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의 착각(2)

선비만석

  만 원짜리 지폐를 석장 꺼내는 김 과장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듯 보였다. 기실 흑번으로야 승률이 80%를 넘는 그가, 박 사장에게 눈치 채지 못하게 져준다고 일부러 진 판이라고는 하지만, 넉 집 반이나 진 것은 이외였다. 실은 한집반 이나, 반집 승부로 져 주리라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 판은 김 과장의 백번이니, 이기기는 더욱 어려울지 몰랐다. 첫판 바둑을 두면서 박 사장의 행마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김 과장은 알 수 있었다. 시골기원에서는 1급이라고 두어도 통할 실력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박 사장과 바둑을 두려고 하지 않는지, 김 과장은 한판의 바둑으로 알게 되었다. 기실 김 과장도 시골 기원에 가서는 1급으로 행세해도 될만한 실력이 아니던가. 그런 김 과장을 넉 집반을 이기는 박 사장의 음흉한 속마음을 알기에는, 박 사장과 그리 친한 편이 아니므로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만으로는, 확실한 정보를 알 수 없는 것이 바둑이기도 하였다.

  흑을 든 박 사장의 첫 번째 착 점이 반상위로 떨어진다. 마치 검은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들 듯, 좌 상귀 화점에 사뿐히 돌이 놓인다. 김 과장은 반상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포석부터 박 사장의 의도대로 두어주지 않으려면, 보통의 행마로 두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했다. 김 과장은 백 돌 하나를 들어서 반상위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우 하 귀의 소목에 착 점을 하였다. 실리위주로 반면을 운영하여 흑을 초조하게 만들고, 끝내기에서 승부를 낼 마음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박 사장은 이외로 삼 연성 포석을 들고 나왔다. 두터움으로 승부를 가져갈 모양이었다. 김 과장은 우 상귀에 날일자로 걸쳐갔다. 박 사장이 협공을 가해온다면 선수로 귀를 도려낼 작정 이였다. 박 사장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두어준다면, 철저한 실리로 승부를 가져가기가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김 과장의 걸침에 대해서, 박 사장은 잠시 뜸을 드리지도 않고 바로 한 칸 협공을 하였다. 김 과장은 바로 삼삼으로 백돌을 침투하였다. 이때였다. 박 사장은 삼삼으로 침투한 김 과장의 백돌에 대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는, 오히려 김 과장의 우 하 귀 소목에 날일자로 걸쳐왔다. 김 과장은 박 사장의 행마에 적잖이 혼란스러워졌다. 당연히  받아 줄줄 알았던 삼삼 침입에 대한 응수는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소목에 걸쳐오는 박 사장의 행마는 김 과장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 사장의 걸침에 대하여 응수를 하자니, 오히려 그가 선수를 잡고 두어가는 꼴이 되는 것이니, 참으로 난처하였으나 일단 실리로 판을 짜기로 하였으니 변으로 두 칸을 벌렸다.

  두 사람의 바둑이 서로가 초읽기에 몰리면서, 한 사람은 실리요, 한 사람은 두터움으로 어울려 돌아가자, 기원안의 구경꾼들이 하나 둘 그 둘을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두 판을 먼저 져 주리라 생각했던 김 과장은, 이미 그런 생각은 없어지고 이번 판을 이겨야 하겠다는 승부욕이 온 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은 땀이 솟아나 축축해 지고 있었다. 바둑이 종반으로 가까워질수록, 박 사장의 두터움이 점차 위력을 발휘하면서 집으로 둔갑을 하고 있었다.    

  김 과장은 초조해 지기 시작하였다. 선수로 끝내기를 해야 할 판에, 선수는 흑번인 박 사장이 잡고 좀처럼 선수를 잡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했던가. 지키려고 하다가는 두 번째 판마저 질것이 뻔했다. 하지만 두터움으로 무장한 박 사장의 말들을 공격하기에는 김 과장의 운석이 너무 엷었고 이미 때가 늦었다. 

  바둑이 종료되었다. 계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승부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 김 과장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결과는 반면 여덟 집을 흑이 이기고 있었다. 백의 한 집반 패배였다.

  “아이고 김 과장님 바둑이 엄청 세시다. 이번 판은 지는 줄 알았는데...패 때문에 겨우 이겼네요.”

  박 사장이 김 과장을 위로 하는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면서, 바둑돌을 통에 쓸어 담는다. 김 과장은 지갑을 열고 다시 삼 만원을 꺼냈다.

  “박 사장님 제가 쩔쩔 매는 걸 보니 일급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과장은 바둑을 져서 심기가 불편 했으나, 박 사장의 마음에 자만심이 일도록 치켜세웠다.  다음판에 그가 자만심으로 대국에 임한다면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였다.

  ‘천만에요. 저야 과장님이 봐주시는 덕분에 이겼지요. 김 과장님 바둑이야 말로 강 3급인 것이 틀림없네요.“

  (아니 저 자식이 ........저는 일급이라고 해주었더니 나보고 강3급이라고.....)

  김 과장은 박 사장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열이 확 뻗쳤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리라 흑번이니 두 방을 이겨서 단번에 두 판을 진 것을 복구 하리라 마음먹었다.  흑 돌을 담은 통에 돌을 집기위해 손을 가져가는 김 과장의 손이 흥분으로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