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95, 구역질

“저 놈은 진짜 나쁜 놈이야”

평소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술집 Y사장은 택시기사 P 팔 단을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욕을 하신다.

“나쁜 놈 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나쁜 놈 인줄은 진짜 몰랐어”

잠시 후 커피기계 앞에 있던 박을 복도로 데리고 나간 Y사장의 고함소리가 복도에서 들린다.

“다음 다음 하지 말고 날짜를 말해”

빌려준 돈 못 받아서도 아니고 P팔단 이 부탁하여 딸 의료보험증을 유사장 업체명의로 해줬는데 세금을 안 내려 한다는 예기인지 자세한 것은 들어도 모르겠다.

부탁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 같고 들어주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고 쌍방간에 앞뒤를 헤아려 약조를 하고 도운 것일 일 텐데 처음예기와 결말이 달라서 저러는 것일까?

오후 3~4시면 매일 꿈의구장에 오시는 Y사장이 안보이니 자연스레 그의 예기가 나온다.

“노래를 정말 잘 하시던데요”

“술집을 하시니 손님들한테 노래할 경우도 있고 당연하겠지요”

“원래 룸살롱 밴드 출신이래요”

“미군부대에서도 노래를 불렀다던데”

잠실 새마을 시장에서 야채가게를 하던 왕 장고는 최근 가게를 큰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를 하였다는 지 매일 기원에서 숙식을 하는 것 같다. 용접이 전공이라는 도가다 김도 최근엔 일이 없는지 수중에 돈이 좀 들었는지 기원에서 매일 머문다. 둘의 대국에 네 다섯 명이 둘러앉아 관전을 하며 열중 이어 보니 놀이를 들어갔단다.

 내기 바둑 할 수준도 아닌 이들이 내기를 하고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바둑도 모르는 이들이 둘러앉아 배팅까지 한다니 우습기가 짝이 없다. 더 가관인 것은 의례 매일 편 바둑이 벌어지는 중앙 한 복판에 자리를 미리 잡고 무슨 큰 대국인양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매일 훌라 만 하던 영감들이 바둑 두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부러워 속으로 흉내라도 내고 싶었던 것일까?

도가다 김은 올인이 됐는지 일어서서 옆의 다른 이에게 2만원만 빌려줘 하나 거절 당한다. 그럼 그렇지 저 실력에 무슨 내기는.

바둑판을 껴안듯이 상체를 반위로 기울인 채 열중하며 담배를 꼰아 물고 있는 왕 장고의 모습은 바둑을 사랑하고 진지하게 보이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속여 한 푼이라도 더 따먹어볼까 싶은 야바위꾼의 모습이다.

형편없는 실력에 되지도 않는 장고로 상대의 기나 빼려고 하는 간교함만이 남았을까? 그와 몇 번 두어 항상 거의 만방으로 이겼더니 그 후론 피하기만 한다.

편 바둑에서 단체전 이어 만나 둘 때 딱 한번 항상 장고이니 의례 그러려니 하며 상대가 두기를 기다리며 옆의 판을 구경하다 돌아보니 눈을 감고 자고 있다. 그것도 작전인지 지긋지긋하게 기다리게 하다 두면 고마워서 빨리 응수하다 엄청 이긴 바둑을 오히려 몇 집 진 적은 있지만 저런 이와 개인전을 하는 이들을 보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기던 지던 그와의 바둑이 끝난 것이 고맙기조차 하다.

반바지에 슬리퍼차림인 그는 나름 열중하는지 맨발은 노상 맨바닥에 놓여있다.

나도 골초지만 역겨운 냄새에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자전거 타고 오는 영감이 시가를 피워 물고 있다. 저 나이에 자전거 타는 것이 용한 일이긴 하겠지만 바이크 모자에 착 달라붙는 스포츠웨어 반바지에 발목에 까지 무엇인가 밴드 같은 것을 차고 있다. 누런 스포츠안경은 실내에서도 벗지 않곤 2층 중국집에 탕수육 하나 시켜 소주 두 병과 먹는 것이 그 노인의 도락인가 보다. 집이 어디인진 몰라도 뭐하던 인사인진 몰라도 저 나이에 왜 저렇게 살며 남의 눈과 기분은 안중에 없는 것일까?

술집을 운영한다는 Y는 운영자금이 부족했는지 야채가게 왕 장고한테 차용을 부탁 했나 보다.

“좀 기다려봐” 왕 장고의 말에 Y는 고개를 끄떡 거리며 내심 초조히 기다리는 눈치였었는데 정작 돈을 빌려준 이는 K시장 김사장 이었나 보다.

작년만해도 부인과 같이 피부미용실에서 둘이 같이 4백 몇 십인지 주고 피부관리를 했다던 Y 는 최근 술집경기가 안 좋은가 보다.

그까짓 돈 천 투자하여 잘 운영되던 기원을 손님을 빼내 바로 곁에 새로 기원을 차려 빛나리를 바지사장으로 세워 매달 백인지 받기로 하여 양쪽 다 망하게 만든 장본인인 Y는 그의 그릇은 잘 나갈 때가 천짜리인가 보군.

일흔다섯은 넘어 보이는 노인과 기탁에 앉아 예기를 듣던 P 팔단은 누가 가져갈세라 바둑 책은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오래도 예기를 듣고 있다.

어깨 넘어 들리는 예기는 온갖 기괴망측한 소리다. 자신이 젊었을 적 돈복은 없었어도 여자 복은 있었다는 그래서 全國市道에 여자 하나씩은 만드는 것이 목표였었다는 등 한문을 좀 알아 남의 사주를 봐주며 어쨌다는 등 귀를 더럽히는 것은 둘째 쳐도 노년의 말로가 저리 추해질까 봐 내심 걱정이 든다. 사근사근 맞장구를 쳐가며 예기를 듣는 박은 한 손으론 맨발 뒤축 굳은살을 열심히 뜯어내고 있다. 구역질이 오르는 것은 둘째 쳐도 손을 더 자주 씻어야겠군 싶다.

바둑이 두고 싶어 기원을 찾는 것이

구역질을 참아가며 까지 바둑을 두어야 되는 것인가 한탄스럽다.

티브이 앞에 원장은 기탁에 두 발을 벌렁 얹어 놓은 채 뒤로 편안히 기댄 채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나 보다. 저럴 시간에 청소나 아니 청소는 아니어도 변기나 좀 치울 일이지.

기료 20원 할 때부터 40년을 기원을 다녔지만 이런 기원은 난생 처음이다.

이제 기원을 그만 다닐 때가 된 것일까?

바둑을 그만 둘 때가 된 것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