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한 소장

밤 10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나이트 근무는 피곤하긴 하다.

저녁 6시 까지는 출근을 해야 그래도 책임을 다 하는 것이겠지 싶어 일찍 나가려던 것을

아니야 일찍 나가기만 하면 뭘 해 싶으며 어제 나이트에 새벽 4시경 서류정리를 하다 졸려서 깜박깜박 졸던 생각을 하며 조금 더 자고 나가야지 싶었다.

어제보단 조용히 흘러가는 나이트, 응급실 앞엔 아픈 이들이 로비에 꽉 차 있지만 이상하게 그리 바쁘지는 않다.

새벽 1시가 되어 우리 직원들의 야식을 갖다 준다. 야식 12개는 숟갈이나 젓갈이 없다. 야식을 주는 것 만도 고마우니 그런 것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 이겠지. 일회용 수저를 지하1층 매점에서 사 온다. 커피와 일회용 컵도 사와 모두에게 나눠준다.

CCU(심장내과중환자실) 의 환자를 모셔놓고 중환자실 구역 앞을 지나치는데 바닥에 털썩 앉아있던 여러 가족이 갓 수술을 마친듯한 老 닥터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기 드물게, 수술복과 수술용 모자를 쓴 집도의는 방금 수술을 마쳤는지 보호자 남자의 귀가에 조용히 이야기 중이다. 저런 다정한 제스쳐는 평소 의사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것인데 속으로 생각한다. 수술 중 환자가 죽었거나 가망이 없어 보여서 미리 알리는 것일까?

“박사님이 죽인 거예요”

환자의 부인인지 어머니인지 늙수구레 한 여인은 다시 바닥에 철푸덕 앉아 수술복을 입은 노 닥터를 나무라는데 본인도 그저 그런 해봐야 소용없는 넋두리라고 생각하는지 절실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5층 수술장과 중환자실 구역 바로 밑의 4층 임상병리과에 내려오는 길에 잠시 들린다.

“잘 하고 있지?” 임병의 나이트 근무자가 잘 하고 있는지 졸고 있지나 않는지 걱정이 되어 들린 것이다. “잠깐만 계셔 주세요, 담배를 한 대 피고 올게요.”

응급실로 들리니 경찰들이 눈에 띈다.

의사 간호사들은 경황이 없다. 카트(이동용 침대)위의 환자는 덩치가 큰데 거즈로 눈 코 목 부분을 뒤 덮어 브리딩(출혈)을 닦고 있는데 외국인 인 듯 하면서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다리와 가슴 그리고 팔까지 털이 북숭북숭 한 것을 보니 외국인인가보다.

교통사고 가해자라는 그는 의식이 없다. 영어로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고통이 극심한지 연신 비명만 질러대는대 당장은 대책이 없다.

경찰은 일부러 대답을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젊은 여 닥터에게 직업과 친구 전화 등을 물어달라고 말한다.

ER(응급실)담당인 젊은 직원을 도우려고 외국인환자의 C/T, X-Ray검사실에서 옮기는 것을 도우며 연신 거즈로 코에서 나는 피를 닦는데 피가 유니폼으로 튀긴다. 에구 지난 일요일 아침에 처가 병원까지 데려다 줄 때 차에 실어와 갈아입은 새 것인데 또 갈아입어야겠군 싶다.

교통경찰은 자신과 같이 온 부하 인듯한 이에게 이야기한다.

“감시를 붙여야겠어. 형사과에 부탁 하던지.”

그러면서 나를 보며 덧붙인다.

“병원에서 일 하시는 분들이 제일 존경스러워요.”

“저는 경찰이 제일 존경스럽던데요”

“CSI(법의학 경찰수사 시리즈)를 보시나 보죠?”

경찰인 그 분 역시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일까?

새벽 3시부터 21층 이하 전 병동을 돌며 아침 첫 수술과 엑스레이를 찍을 환자들의

명단 라벨을 가져온다.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된다. 다시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또 한 시간이 걸린다. 새벽5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감염환자들의 베드를 먼저 내리도록 지시를 하고 이어서 응급처방이 난 환자들, 그리고는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나 그 후 도보로 스스로 내려올 수 있는 환자들 순 이다.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 어느새 교대 할 시간 아침 7:30이다.

Day번으로 아침 7시까지 출근한 우리 요원들이 여럿이 다가와 일을 돕는다.

하룻밤이 무사히 지났군!

12일 화요일 밤 나이트 근무를 처음 나왔을 때 소장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저녁 9시경인데도 본사에서 나온 팀장과 저녁에 소주를 드신 후 퇴근을 못 한 채 다시 사무실에 돌아오신 것이다.

. C의료원에 지난 2/24 선발대가 투입된 이래 3월, 4월 두 달이 지났는데

지난 두 달은 적자란다.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나도 더욱 모질게 해야 하는 것 이겠지.

젊은 소장은 준수한 미남인데 모처럼 얼굴이 발간 채 내게 마음 속을 밝히시는 것 같다.

“제 장점이자 단점은 일관성인데 소장님께서 더 강해지셔야 합니다. 제가 그 동안 쭉 말씀드린대로.”

평소에는 지혜롭고 단호한 젊은 소장인데 오늘은 얼굴이 발간 해맑은 소년 같다.

총인원 4,200인지 라는 대형병원 속 아웃소싱 업체 90명 직원의 소장과 나 중간관리자 인데 내가 저 분을 정년까지 무사히 보필할 수 있을까?

저 분이 자신감과 평안함을 느끼는 근무환경을 내가 노력해서 만들 수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