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나들이

이른 아침 5시 반 정도 출근하여 나이트 번 들이 병동 엑스레이를 찍는 것을 돕는다. 관리자들의 밤 근무는 비효율적 이라고 없애고 대신 한 사람이 일찍 출근하여 돕는 것이다.

중환자실 환복의 70도 넘어 보이는 노인은 머리는 허연 백발이지만 정정하셨을 것 같다. 큰 베드 속에 덩그러니 초라한 모습인데 손과 발에 압박 대를 매고 있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느라 풀었나 보다. 각 층 병동별 리스트의 환자가 다녀갔는지 체크하느라 바쁘지만 노인에게 자주 눈길을 돌린다. 압박 대를 침대 레일에 매자니 안쓰러워 매지는 않고 불안하기는 하여 눈길을 뗄 수 없다.

앙상한 다리를 주무르며 말을 건넨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병동 별 담당이 모셔다 드릴 겁니다.”

“이거 매고 계시느라 답답하였겠어요.”

“풀어 달라고 해도 풀어 주지를 않아.”

연세보다 단단한 근육과 정신도 온전하신 것 같다.

“정정하신 것 같은데 갑자기 아프셨어요?”

“사고가 났어.” 말씀 하시며 갑자기 배의 복대를 풀려 하신다. 수술부위에 핏자국과 복대에 손을 대려 해 놀라며 말린다. 이래서 묶어 놨었나?

“내가 군에서 의무대 근무했어.”

연신 뭐라고 말씀 하시는데 자세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층 별 담당요원들이 정신없이 바빠 21층 특실의 남자 환자를 직접 모셔다 드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신문 배달을 하는 아주머니가 보안요원에게 신문 여러 부를 전한다. 특실만 신문까지 배달 해 주는군. 전에 어떤 담당은 자신의 층에 아침마다 신문을 가져다 돌리던 기억이 난다. 특실의 미화원은 일반 미화원들과 달리 서양 드라마 속의 하녀복장이다. 요즘 세상에 안 어울리는 것 같긴 하지만 특실 환자들의 자만심을 채워주려는 것일까?

응급실에 문제가 생겨 가 보아야 하는데 회복실과 중환자실이 계속 바빠 가지를 못한다.

119 구급요원들이 오면 이용 할 수 있게 커피 자판기가 응급센터 장의 옆방 면담실 안에 있는데 우리 요원들이 ER 근무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자주 몰려 CCTV에 찍혀 있단다. 순찰을 돌며 그리 자주 가 있어도 나는 한 번도 보지를 못했는데 골목대장 노릇 좋아하는 ER 직원 중 하나가 여럿에게 커피를 권하고 했나보다. 소련에서 선장 노릇을 하다 돈을 벌러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왔다는 그는 한국식 예의범절이 부족한 곳이 있다.

일원역에서 S의료원 셔틀버스를 탄다. 항상 걷던 습관이지만 다리가 아파 이용해 본다. 버스가 도착하니 내리는 사람도 수십 명이고 타는 사람도 수십 명이다. 역시 C병원보다 환자가 엄청나게 많군. 본관 앞에서 버스를 내려 로비로 들어선다. 뭔가 어두컴컴하고 좁아 답답한 느낌이 든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침침한 날씨의 이유도 있겠지만 그리도 크게 기억되던 S의료원이 작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세 달을 C병원 신축건물에서 현대식 병원 속에 근무해서 인가 보다. 다만 직원들의 모습은 모두 자신감이 있어 보이고 왠지 더 전문가들의 모습 같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남자 간호사 고참인 박 선생을 우연히 만난다.

“바쁘셔서 바둑 두실 시간도 없으시겠네요?”

“오로에서 자주 둡니다.”

“몇 단이나 되셨어요?”

“요즘 5단 이에요.”

진지한 스타일 이긴 하지만 내게는 세 점에도 안 되는 실력인데 속으로 놀라며 제 대화명은 아시죠? 묻는다.

동네기원의 1층 식당 주인인 사람이  17세 딸이 수술하여 알아보고 부탁할 것들 때문에 원무과 계장과 팀장을 만난 후 중환자실과 소아병동에 들렸다. 반가이 맞아주는 분들. 10년 전 이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 했는데 세월만 무심하게 흐른 것 같다.

S의료원 바둑동호회 사범역할은 퇴직 후에도 계속 했다. 작년엔 이 작가 선생과 이도0 기자를 초빙하기도 하고 외국 여류 프로들은 여러 번 초대 했었다. 이번엔 이달 말 모임을 갖기로 정하고 초빙은 연구생들로 잠정 결정한다.

본관에서 정문 쪽으로 걸어 나오며 잘 꾸며진 조경과 녹지에 내심 오랜만에 새삼 감탄한다.

C병원은 크게는 지었지만 녹지는 없는데 역시 다르군 싶다.

친정에 다녀오는 느낌이 든다.

이 길을 10년 전부터 무던히도 많이 오갔었는데 내가 이룬 것은 뭘까?

내가 만약 아프게 되면 S의료원에 갈 것 같다.

신뢰받는 조직을 구성해야 하는데 아직 해결할 과제가 산적한 동료 90명의 생각과 내가 걸어야 할 가시밭길이 뇌리에 어른거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