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 생각이 났나보네. 톡도 무시하더니.”

일주일 넘도록 연락이 없던 윤철의 전화에 정애는 신경질이 확 올랐다.

“내가 그동안 바빴어.”

“네가 바쁠 일은 딱 한가지뿐이지. 과부나 아가씨 후리는 거.”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야. 그런데 이번은 틀렸다.”

“그럼 집에 모셔둔 마누라랑 여행이라도 다녀 왔나봐. 지 마누라랑 깨 볶느라 내 생각 같은 건 나지도 않았지?”

“그럴 리가 있나. 오매불망 그리웠지.”

“그 입 다물어라. 어디서 구라를 쳐.”

“만날래?”

“싫어.”

“알았어. 그럼 다음에 봐.”

그녀는 여기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너는 늘 그 모양이야.”

“내가 뭘 어쨌다고.”

“내 투정을 조금 더 받아주면 어디 덧나니?”

“싫다며. 내가 더 뭘 어쩌라고.”

“나쁜 놈.”

“거기서 기다릴게.”

정애는 마음이 서러우면서도 그를 만나러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자신이 서글펐다. 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법이다. 전 남편과 헤어지던 힘든 시절에 그녀를 지탱해준 남자라서 그녀는 그를 마음에 담았었다. 그렇지만 그는 늘 그녀는 가정일 다음이었다. 한창 불붙었던 때는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합하겠다고 다짐을 줬었다.

“아버지가 아내와 이혼하면 호적을 파버린대. 유산도 하나도 안 남겨주고. 아버지 돌아가시면 그때 우리 결합하자.”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앞으로 20년은 너끈할 만큼 건강이 넘쳤다. 그런 사람임에도 그녀는 그를 포기하지 못했다.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는 것은 몸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행복을 얻지 못했다. 오로지 이 남자만이 마음의 행복을 채워주었다.

‘몸의 섹스와 마음의 섹스.’

그녀는 그 이유를 이렇게 구분 지었다.

몸의 것을 채운다 해도 마음의 것까지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의 것을 채운다면 몸의 것은 채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미련을 가지며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그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수련을 하는 분들이 몸이 불러오는 욕정을 누르려고 자신의 몸을 가혹하게 담금질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육체를 가진 몸에 욕정이 없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을 통제하고 억제하려 애쓰며 정신을 수련하느라 마음을 수련할 시간마저 빼앗긴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마음이 하는 섹스와 몸이 하는 섹스가 다르듯이 욕정은 몸의 것이니 몸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풀어주고, 마음은 육체의 욕정에 얽매이지 말고 수련에만 정진하면 되는 것임을 도력이 높으신 그분들이 알지 못하고 마음으로 몸의 본능을 억누르려 귀중한 수련의 기회를 허비하는 것이다.

‘몸의 것은 몸의 것, 마음의 것은 마음의 것’

이것이 그녀의 신조다. 그녀는 마음을 채워주는 섹스를 얻기 위해 오늘도 그곳으로 향한다.

“왜 이렇게 난리 법석이래.”

카트를 광이 날 만큼 닦고 있는 연지를 보며 현균이 물었다. 그들은 그날 젊음의 강렬한 욕망을 자제하고 모텔을 나왔다.

“정말로, 진짜로 네가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야.”

간절하게 진심이 담긴 얼굴로 말하는 그를 그녀는 꼭 안고 입맞춤을 해주었다.

“때로는 몸의 대화보다 마음의 대화가 더 진한 법이지. 나는 오늘 너와 첫날을 보낸 거야. 마음이 하는 섹스도 나눈 것이고.”

그녀도 진정성이 담긴 모습으로 그의 몸을 매만졌다. 따뜻하고 다정한 손길은 그에게 잊혀졌던 엄마의 느낌을 되살렸다.

“고마워. 우리 다음에 또 시간을 같이하자.”

그녀는 깊은 눈빛으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 공지 못 봤구나. 오늘 오후에 회장님 라운딩이 있어. 벌당 안 받으려면 네 카트도 광을 내야 할 거야.”

“그분이 오시면 모든 캐디들이 이렇게 대청소에 동원돼?”

“우리 대청소뿐이 아니다. 코스팀도 골프장 청소하고 잔디 러너 잘라 엣지 각 잡아 다듬고 보경로 매트 새로 깔고 법면 예초한다. 클럽하우스 청소하는 분들도 아마 정신없을걸. 말 그대로 골프장 전체를 새 단장하는 거지.”

“그렇게까지 소란을 피워야 돼?”

“우리에게는 회장님이 고객들 중에 하나일지 몰라도, 여기 직원들에게는 저승사자야. 잘못보이면 그대로 아웃이야.”

현균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었다.

“빨리 움직여라. 시간이 없다.”

“어! 그래. 알았어.”

그는 카트를 몰고 세차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수 십대의 카트로 붐비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 그는 차례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집안에 어른이 찾아오면 청소를 하고 맞이하듯이 예의에 속하는 일이야. 고용주로서 직원들에게 요구 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 규범이야. 절대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갑질 하는 그런 차원의 일이 아니야.’

그는 마음을 억누르듯이 자신과 타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봐요. 청소를 안 하려거든 카트라도 빼세요.”

갑자기 물줄기가 그의 머리위로 후두둑 떨어지더니 누군가 외침이 들려왔다. 퍼뜩 주위를 둘러보니 앞에 있던 카트들은 이미 청소를 마치고 모두 빠져나간 뒤였고 그의 뒤에 카트들이 길게 대기하고 있었다.

“어! 죄송합니다.”

그는 급히 카트를 청소하고 정리하면서도 지금의 상황을 납득하기 힘겨워 하는 마음과 실랑이 중이었다. 현균은 자신의 마음을 납득 시키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주변이 더욱 분주해졌다. 평소 자주 보이지 않던 골프장 책임자인 본부장이 사무실 직원들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야, 청소를 했으면 모래와 잔디 찌꺼기도 물로 쓸어내렸어야지.”

본부장의 한마디에 경기팀장이 잽싸게 호스를 들고 물줄기를 쏘아댔다. 본부장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허둥지둥 1층으로 올라갔다. 회장 일행이 도착할 시간이 다 된 것 같았다. 주변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검정색 고급세단 네 대가 줄지어 현관에 도착했다. 컨시어즈 직원들이 차량을 맞이하려는 순간, 본부장과 팀장들이 앞을 다투어 나서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본부장과 팀장들이 얼굴이 지면에 닿을 듯 허리를 숙였다. 회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렸다. 그리고 일행의 차로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천회장, 골프장이 늘 최상으로 관리되고 있어. 나도 골프장 하나 미리 사두는 건데!”

“박회장은 무슨 그런 말을 해. 마음만 먹으면 이런 거 10개도 문제없을 사람이. 안 그렇소? 김회장님 오회장님.”

“누가 아니랍니까. 그래도 우리 네 명이 각각 호텔과 리조트와 마리나, 골프장 이렇게 가지고 있으니 제법 구색이 맞아 좋지요. 놀기도 좋고 접대하기도 편하고.”

네 사람은 골프장의 전 직원이 도열하다시피 줄지어서 선 사이를 여유롭게 이동하고 있었다.

“돈이 참 좋아.”

이들을 보고 있던 클럽하우스 청소 여사님이 한마디 던졌다.

“부러워서 그래. 저 사람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지. 나는 나라를 팔아먹었었나 평생 이러고 사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현균에게 그녀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어머니뻘의 여자에게 가벼운 웃음으로 대꾸를 건넸다.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나라 미풍양속이야.’

그는 아직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서두르는 그가 눈에 거슬렸다. 게임을 즐기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라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자취생처럼 그는 그렇게 행동했다. 서둘러 씻고 서둘러 삽입하고 서둘러 사정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마누라 두고 바람피우는 사람 아니랄까봐.’

그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분명히 어디 다녀온다고 둘러대고 왔을 터였다. 그걸 잘 알면서도 그녀는 속이 상했다.

“눈이라도 한 번 마주치고 조개에 박아라.”

그녀를 눕히고 다짜고짜 달려들던 그는 멈칫했다.

“이렇게 해달라고?”

그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성기를 그녀의 눈앞에 흔들어보였다. 핏줄이 드러나 보일 만큼 그의 성기는 잔뜩 부풀어 있었다.

“참 물건 하나는 실해.”

그녀도 하는 수 없이 피식 웃으며 그의 성기를 입으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