애기가 일거다.

글이 막혀 다시 한판을 두고 왔는데 역전패 했다

글을 쓰면서 마음도 추슬러졌고 포석부터 시야가 넓어져 백으로 좋은 자세를 갖추었다

중반 전투에서 유리한 싸움을 이끌어 대마를 포획했는데

그 고질병 응징의 손버릇이 발동하여 상대의 억지를 갖고 노는 듯 즐기다 패를 만들어줬고

속기에 약한 나는 5분의 시간을 다 소비하고 초읽기에 몰려 헛패로 낙마하였다

오늘 첫 대국인데 기분이 영 안 좋다

이럴 땐 다 집어 치우고 대창에서 수다를 떨거나 비번이니 집안 청소나 해주고 샤워하고

한 숟갈 얻어먹은 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하는 게 좋다 그래서 잠시 일어난다. (오전10시)

티비에는 축구가 아쉽게 탈락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흥미를 끄는 게 없어 돌아섰고

청소는 더위에 엄두가 나지 않아 다시 모니터에 앉았는데

마음이 추슬러졌는지 좋은 내용으로 완승을 거둬 이제 D-4인데 상대가 재 대국을 신청했다

흔치 않는 일이고 대국 매너도 좋아 흔쾌히 승낙했는데 또 유리한 바둑을 헛패로 역전패다

나이 탓인가.

요즘은 패인의 주 요인이 밀린 바둑이 아니라 역전패가 반 이상이다

어떻든 오늘은 10000승에 이를 것이고 큰 의미는 없다 해도 느낌은 남다르다

괜히 동안 뭔가 막혔던 일상에 혈이 뚫릴 것 같고 만사(?)형통으로 이어질 것 같은.

애기가로서 나름으로 부여하는 의미지만 10000패를 하면 바둑을 접어야 한다는 때도 있었다.

만패불수라 말했던가.

또 역전패 당해 기분이 언짢아졌으니 다시 접고 집안 대청소에 들어가야겠다.

땀을 흠뻑 흘리고 샤워를 하고 그리고 심기일전하여 대망의 10000승의 고지에 오르리라.

지금 시간 12시를 조금 넘겼으니 두어 시간의 청소를 마치고 3시쯤에 앉으면

아마도 술시에(오후 5~6시) 맞춰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의미와 하루 일과와 이젠 쓸 수 없을 것 같은 바둑이야기도 쓰고 시간까지 아주 적당하다.

땀 좀 흘리고 D-1에 글을 올리고 술상을 모니터 앞에 차려 놓고 휘나래 바둑에 임할 텐데

서민 애기가로선 이 이상의 행복이 없고 나만의 도에 빠져드는 것이다.

한판의 바둑을 두다보면 돌 하나하나의 의미가 수시로 바뀌면서 연관성의 연속이다

하루가 그 돌의 의미고 한판이 인생이면 반복의 10000판이 윤회를 거듭하듯 이어질 것이다

이제는 이겼구나 하다가 역전당하기를 9패째

마음이 앞선 하수가 13판을 두고 3승9패를 하니 현재 9998승.

1승만 더하고 글을 올리려다 포기한다.

바둑도 안 되거니와 나머지 남은 시간을 좀 더 음미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내일도 이유 있는 하루를 보내고 삶과 바둑에 임함에 승패를 떠나

나름 좋은 그림하나 그릴 수 있기를 바라고 의식 있는 동안 그 의미를 보듬으며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