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160, 고교 동문 바둑대회 단체우승

 일요일 저녁 8시경 웅재에게 전화가 온다. "우승했어. 이제 끝났어, 한 잔 하러 오지 그래."
일요일 당직이어 총동문 바둑대회에 참가는 못하고 5시경 퇴근하며 들려보려고 전화를 하였으니 받지 않길래
예선에서 탈락하고 집에들 갔나보다 싶었다.

부산의 동기도 74년 졸업후 처음 바둑대회에 참가하려고 서울에 올라와 이번엔 우리 깃수가 우승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우승을 처음하니 감개무량이다. 지난 10년간 4강에 오른 전적외엔 없어 이번엔 부산에 까지 초빙을 한 것이다. 매 깃수마다 3인씩 출전하는 단체전인데 전국대회 입상실력인 웅재와 평범한 수준인 나 외에는 강한 선수가 딱 한 사람 부족한 처지여서 여비를 준다며 청한 것이다. 우승 상금을 주면 되겠지.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는 전화를 바꿔들곤 묻는다.
"병원에 다닌다며 의사가 됐나보지? 한 잔 하러 오지그래."
"오익 이랑 중학교때 왕십리에서 바둑두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참 오래됐네"
"난 의사가 아니고 그냥 병원 행정 미관말직이야. 보조역할이지."
"모처럼 왔는데 내가 집이 용인이라 미안해."

중학교때 당시 1,400원 이던 독일제 파카 만년필을 남대문 도깨비시장에서 사 와선 상품으로 걸고 리그전을 하면 항상 내 차지 였던 기억이 즐겁다. 고 1때는 문교부 장관배 전국 고교대회에는 내가 대표로 출전 했었지.
고교동문 바둑모임의 산파역할을 하며 봉사활동의 기부금 창구역할도 해 주던 바둑동호회가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대회를 개최하면 한 번도 우승을 못 한것이 아쉬웠는데 이번에 처음 우리 깃수의 저력을 보여 준 것이다.
중2 이래 평생을 가까이 해 온 바둑에 더 이상의 미련이 안 남을 방점을 찍은 것일까?

같이 출전을 못 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병원 당직을 빼 먹을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밥줄이 바둑보다 중요하긴 하군. 이제 이 나이에 성실성까지 의심 받는다면 직장생활이 쉽진 않겠지.

모처럼의 쉬는 일요일이지만 여느때처럼 4시에 눈이 떠진다.
응급실 근무자를 한 명 충원하여 바뀌는 근무표를 짜 보려고 며칠전 밤 11시까지 노력하다 포기했었는데 아침 맑은 정신에 하니 금방 해결책을 찾는다.

지난 12월 1일 부터 약제부 책임자가 해임되고 개혁을 해 달라며 소장이 약제부 까지 인원관리를 맡겨 새로운 인사배치와 조정등 지난 한 주일은 정말 힘들게 보냈다. 약제 13명의 인원중 3명을 타 부서로 전출시키고 1명을 새로 투입하였다. 조직적인 반발과 집단행동을 사전에 억제하며 마인드를 바꾸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한다. 월급은 1/4  이상 증가되도록 할테니 열심히 동참해달라 부탁했다. 2명은 더 빼 버리고 신규인력 젊은 피로 수혈을 하려고 준비를 한다. 기왕 험한일 적은 봉급에 하는 것이지만 기분좋게 일하며 일한만큼 더 받아갈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 보자고 역설했지만 아직도 따르지 않는 일부 직원은 가차없이 조치할 것이다.

모처럼 편안한 일요일 아침 찜질방에서 4시간 외출하는 처를 기다리지만 탕속에서 눈을 감고 인사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골몰한다. 약제부 인원 5을 줄이면 회사에 월 천이상 이익을 주는 것이지만 잘 하는 것일까? 임상병리 의 인원도 주야 구분 배치를 하면 지원자들이 쇄도하여 회사 관리차원에선 이익인데 기존 인원들이 반발하겠지.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나 현 근무자들을 우선해야 하나? 눈을 감고 골몰히 생각한다.
처에게 물으면 보나마나 회사를 택하라 하겠지.

편안한 일요일 모처럼 오후에는 기원을 가 볼까? 기원에 간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될 정도로 오래 지났다.
병원에 복직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둑을 두던 덕 인데 막상 이젠 바빠서 갈 틈이 없었다.
S의료원 바둑동호회 년말모임도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바빠서 소홀했다.

탕 속에서 잊고 지나친 일들은 없는지 더 생각해야겠다. 끝.