訪問客

선비만석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출근하여 사무실 컴을 켜고 직원들이 올린 결재서류를 검색하고 있을 무렵이다. 핸드폰에 찍힌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전혀 알지 못하는 번호이다. 누군지 궁금하다.

  “여보세요. 박 만석입니다.”

  “선비만석님, 안녕하세요? 저 인천에 사는 관음경이라는 사람입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관음경님. 에에 알고말고요.  그런데 어디세요?"

  "아 지금 인천입니다. 오늘 선비 만석님이 뵙고 싶어서 고성으로 갈까 하는데 가도 괜찮겠습니까?”

  "아........예 제가 오늘 약속은 없습니다. 오셔도 괜찮아요. 환영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출발하겠습니다.”

  “오실 때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오시다가 홍천경유 진부령으로 오시면 됩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이따 저녁 때 뵙겠습니다.” 

  통화는 끝냈지만 갑작스런 방문객의 등장에 조금은 당황스럽다. 집안은 며칠 째 청소를 안 하여 엉망이고 하지만 오는 사람이 남자이니 홀아비 냄새야 그렇다 치고  좀 지저분한 것은 시간 내서 대충 치우면 되나 식사 대접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잠시 이것저것 결재하고 또 신문의 기사도 스크랩해 보고 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그러고는 방문객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물론 잠간 짬을 내어 기거하는 집으로 가서 청소를 한다는 생각도 모두 잊었다. 그게 이유가 있었다. 막내 딸 아이가 공무원 시험을 본 것이 발표가 났기 때문이다. 춘천지역에 응시한 막내 딸 아이는 평균 80점인데 커트라인이 81.5점이다 두 문제만 더 맞추었으면 필기시험은 합격 하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하필이면 커트라인이 제일 높은 춘천으로 응시를 하였나 하는 안타까움.........내가 사는 고성은 커트라인이 74점인데....하는 전략상의 문제점에 내내 아쉬워 하다보니 방문객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렸다. 나이 탓인가? 건망증이 생긴 탓인가?

  오후 다섯 시 사십 오 분쯤 또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전화번호는 이곳 지역전화 번호이다. 

  “여보세요. 박만석입니다.”

  “아 선비 만석님 지금 간성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관음경님 이였다. 그때서야 나는 아침에 관음경님의 전화를 받은 사실을 기억했다. 아차.......... 이걸 어쩐다. 집안은 청소도 안 해서 엉망진창 이고 이걸 어쩐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아침에 전화를 받고도 잊어버린 내가 멍청한 놈이지.

  26일 날 의회의 추경예산 심의가 있어 추경예산 설명 자료를 검토하던 중이라 황급히 자료를 치우고는

  “아........관음경님, 금방 나갈 테니 기다리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황급히 퇴근을 하면서 내 고물 애마인 (소나~타는) 고물차를 가지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관음경님, 이리오세요. 제 차를 타시지요.”

  하고 불렀다. 관음경님은 나를 발견하고 환한 웃음과 함께 다가오시더니 손을 내미시며 악수를 청한다.

  “아이고 선비 만석님, 반갑습니다. 먼저 출발 하십시오. 저는 제 애마로 뒤따라가겠습니다.”  

  관음경님을 뒤에서 따라오시도록 하고는 나는 집으로 향했다. 우선 집 앞에 관음경님의 애마를 세우게 하고는 내차로 회집으로 이동을 하였다.

  [해녀회집] 이 집은 다음에 우리 나작 동호인 모임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집이였다.

  회를 주문하고는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 아홉시가 넘었다. 즐거움이 가득한 만찬에서 관음경님 술을 몇 잔 잘하셨다. 나도 대작을 하느라 세잔인가를 마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취침 전에 어찌 수담을 한판 안할 소냐. 관음경님이 고수이신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두 점을 접히고 바둑을 두었다.  하지만 관음경님의 상대는 아니었다. 나보다 한 차원 높은 바둑의 세계를 가지신 관음경님에게 두 판을  지고 나니 어느새 밤 열한시.......

  “아이고, 선비만석님. 손님접대 바둑을 두시고........”

  조금도 안 봐주고 이긴 것이 미안하셨나........하지만 내 실력이 겨우 그것인 것을 어쩌라굽쇼.  내 침대에서 두 남자가 코를 드르렁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것참 세상 여자들이 모두 정 떨어 졌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아침운동을 가자고 함께 나갔더니 가랑비가 온다. 운동은 포기하고 두부찌개나 해서 아침을 먹을 요량으로 반찬거리를 사가지고 와서 아침준비를 하였다. 초라한 아침 밥상을 차리고 두 남자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한 남자는 출근을 해야 하니 바빴고 또 한 남자는 유랑 길에 오르려니 바빴다. 반찬도 없는 아침밥을 맛있게 드시는 관음경님...............

  다행히 아침 식사 후에 비가 그쳤다. 서둘러 길을 나섰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간사라 이별의 순간이 또 온다. 북천 교를 지나서 삼거리길 관음경님과 나는 후일을 약속하고 손에 정을 가득 담아 악수를 나누고는 각자의 갈 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언가 가슴에 휑하니 구멍이 난 것 같은 이 기분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