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상명하복>의 대표적인 조직을 군대나 경찰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군대나 경찰만이 철저한 상명하복 조직일까?

나는 No라고 말하고 싶다. 그 어떤 조직도 대부분 다 상명하복이다.

대기업이던 중소기업이던 마찬가지다.

상명하복하지 않고 항명한다면 조직에서 물러나게 되거나 왕따를 당한다.

경찰청 높은 사람들은 말한다.

문제가 있다면 내부적으로 체계를 밟아 개선 건의를 하면 되지..

왜 쓸데없이 외부에서 기자회견을 해서 경찰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짓을

하느냐고.. 그리고 강북경찰서장은 최근 4개월간 서울지역 31개 경찰서 중에서

꼴찌를 하여 집중감찰을 받은 것에 대해 반감을 표출한 게 아니냐는 불손한

의도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내부적으로 정당한 절차를 밟아 건의를 하여 문제 처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조직 생활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서울경찰청의 실적/성과주의 제도가 어떤 것인가?

서울경찰청장의 회심의 작품이 아니던가?

그 사람이 경기도 경찰청장 시절부터 도입한 역작(?)인데..

부하인 일개 경찰서장의 문제 제기를 선의로 받아들였겠는가?

그런 방법으로 개선 건의를 했다가는 100% 괘씸죄에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꼴찌를 하고 있는 처지라면 더더욱 무시당하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또 경찰 내부의 권력 싸움이 저변에 있는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 것 같다.

서울경찰청장은 외무고시 출신이고 강북경찰서장은 경찰대 1기이고.. 서울

31개 경찰서 중에서 17개인가가 경찰대 출신이고.. 양천경찰서장도 경찰대

출신이어서 고문 의혹 사건을 계기로 서울경찰청장과 동반사퇴하는 일종의

동귀어진하는 대표주자로 강북경찰서장이 떠맡은게 아니냐는 것이다.

만일에 그렇다면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은 보기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다.

요새 세상에 조직내에서 모교 출신이 세력을 잡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인간도 있던가?

그런데 말이다. 이번 강북경찰서장 사건에 대해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의

말 중에 의미있는 것이 있다.

서울경찰청장은 양천서 고문 사건은 실적/성과주의 때문이 아니라 경찰서

일개팀의 과잉 처리로 인해 발생한 단순 사건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은 성과/실적주의의 개선을

말하고 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제도라면 개선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개선을 말하는 것은 바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꼴이다.

실적/성과주의 제도때문에 일선 경찰서에서 이런 일도 있다고 한다.

경찰이 사건을 허위로 신고하고 스스로 출동하여 실적을 올리기도 한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실적/성과주의 제도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런 제도는 과거나 현재 일반 기업에서도 적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수법이다.

그런 제도의 문제는 실적에 대한 공평한 평가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지역 경찰서 31개가 다 같은 환경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어느 지역은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어느 지역은 사고가 적은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때.. 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이 건수가 당연히 많을 텐데.. 출동이나

검거 실적만으로 어떻게 서열을 매길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떤 대기업이 그런 제도를 시행한다고 생각해 보자.

영업부가 20개가 있다고 할 때.. 어떤 영업부의 판매제품은 독과점적인

제품이라 앉아서 찾아오는 바이어들에게만 팔아도 물건이 딸리고 이익은

많은 반면에 어떤 영업부의 제품은 경쟁이 치열하고 후발 제품으로 마켓쉐어도

미미하여 이익도 적어 그 부서 전 직원이 열심히 일해도 별로 티도 안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실적/성과주의를 단순하게 적용하면 힘없는 부서는

오랫동안 나쁜 성적을 받을게 뻔하다.  쓸데없이 얘기가 옆으로 벗어났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강북경찰서장이 조직에서 항명/하극상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스스로 옷도 벗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 게다가 자신의

경찰서도 아닌 다른 경찰서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조직에서 기피하는

외부 기자회견이라는 방법을 통해 국민에게 하고싶은 말을 한 것은

그동안 강북경찰서장이 실적/성과주의 제도로 인해 얼마나 정신적으로

괴로워 해오다 양천경찰서 사건이 그에게 결심을 하게 한게 아니냐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더해서 정치적인 이유나 세력 내부 암투나 성적 꼴찌의 반항으로 모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찰 사상초유의 항명/하극상>이라는 거창한 표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사건이다.

이제는 경찰이나 군대같은 조직내에서 자체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밖으로

알려져야만 한다. 폐쇄적으로 자기들끼리 쉬쉬하면서 문제를 키우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 불투명한 조직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크다.

이 사건도 결국은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제도에 문제점을 보완 개선하겠다는 말이 나온 것은 강북경찰서장의 용기있는

행동의 결과라고 본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그 성과/실적주의라는 제도는 그대로 대한민국 

전 경찰 조직에 적용될 것이다.

서울경찰청장이 어떤 자리인가? 차기 경찰청장은 맡아논 자리 아닌가?

이 제도를 도입한 서울경찰청장이 경찰청장이 되면 당연히 그 성과/실적주의

제도라는 것을 전국 경찰에 적용할게 뻔하다.  

그러면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이 지방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이고.. 혹시나

죄없는 우리의 이웃이 경찰의 강압적인 고문을 당해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기자회견을 한 후에 사직서를 냈지만.. 서울경찰청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직위 해제를 해버렸다고 한다. 찍혀도 단단히 찍혔다.

개인적으로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평생의 직업을

잃으면서까지 할 말을 하여 국민들이 경찰에 그런 문제가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해 주고 스스로 반성과 자책하는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